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19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돌들은 재의 꿈을
최보윤
흔들리는 날씨를 점치는 일이었지
들개가 물고 가는 싱거운 돌 하나
생이란 매일 그 예보에
실패하는 법이라네
잎사귀 쥐었다 놓은 바람의 손금처럼
달의 무늬 되지 못한 주름진 돌들은
으스름 달 뜬 밤이면
뜬 눈으로 갈라지네
천년을 살 것인 양 견적 없이 괴로워도
뜨거운 재의 꿈을 꾸고 있어 저 멀리
한 마리 개가 오는 동안
선(善)한 피를 흘릴 거야
최보윤 : 1991년 인천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석사 졸업.
[2019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당 깊은 집
강대선
바랭이 강아지풀 숨죽이는 저물녘에
장독대 틈 사이로 구렁이 지나간다
고요는 툇마루에서 먼지로 층을 쌓는다
우체통은 주인 없는 고지서를 받아놓고
별들은 감나무 가지에 오종종 앉아 있다
처마는 구부러지고 기와 물결 끊어진다
바람이 들락거리는 양주댁 방안으로
손주들 웃는 모습 흙벽에 즐비한데
흩어진 근황을 묻는 달빛만 수심 깊다
강대선 : 1971년 전남 나주 출생. 전남대 불어불문학과 조선대 국어교육과 졸업. 광주여상고 교사.
[2019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고드름
고성만
창살의 봉인에서 해제된 집이 있다
유성우 지던 하늘 내 손에 쥐어진 별
여우가 삼켰다 뺐다 유혹하던 유리구슬
원추형 거꾸로 선 꿈에 맺힌 물방울
미세한 금, 새떼가 저 멀리 흩어진다
바람이 칼질한 공중 벌겋게 부푼 노을
지붕을 걸으며 조심조심 내려온다
내연의 열기로 밥을 짓는 처마 끝
또 하루 저물어 간다 창살 다시 꽂힌다.
고성만 : 1963년 전북 부안 출생. 1998년 <동서문학> 시 당선, 광주광역시 국제고등학교 교사 명예퇴직. 문예지도사로 활동 중.
[2019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세신사
이현정
조각가가 꿈이었던 팔목 굵은 사내는
대리석 목욕대 위 모델을 흘깃 보고
한 됫박 첫물 뿌리며 데생을 시작한다
한때는 눈부셨던 세차장 사장도
지금도 눈부신 성형외과 의사도
실상은 꼼짝 못하고 몸을 맡긴 피사체
깔깔한 때수건 조각도처럼 밀착시켜
핏줄까지 힘주어 묵은 외피 벗겨내면
곧이어 환해진 토르소, 두 어깨 그득하다
수증기 송송 맺힌 목욕탕 한 편에서
날마다 극사실주의 석고 깎는 조각가
두 손은 북두갈고리 거친 숨을 뱉는다
이현정 : 1983년 안동 출생. 대구 교육대 국어교육심화과정 졸업. 중앙시조백일장 장원(2017), 차상(2018). 대구시 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재직.
[2019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페디큐어
박진형
조그만 발톱에서 새로운 꽃 돋아나
꽃밭이 마법으로 풍성해질 때까지
발걸음 사그라지는 발끝을 생각한다
어머니 흔들리는 건 그늘을 입기 때문
씨방 속 남은 열기로 닳은 당신 세워보면
점묘된 눈물자국은 혼잣말을 삼킨다
돌아본 발자국 소리 얼굴을 내밀 때
그믐달 위로 하나 둘 피어난 바닥꽃
꽃잎은 울지 않기 위해 발끝부터 타오른다
박진형 : 1968년 전남 구례 출생. 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과 졸업.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 고등학교 교사. 시란 동인, Volume 동인. 용인 문학회 회원, 시에문학회 회원.
[2019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MPD(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 다중인격장애)
김나비
포르말린 가득 찬 유리병을 본 적 있니
시간을 베고 누운 병 속의 표본처럼
내 몸속 수많은 사람 보관되어 있지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있는 몸통에
각진 불이 켜지는 한밤이 찾아오면
사람이 꿈틀거리는 유충처럼 보이지
몸속엔 살인범도 그를 쫓는 형사도 살지
술병의 병목 부는 나팔수도 하나 있지
심장엔 물방울 같은 아이들이 뛰어 놀지
바람이 어깨 펴고 옆구리를 치고 가면
철커덕 휘청이며 키를 높이 세우지
가슴에 현대아파트 이름표가 반짝이지
김나비 : 1970년생. 본명 김희숙.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우석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업.
[2019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나이테를 읽다'
최정희
생은 온통 흔들림의 기억으로 남는가
나무의 가슴은 소용돌이로 어지럽다
상처를 보듬어 안은 강물의 파문처럼
안으로 삭혀 삼킨 울음의 무늬인지
밖으로 밀어냈던 몸부림의 흔적인지
손금의 운명선같이 가지들은 뻗어나가고
빛과 어둠 현실과 이상, 그 삶의 온도차
바람은 언제나 제 안에서 일었다
우듬지 경계를 넘어 푸른 길을 찾는데
현기증으로 사는 일에 멀미가 나는 날엔
발밑의 뿌리들은 따뜻한 흙 움켜 잡는다
연둣빛 어린 연어 떼 돌아오는 가지 끝
[2019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스크랩
이희정
건장한 헤드라인에 낱낱이 포위되어
포지션 따라 줄 맞춘 활자들 그 사이
예각의 커터 칼날이 가로지른 행간들
이슈가 이슈를 실시간으로 덧칠한
지면마다 시시비비 들끓는 파열음에
팩트는 구겨진 채로 무혈의 접전이다
전모가 드러난 가십은 접어 두고
목적지에 소환될 진술은 따라간다
치명적 오독이 없는 재활의 분리수거
이희정 : 1972년 출생, 방통대 국문과 졸업. 포항소재문학상 시부문 최우수, 샘터 2017 6월호 시조 입선.
[2019 영주신춘문예 당선작]
고무공 성자
고윤석
어라, 쪼그만 녀석 여간내기 아니었네
엉덩이 뻥 내질러도, 허리를 작신 밟아도
도무지 쓰러지지 않네,
두 손 들 줄 모르네.
누르면 꼭 그만큼 이 악물고 튀어 올라
가슴속 숨긴 깃발 하늘 높이 흔들다가
다시금 지상에 내려
낮은 곳을 살피네.
마음조차 둥글어서 각진 세상 품은 걸까?
진자리 마른자리 아래로만 길을 찾는
속 텅 빈 고무공 성자,
걸음마저 탱탱하네.
고윤석 : 1961년 충남 서산 출생. 한양대 졸업. 동국대 법학박사. 현직 교원. 제17회, 제18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동상 수상. 2017년 중앙시조 백일장 11월 장원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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