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백령도! 1980년대 중반, 나는 이곳에서 갓 소위의 군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엔 인천에서 여객선을 타고 10~11시간이 걸렸다. 내륙에서 나고 자란 내게 섬 생활은 참으로 답답했다.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바다였다. 육지로부터의 거리감이 더욱 고립감과 그리움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기실 육지는 가까웠다. 북쪽으로 장산곶이 바라다 보이고, 구호로 써놓은 큰 글씨가 선명했다. 그 가까운 육지는 바로 ‘적지(敵地)’였다.
머나 먼 백령도, 가까운 장산곶
살벌한 군사적 대치상황을 접어두면, 백령도는 아주 멋있는 곳이었다. 사곶 모래사장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연 활주로다. 모래사장 위를 지프차로 질주하기도, 그 위에서 병사들과 소프트볼이나 축구경기를 하기도 했다. 휴일엔 절경인 두무진에 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통일이 되면 이곳은 끝내주는 관광지가 될 텐데.” 모두들 입을 모았다.
백령도 인근은 심청 이야기의 무대였다. ‘연꽃’이란 이름의 마을이 있었는데, 가끔 마을 식당에 전화를 한다. “싱싱한 회 없어요? 들어오거든 연락 좀 주세요.” 식당주인이 북한 말투로 답한다. “알았스구레.” 까나리가 특산물이고 해삼, 전복 등 많은 해산물이 나는데, 뜻밖에 항상 먹을 수는 없었다. 군사적 이유로 어로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육지와 관련을 맺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여객선 운행 여부를 결정할 날씨는 일상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백령도에서 나는 1년을 근무했다. 내 후임으로 후배 장교들이 연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그 후임자는 백령도 산봉우리에서 눈앞의 남쪽 바다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겠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전시도 아니고 교전도 없었는데, 어떻게 46명의 젊은 장병들과 함께 초계함 천안함은 침몰한 걸까?
이미 보름이 지났건만 마치 진실게임을 하듯 오리무중이다. 내가 아는 우리 군의 정보능력이라면, 지금쯤 몇 가지 결정적 정보를 취합하여 그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련만. 항간에는 저마다 선입견에 따라 나름의 추측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다는 말은 예단을 배제하고 원인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자세이다.
그런데 사건 이후의 모습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여론의 눈치를 봐가면서 대충 넘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생기게 한다. 진실은 지방선거 이후에나 알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그럴 듯하다. 최근 2~3년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몇몇 사건처럼 시간을 끌다가 끝내 속시원한 결말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세상을 살다보면 실수도 하고 사고도 생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걸 처리하는 능력이다. 항간에 떠도는 어떤 원인이 사실이라도 이미 무력함이나 무능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잡고 책임지는 자세로 처리한다면 얼마든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분위기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인터넷에선 안보장관회의에 대해 ‘군 면제자들의 지하벙커회의’라며 야유를 보내고 있다. 생존 장병들이 환자복을 입고 등장한 것을 보고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그동안 면접을 제한한 데 대한 변명의 의미도 있었을 텐데,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결국 환자복이 위기에 처한 군의 모습을 상징하지나 않았는지.
천안함 침몰과 함께 우리 군도 침몰할 것인가
뭔가 숨기는 듯한 태도가 자꾸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불신을 쌓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군사보안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군사보안이 기껏 제 눈만 가리는 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군사기밀로 지킨 군사력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군사보안을 경직되게 운영하다 도리어 더 많은 군사기밀을 털어놓아야 할 처지로 몰릴 수도 있다. 군사보안에 세심한 유의를 하면서도 요령껏, 국민에게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 강한 국방력은 국민의 신뢰와 일체감 위에서만 가능하다.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한 것이 내부의 불신이다. 천안함 침몰과 함께 우리 군도 따라서 침몰할 것인가?
백령도에서 근무가 끝나면 동료들과 의기투합하는 게 낙이었다. 저녁에 마을에서 술로 회포를 풀고 파하여 돌아올 땐 자욱한 바다안개가 드리우기도 했다. 숙소에 가까워지면 길을 밝혀주는 보안등과 초병의 경례소리가 반가웠다. “반장님, 내일 아침에도 배가 안 뜬답니다.” 그래, 엄 계장 출장도 김 상병 휴가도 미뤄지겠군. 모레는 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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