여행코스
봉평 메밀꽃밭→이효석생가→허브나라농원→무이예술관→한국자생식물원 |
9월이 시작되는 시기에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을 찾아가봐야 한다.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피어나는 곳, 그곳에서는 때를 맞춰
효석문화제도 열린다. 소설 ‘
메밀꽃 필 무렵’을 남긴 가산 이효석 선생을 기리는 축제다. 올해 축제는 9월 2일 개막돼 11일까지 열린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횡성휴게소(예전에는 소사휴게소)만 지나면 봉평 땅이다. 메밀꽃을 보자고 전국 각지에서 여행객이 모여드니 인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새벽이나 이른 오전에 도착하는 것이 현명하다.
봉평으로 향하기 전 ‘메밀꽃 필 무렵’을 한번쯤 읽어두면 여행의 감흥이 훨씬 진해진다. 1936년에 발표된 단편소설. 허생원, 조선달, 동이라는 이름의 청년 등 세 명의 장돌뱅이가 소설을 이어간다. 밤에 피어난 메밀꽃은 그렇잖아도 하얀 판에 달빛마저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난다. 세 장돌뱅이는 산길을 훤히 밝히는 메밀꽃길을 걸으며 지나온 세월들과 그 속에 숨은 사연들을 반추한다. 발정난 당나귀도 훌륭한 조연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친자 확인, 강원도 산길. 이쯤 되면 훌륭한 뼈대를 지닌 이야기 아닌가.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리고, 어느 날 시어머니가 친모인 것을 알게 되는 식의 황당 드라마에 넌덜머리가 난 오늘의 우리에게 ‘메밀꽃 필 무렵’같은 소설은 흠잡을 데 없이 직조된 최상급의 명주인 셈이다. 효석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메밀은 그저 구휼작물의 하나로 맥을 이어오다가, 참살이 바람이 불면서 건강식품으로 대접을 받긴 했겠지만 여행객을 구름처럼 불러모으진 못했을 것이다.
문학과 꽃의 조화. 그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스키장과 오대산을 품었다고 관광객 유치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던 평창군이 1990년대 후반 이효석과 메밀꽃을 앞세운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반응이 좋았다. 지난해의 경우 48만 명이 축제현장을 다녀갔고 81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올렸노라고 군에서는 자랑한다.
일단 봉평에 가면 무엇보다도 이효석 생가와 문화마을 주변에 드넓게 조성된 메밀꽃밭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꽃향기는 없어도 군락미는 파란 가을 하늘과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되어 육체를 마비시키는 마력을 지녔다. 게다가 봉평장터가 재현되고 메밀묵, 메밀전병, 메밀싹비빔밥, 메밀막국수 등 먹거리도 풍성하니 하루 나들이가 더욱 즐거울 수밖에 없다.
올해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을 보면 문학 분야에서 이효석문학강좌, 시화전, 거리백일장, 이효석문학관 개관 3주년 기념 콘서트 등이 열리고 전통 체험 분야에서는 메밀음식만들기, 농사놀이체험, 우마차 타보기 등이 진행된다. 메밀음식 시식회, 토종닭싸움,
봉숭아 물들이기 체험 등도 축제 참가의 재미를 더한다.
축제 현장에서 메밀꽃밭을 배경으로 멋진 기념사진도 찍었다면 이효석생가와 효석문학관을 들르는 것을 잊지 말자. 이효석문학관은 소설가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문학전시실과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등으로 꾸며졌다. 문학전시실에 들어가면 효석의 유품과 초간본 책, 효석의 작품이 발표된 신문과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이밖에도 봉평면에는 봉산서재, 팔석정, 판관대 등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봉산서재는 율곡 이이 선생과 화서
이항로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팔석정은 강릉부사
양사언이 음풍농월하던 경관을 말하고 판관대는 이율곡선생의 잉태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공이 인천에서 수운판관이라는 벼슬에 있을 때 신사임당을 비롯한 일가는 이곳 판관대에 터를 잡고 살았다. 인천을 떠나 모처럼 짬을 내 식솔이 거처하는 봉평으로 향하던 이원수는 대화면의 한 주막에서 묵는데 용꿈을 꾸었다는 주모가 유혹하자 이를 뿌리치고 그날 밤으로 집에 돌아왔다. 강릉 친척집에 머물던 사임당 신씨 역시 용꿈을 꾼 뒤 그날로 대관령 고개를 넘어 집에 돌아왔다. 두 사람이 합방하여 아이를 잉태하니 그가 훗날의 이율곡이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호 율곡)는 1536년 음력 12월 26일
강릉 오죽헌에서 탄생했다.
이제 메밀밭을 떠나 허브나라농원과 무이예술관을 방문하면 강원도의 9월 풍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허브나라 농원은 말 그대로 눈으로, 코로, 맛으로 허브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허브정원에는 100여 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다. 어린이정원, 향기정원, 셰익스피어정원, 달빛정원, 나비정원, 햇빛정원 그리고 연못 등을 차근차근 돌다보면 전신에 허브향이 배어든다. 자작나무집에는 허브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허브차를 마시는 찻집, 허브상품을 판매하는 전시실 등이 들어앉았다. 7개의 일반실과 4개의 특실 등 숙박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이왕 강원도의 꽃을 보러 나섰으니 한국자생식물원도 탐방해본다.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으로 나가 월정사로 향하다 보면 식물원 입구를 만난다. 한국자생식물원은 실내전시관, 사람명칭식물원, 동물명칭식물원, 향식물원, 독성식물원, 희귀·멸종위기식물보존원, 신갈나무숲길(2㎞), 영상자료관 그리고 우리 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군락지(재배단지), 카페 비안과 솔밭 광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표소에서 ‘천 년의 숲으로 오십시오, 우리 꽃을 보러 오십시오’라는 카피가 새겨진 안내팸플릿을 들고 식물원 관람에 나서면 반나절이 꿈결에 구름 흘러간 듯 짧게만 느껴진다. 관람객들에게는 꽃씨를 준다.
식물원이 들어선 병내리 비안골의 지명을 풀
이하면 병풍 안처럼 아늑한 마을이고 신비하게 안개가 자주 낀다는 뜻을 지녔다.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받아 솔밭광장 나무 밑에 앉아서 꽃내음 풀향기를 맡노라면 살아 있음의 행복이 지친 나를 위로해준다.
식물원을 설립한 김창렬씨(56). 등산이 취미였던 그는 출판사 등을 경영하다가 1982년부터 우리 꽃 기르기 사업에 나섰다. 이듬해 축령산 기슭에서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로 이전, 솜다리를 비롯한 자생식물 재배에 전념했다. ‘우리나라의 꽃을 길러 농가 소득을 높이자’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김 원장은 그동안 ‘가로변에 우리 꽃 심기’ ‘초등학교에 우리 꽃밭 만들어주기’ 등의 활동을 펼쳤다. ‘기르기 쉬운 우리 꽃’ ‘할미꽃의 전설을 아십니까’라는 책도 써냈고 계간지 ‘한국의 야생화’도 창간했다. 대학에서는 식물학이 아니라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우리 식물에 미쳐 살다보니 어느새 자생식물의 대가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33)
평창군청 033-330-2000, 가산문학선양회 335-2323, 효석문학관 330-2700, 봉평 허브나라농원335-2902, 무이예술관 335-6700, 한국자생식물원 332-7069.
봉평면의 맛집
현대식당(332-0314), 초가집 옛골(336-3360), 풀내음(335-0034), 고향막국수(336-1211), 메밀꽃 필무렵(335-4594), 미가연(335-8805)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