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 / 김경주

문근영 2008. 11. 12. 10:38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  / 김경주



  깊은 곳에서 자란 살들은 차다

  고등어를 굽다 보면 제일 먼저 고등어의 입이 벌어진다 아...... 하고 벌어진다 주룩주룩 입에서 검은 허구들이 흘러나온다 찬 총알 하나가 불 속에서 울고 있듯이 몸 안의 해저를 천천히 쏟아낸다 등뼈가 불을 부풀리다가 녹아내린다

  토막을 썰어놓고 둘러앉아 보라색들이 밥을 먹는다
  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 후 입 안의 비린내를 품고 잠든다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보라색 입을 쩝쩝거린다

  어머니 지느러미로 바닥을 치며 등뼈를 세우고 있다 침좀 그만 흘리세요 어머니 얘야 널 생각하면 눈을 제대로 못 감겠구나 옆구리가 벌어지면서 보라색 욕창이 흘러나온다 어머니 더 이상 혀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 몸에 물을 뿌려주며 혀가 가슴으로 헤엄쳐가는 언어 하나를 찾았다 생이 꼬리를 보여줄 때 나는 몸을 잘랐다

  심해 속에 가라앉아 어머니 조용히 보라색 공기를 뱉고 있다 고등어가 울고 있다

 

 

물새의 初經(초경) /김경주

 

 

 

빛이 그리는 그림 위에 새들이 긴 어둠을 만들고 지나간다 

나무들이 수컷을 향해 물관을 들어올리며 흰 김을 피워올린다

물새의 하루에 그 물관은 바깥이었다 

나는 아내(我內)가 없다 아내가 없어도 코를 파는 짐승은 인간뿐이다

물새의 초경(初經)이 시작되는 바다에 오면 물은 보라색으로 시작된다

나는 수첩 속의 짐승들을 몰고 와 이곳에서 나무로 빚은 술을 마신다

비밀이 많은 나무로 빚은 술은 물관의 냄새가 치밀어오르고

인간의 허공에서 물새의 임종을 바라보며

가장 높은 가슴에 자신의 위도(危道)를 세운다

물 속의 산에서 검은 이파리의 향들이 올라오면

나무들이 더이상 부풀릴 수 없는 물관에

승려들은 물새의 목소리를 닮은

종(種) 하나를 달아주고 하산했다

등대는 바다 위의 절이다 

바람의 불공(佛供)이 시작되고 있다

 

목련/김경주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12년 동안 자취(自取)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 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 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 / 김경주

 

 

    1


    이를테면 빙하는 제 속에 바람을 얼리고 수세기를 도도
  히 흐른다
    극점에 도달한 등반가들이 설산의 눈을 주워 먹으며 할
  말을 한다 몇백 년 동안 녹지 않았던 눈들을 우리는 지금
  먹고 있는 거야 얼음의 세계에 갇힌 수세기 전 바람을 먹
  는 것이지 이 바람에 도달하려고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거룩한 인생에 지각을 하기 위해 산을 떠돌았어 그리고
  이따금 거기서 메아리를 날렸지


   삶이
        닿지 않는 곳에만
                         가서
                              메아리는
                                       젖는다

 

    메아리는 바람 앞에서 인간이 하는, 유일한 인간의 방
  식이 아니랄까
    어느 날 거울을 깨자 속에 있던 바람이 푸른 하늘을 향
  해 만발한다
    그리고 누군가 내 얼굴을 더듬으며 물었다 우선 노래부
  터 시작하자고.

 

2


  바람은 살아 있는 화석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사
라진 뒤에도 스스로 살아남아서 떠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 속에서 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바람의
세계 속에서 울다 간다


바람이 불자
            새들이
                   자신의
                         꿈속으로 날아간다

 

  인간의 눈동자를 가진 새들을 바라보며 자신은 바로 오
는 타인의 눈 속을 헤맨다
  그것은 바람의 연대기 앞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희미한
웃음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바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말라는 농담 정도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외계 /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에게/ 김경주

 

매미는 우표였다
번지 없는 굴참나무나 은사시나무의 귀퉁이에
붙어살던 한 장 한 장의 우표였다 그가
여름 내내 보내던 울음의 소인을
저 나무들은 다 받아 보았을까
네가 그늘로 한 시절을 섬기는 동안
여름은 가고 뚝뚝 떨어져 나갔을 때에야
매미는 곁에 잠시 살다간 더운
바람쯤으로 기억될 것이지만
그가 울고 간 세월이 알알이
숲 속에 적혀 있는 한 우리는 또
무엇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이냐

모든 우표는 봉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연이다

허나 나무여 여름을 다 발송해 버린
그 숲에서 너는 구겨진 한 통의 편지로
얼마나 오래 땅 속에 잠겨 있어 보았느냐
개미떼 올라오는 사연들만 돌보지 말고
그토록 너를 뜨겁게 흔들리게 했던 자리를
한번 돌아보아라 콸콸콸 지금쯤 네 몸에서
강이 되어 풀리고 있을
저 울음의 마디들을 너도 한번
뿌리까지 잡아 당겨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굳어지기 전까지 울음은 떨어지지 않는 법이란다


 

폭설 민박 편지/ 김경주



낡은 목선들이 제 무게를
바람에 놓아주며 흔들리고 있다
벽지까지 파도냄새가 벤 민박집
마을의 불빛들은 바람에도 쉽게 부서져
저마다 얼어서 반짝인다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연필심이 뜨거워지도록
편지지에 바다소리를 받아적는다
어쩌다 편지지 귀퉁이에 조금씩 풀어 넣은 그림들은
모두 내가 꿈꾼 푸른 죄는 아니었는지
새.나무.별.그리고 눈
사람이 누구하고도 할 수 없는 약속 같은
그러한 것들을 한 몸에 품고 잠드는
머언 섬 속의 어둠은
밤늦도록 눈 안에 떠있는데
어느 별들이 물이 되어 내 눈에 고이는 것인가

바람이 불면 바다는 가까운 곳의 숲 소리를 끌어 안고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그러나
나무의 속을 열고 나온 그늘은 얼지 않고
바다의 높이까지 출렁인다
비로소 스스로의 깊이까지 들어가
어두운 속을 헤쳐 제 속을 뒤집는 바다,
누구에게나 폭설 같은 눈동자는 있어
나의 죽음은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눈동자를 잃는 것일테지
가장 먼 곳에 있는 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프고
눈 안을 떠다니던 눈동자들,
오래 그대의 눈 속을 헤매일 때 사랑이다
뜨거운 밥물처럼 수평선이 끓는가
칼날이 연필 속에서 벗겨내는 목재의 물결 물결

숲을 털고 온 차디찬 종소리들이
눈 안에서 떨고 있다
죽기 전 단 한번만이라도 내 심장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심장을 상상 만하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언젠간 세상을 향한 내 푸른 적의에도
그처럼 낯선 비유가 찾아오리라는 것
폭설을 끊고 숲으로 들어가
하늘의 일부분 이였던 눈들을 주워 먹다보면
황홀하게 얻어맞는 기분이란 걸 아느냐
해변에 세워둔 의자하나 눈발에 푹푹 묻혀가는 지금
바라보면 하늘을 적시는 갈매기
그 푸른 눈동자가 바다에 비쳐 온통 타고 있는 것을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김경주

내 우주에 오면 위험하다
나는 네게 내 빵을 들켰다

기껏해야 생은 자기피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한 겨울 얼어붙은 어미의 젖꼭지를 물고 늘어지며
눈동자에 살이 천천히 오르고 있는 늑대
엄마 왜 우리는 자꾸 이 생에서 희박해져가요
내가 태어날 때 나는 너를 핥아주었단다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싶어요
네 음모로 네가 죽을 수도 있는 게 삶이란다
눈이 쏟아지면 앞발을 들어
인간의 방문을 수없이 두드리다가
아버지와 나는 같은 곳에 똥을 누게 되었단다
너와 누이들을 이곳에 물어다 나르는데
삼십년 동안 침을 흘렸단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인간 곁에 가기 위해 발이 두 개나 잘려나갔다
엄마 내 우주는 끙끙 앓아요
매일 발자국 소리하나 내지 않고
그녀의 창문을 서성거려요
자기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잠이 깨는 짐승은
너뿐이 아니란다

얘야 네가 다 자라면 나는 네 곁에서 길을 잃고 싶구나

 

엄마 …….

 

 

우주로 날아가는 방2- 새와 휘파람.../ 김경주

 

 밤이 되자 빨랫줄에 앉은 새들이 검은 물을 토하기 시

작한다

 

 말더듬이 소년이 지붕 위에 올라가 휘파람을 분다 새가

허공에 남기고 간 발자국들이 바람에 조용히 부서진다 휘

파람이 날아간다는 것은 제 영혼의 양떼들이 계절을 옮겨

날아간다는 거 밤에 지붕 위에 올라간 사람이 부는 휘파

람은 들리지 않는다 새들이 물고 날아가기 때문이다

 

 옥상에 널어놓은 이불 속에서 터진 솜들이 양의 내장처

럼 흘러나와 있다 흰 솜을 뚫고 나온 수백 마리 미색의 벌

레들이 밤하늘로 탈빛한다 아버지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만큼 사라져가는 것이에요 그런 말 하지 마라 내 양(羊)들

이 눈물을 흘리잖니 그렇지만 아버지 그건 아버지의 양이

에요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만큼 사라져가는 것이다라고 생

각하면 눈물이 난다 봄이면 제 영혼을 조금씩 조금씩 털

다가 사라져버리는 나비처럼

 

 새가 죽은 나비를 물고 산방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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