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2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윤애라

문근영 2020. 1. 1. 21:01

시조 당선작- 고요한 함성 /윤애라

 

 

 

바람도 숨 고르며 앉아 쉬는 파장 무렵
청각 장애 부부가 하루를 결산한다
손목에 감긴 말들이 좌판 위에 떨어지고


그림=김자경 기자

하루 종일 졸고 있던 파 한 단에 이천 원
쪽파의 매운 인생 손톱 밑은 아려와도
숨었던 말문이 활짝, 꽃으로 피어난다


입으로 다진 기약 소리로나 묶던 다짐
저 고요한 소란에 싹둑 싹둑 잘려 나간다
반듯한 말들은 어디, 숨을 데를 찾고 있고


달콤한 고백인가 아내 얼굴이 환해진다
젖은 어깨 부딪치며 손으로 가는 먼 길
초승달 온몸을 기울여 남은 달빛 쏟고 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응모작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성했다. 시조의 국제화를 바라는 마음에 기대어 동봉한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와 내용 면에서 우리 시대의 삶을 구체화하는가에 주목해 응모작을 선별했다. 5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염창권 심사위원(왼쪽), 박권숙 심사위원

최정희의 ‘스파이더맨’은 ‘창(槍)’과 ‘창(窓)’이라는 중의적인 삶의 형태를 안정감 있게 의미화했으나 동봉한 작품이 따라주지 못했다. 박민교의 ‘뭉크의 절규, 숨을 쉰다는 것’은 불모의 현대성을 감각적으로 재현했고, 이복렬의 ‘투신하는 태양-울돌목’도 ‘울돌목’이라는 역사적인 지명을 볼륨감 있는 이미지로 환기했으나, 비판적 감성 그 자체에 머무른 것이 흠이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이은영의 ‘맷돌’과 윤애라의 ‘고요한 함성’이었다. 먼저 ‘맷돌’은 안팎이 혼재된 세계를 자아 내부에 끌어들여, 다독이고 숙성시키다가 마침내 환하게 펼쳐내는 발상이 돋보였다.

이에 비해 ‘고요한 함성’은 노점상을 하는 청각 장애 부부가 몸으로 말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능숙한 비유를 통해 형상화했다. 이를테면, “숨었던 말문이 활짝, 꽃으로 피”는 생명력이나 “초승달 온몸을 기울여 남은 달빛 쏟고 있다”와 같은 우주적 감성은 대상 세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다른 작품에서도 당선작에 버금가는 기량을 확인 할 수 있어, 이견 없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위로의 말과 함께 내년에 더 좋은 결실로 만날 수 있기를 부탁드린다.

염창권 박권숙 시조시인

막연하게 행운을 기다리며 이 겨울의 벼랑 끝에 서 있던 나는 뜻밖에 신춘문예 당선의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허공이 내 발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비로소 발걸음을 한발 앞으로 내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조는 줄곧 괄호를 만들어놓고 내게 질문을 했습니다. 정형의 틀은 마치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처럼 힘들고 재미있었지만, 시조의 옥죄는 여유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적합한 표현이 아니라고 뱉어낸 말들을 주워 담던 수많은 밤, 어지러운 말들의 진창에 곤두박였다가도 다시 일어서던 새벽빛, 여전히 괄호는 두 개의 밝은 초승달처럼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봅니다. 독자의 심장을 달구는 말들을 찾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헤매야겠지요.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멉니다. 그러나 이제 떳떳하게 새 자루를 준비하겠습니다.

고향의 파도가 끊임없이 나를 불러도 달려가지 못했는데 국제신문사의 부름을 받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아직도 캄캄하고 먼 길이지만 또렷한 등불을 밝혀주신 심사위원님, 살아 숨 쉬는 말을 가르쳐 주신 권숙월 선생님 노중석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 십 년 동안 봄과 가을을 함께했던 백수 시조아카데미 회원님들, 글의 지평을 넓혀 주신 김천 문인 협회 선생님들,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우표를 붙여 보내도 소식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기쁨으로 울먹이실 나의 부모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사의 주인이 되시는 나의 하나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약력=1963년 부산 출생. 2004년 자유문학 시 부문 신인상. 201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8년 백수문학신인상. 백수 시조아카데미 회원. 김천 문인협회 회원. 현재 논술 교사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