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가오리 / 이명윤
자갈치역 지하도 납작 엎드린 등. 쏟아지는 눈길. 껌처럼
달라붙은 저 눈빛을 어디서 보았더라?
며칠 전 어시장 좌판, 큼직한 날개를 펼치고 엎드려 있던
더 할 말 없다는 듯 아랫배에 입을 숨기고 있던 가오리,
버스가 서지 않는 오지의 지명처럼 쓸쓸히 지나쳤던 그때 그
가-오-里,
바람 부는 날 십리를 달고 온 가방을 던져 놓고
팽팽한 연줄에 가오리를 달면
갯바람은 손을 쥐락펴락 둘둘 얼레를 풀고
가오리 한 마리 꼬리를 흔들며 하늘바다를 헤엄쳐 올랐지
하늘은 제 몸에 얼마나 많은 칼날을 숨기고 있었던가
어지럽게 돌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던 가오리
뒤 돌아 보았을 때 가재미눈을 닮은 생선가게 그 여자
도마 위에 펼쳐진 가오리의 날개를 냉큼 잘라버렸었지……
지하철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씁쓸히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긴 통로를 숨 가쁘게 달려온 바람, 죽은 듯 엎드린 그의 등에
펄럭, 손을 얹는다.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2008년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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