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詩// 두보나 이백같이

문근영 2009. 5. 23. 20:43

詩//<두보나 이백같이>

                                   

                                             백석

 

 

 

오늘은 정원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련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 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든 본대로 원소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늑하니 슬펏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늑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소리 삘삘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