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감자의 9가지 변주 / 강영은

문근영 2009. 5. 22. 22:47
 
 
감자의 9가지 변주 / 강영은
 
 
 
놀란흙 밖에 서 있는,

나는 노을을 들춘 마른 번개,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당신을 지나가지
나는 자주 빛 스카프를 두른 여자, 당신의 목덜미에 휘감기지
나는 무덤 속의 고요, 눈썹 아래 당신을 끌어안지
나는 어두운 숲 속의 은사시나무, 바람의 귓바퀴에 대고 속삭이지
나는 한낮의 어지러움, 촘촘히 볼우물에 고이지
나는 젖몸살 앓는 싹눈, 장미 빛 말을 머금지
나는 독침, 말랑거리는 혀에 착지하지
나는 높새바람, 당신의 쇄골 부드러운 능선을 파고들지 
나는 저장해둔 감자, 당신의 심장부에 핀 푸른 솔라닌

치명적인 꽃이지.
 
 


시안, 2008,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