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두보나 이백같이>
백석
오늘은 정원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련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 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든 본대로 원소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늑하니 슬펏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늑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소리 삘삘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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