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 / 배용제

문근영 2008. 11. 12. 11:40

                      Giuseppe Marchetta / 출처 [밤의 날개]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 

 

 

 TV에서 본 스타트랙이라는 영화, 몇 세기 후라던가? 물체나 사람이 (혹은 그냥 생명체) 원반에 올라 스위치를 누르면 원자분해되어 어디론가 전송되었다. 그리고 목적된 곳에서 정확하게 재결합되어 나타났다. 지옥이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1

 나는 자주 꿈을 꾼다

 의식의 미세한 입자들이 신비로운 곳을 향해 날아간다

 환상 속 연인과 동침을 하며 춤을 춘다

 때때로 예언자처럼 먼 미래에 미리 가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내 꿈의 성능은 엉망이어서

 변질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더 많다

 스핑크스 형상으로 사막의 모래바람에서 우우거리거나

 털 없는 늑대가 되어 붉은 달을 물어뜯는다

 암흑의 전당포에 들러 추억을 저당 잡히고 새로운 길을 산다

 흘러나간 그림자 모두 거친 발톱을 세운다

 그러자 앙상한 뼈와 해골을 뒤집어쓴 내가 뒤척인다

 그곳에서 여러 모양의 사람들을 구경한다

 단세포 같은, 벌레 같은, 바람 같은, 짐승 같은, 로보트 같은, 석탑 같은, 공룡 같은, 괴물 같은......

 검은 석실에 갇혀 바둥거린다. 나는 겁에 질린

 영혼을 꺼내 짓이기면서 사나운 울음소리를 낸다

 출구없는 꿈을 벗어나려고

 의식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댄다

 오, 꿈은 이토록 견고한 공포를 향해 나를 보냈던가

 어쩌려고 내 생은 한동안 꿈의 의식을 건설했던가

 잠자리에 누워 채 걷히지 않은 비명의 메아리를 토한다

 나는 절망의 입자로 재결합된다

 몸밖으로 증발되는 무수한 물기, 꿈의 증거를 말리고 있다


 2

 내 몸 안에서 무언가 끝없이 전송된다

 호흡이, 시선이, 소리가, 체온이, 청춘이, 눈물이, 생각이, 생각속 상상이 전송되고, 지친 희망들이 전송되고, 엄청난 양 의 기억들이 날마다 미래를 향하여 전송되고, 내가 가진 자그마한 종교가 두려움 또는 가벼운 신앙으로 전송된다. 그리고, 흑백의 내 생이 천천히 두꺼운 무덤을 향해 전송되고 있다

 

                                                                                                            - 배 용 제


 

* 1997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울고 있는 아이


시장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아이.
울면서도 과자를 먹고, 중고 전자상 티비를 보며 울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울고.
선들이 토막나고, 그릇들이 흥정되고, 앉은뱅이 수레가 지나가고,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겨우 빠져나가고, 땡중이 구걸하고, 그사이 몇 번인가 닭 목이 비틀어지고, 다시 전도사가 지나가고, 튀김들이 익어가고, 모든 걸 구경하는 아이가 울고, 서성이며 울고, 또 울고.
공중으로 첫 별이 꽂히고, 바람이 뒤섞인 냄새 사이를 휘청이며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그곳에 서서 아이는 울음이 젖어 연거푸 울고.
세월이 가고,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수염이 돋아나고, 주름이 패이고, 머리칼이 하얗게 바랠 때까지 그저 울고.

 

  나는 미친 꿈을 꾼다 1
 
 
             길마다 붉은 안개가 자란다. 밤이되면, 공포의 파편들이 도시를
             지배한다. 거대한 꿈의 수용소에서는 미친 꿈들이 탈출하고, 유리창
             마다 기형의 불빛이 얼룩진다. 문들은 돌연변이들에 의해 포위된다.
             나는 식은 땀을 흘린다. 안개의 늪에 결박당한다.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발목이 빠지지 않는다. 부랑자처럼 떠돌던 것들이 다가온다.
             나를 최상의 은신처로 지목한다. 내장을 도려낸 뒤,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번식한다. 나는 뒤죽박죽이 된다. 숨이 막혀 헐떡인다. 공포
             의 파편들은 나를 저격하기 시작한다. 온몸에 환상의 바늘이
             꽂힌다. 나는 마취된다.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다. 머리 속으로 꿈의
             이물질들이 가득 몰려든다. 머리칼을 곤두세우며 벌겋게 달아오른

             꿈들이 줄줄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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