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 울림 위에서만 시는 가능하다/송수권
나의 시를 말한다 - 송수권
나는 어느 지면에서나 늘 고답적으로 말해왔듯이 서정적 울림 위에서만 시는 가능하다고 믿으며 지금까지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훌륭한 시, 특히 고전적 성취의 시가 보여주는 것은
첫째로 시의 완결성이 있고,
둘째로 민족 정서가 세련되어 있으며,
셋째로 언어가 조악하지 않고 정련되어 있으며,
넷째로 리듬이 유려하며,
다섯째로 울림의 공간이 증폭되어 속되거나 혐오감이 없다는 점이다.
또 패배감이나 무력감으로 떨어지지 않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이 성스러운 경지로 끌어올려준다.
이렇게 될 때 시는 향수자에게 정신의 구원처를 마련해 준다. 여기에서 한 시인의 염결성,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청결성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나라의 말, 즉 국어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높은 수순의 경지로 이끌어 올린다.
나는 이것을 우리 시가 내장한 미적 고유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요문학회 2004년5월 "이달에 만난 시인"]
詩) 내 사랑은 - 송수권
저 산마을 산수유꽃도 지라고 해라
저 아랫뜸 강마을 매화꽃도 지라고 해라
살구꽃도 복사꽃도 앵두꽃도 지라고 해라
하구쪽 배밭의 배꽃들도 지라고 해라
강물 따라가다 이런 꽃들 만나기로소니
하나도 서러울 리 없는 봄날
정작 이 봄은 뺨 부비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때문
저 양지쪽 감나무밭 감잎 움에 햇살 들치는 것
이 봄에는 정작 믿는 것이 있는 때문
연초록 움들처럼 차 오르면서, 햇빛에도 부끄러우면서
지금 내 사랑도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크는 것 아니랴
감잎 움에 햇살 들치며 숨가쁘게 숨가쁜게
그와같이 뺨 부비는 것, 소곤거리는 것,
내 사랑 저만큼의 기쁨은 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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