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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1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전선용 외

문근영 2018. 12. 20. 02:20

[제11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전선용 외


대상
복숭아 / 전선용



달이 몰락한 골목에서 떨어진 유년을 줍는다
술 취한 사내가 더위에 끌려가는 언덕배기
복숭아를 담은 봉지가 비틀거린다
보름달을 따왔노라고 소리치며 귀가한 아버지
물컹한 복숭아를 잠든 내 입에 물리곤
까칠한 턱수염을 볼에 비볐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얼굴만큼 불그레한 복숭아
복숭아 과육이 배여 나온 진득한 기억은
머릿속에 포스트잇처럼 붙었다가
여름이면 밤하늘을 물끄러미 보게 했다
그 해 별은 왜 그리 반짝이던지,
별이란 별은 죄다 당신별이라 했다
별을 유난히 좋아해서 복숭 씨 같은 별을 삼키고
울대에서 키우길 서너 달,
아버지는 북쪽 하늘에 점지해 둔 별자리로 갔다
복숭아 밭뙈기 몇 마지기 살 돈을
왜 병원에 주느냐고 버티 건 순전히 나 때문
늦은 귀가도 별을 사랑한 것도 다 자식을 위해서였다
학명에도 없는 복숭아 별자리가 내 기억 속에 들어서고
아버지와 나만 아는 밤하늘에
복숭아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최우수상
복숭아의 꿈 / 최경



이상도 하지
어떤 기척도 없이 뺨이 붉어지고 있다
변변한 약속 없이 내 몸에선
당신의 오랜 손때가 묻어난다.
그곳에서 이곳으로
당신이 세워 놓은 저 가늘고 긴 사다리가 거리라면
내 키를 접고 접어 계단을 잃어버리고 싶다
나이테를 꺼내 조각난 빛을 수혈 받는 동안
가슴이 토해내는 통증
당신을 향한 눈먼 유랑을 꿈꾼다.
목격되지 않아 뜨거운 당신의 눈 코 입이
수억 광년의 속도를 가로질러 온다.
구멍 난 오후를 메우던 바람이
달콤한 당신의 피 냄새를 내 귓속에 불어넣는다.
칼끝을 대지 않아도 물크러지는 마음은
당신이 포함된 슬픔의 단맛이라
그리움만 따로 꽉 깨무는 씨앗이 필요하다
당신이 불러낸 먼 풍경을 훔치며
하루치의 심장을 탕진한다.
눈먼 높이의 열매에 닿기 위해
태양인 당신을 흉내 낸다


더러 당신을 따려다
나를 딴 사람들 손이 붉었으나





우수상
장날 / 전진욱



복숭아 몇 소쿠리 이끌고
마른 향내 내다 팔던 어머니의 젖이 돈다.
내 기억에 심어진 젖의 뿌리는
좌판 위에 펼쳐진 복사빛 앳된 가슴
어린 것에게 한 입 젖을 물린 채 호객을 한다.
한 철 복숭아 농사에 목숨 걸었던
아버지의 치열한 그늘이
식구들 목숨 줄 근근이 이어주곤 했다
그 시절 우리들이 먹을 수 있었던 복숭아는
파장 떨이에도 팔리지 않던
속 살 물러터진 것들 뿐,
장이 좋은 날엔 그 마저 허탕 친 날이 많았다
한때 벼랑 끝에 선 내 생을 원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끝내 팔다 남은 복숭아의 짓무름처럼
통조림 속 널브러진 복숭아로 돌아 왔을 때
으스러지게 안아주시던 어머니의 물컹한 가슴
순간, 물러진 뒤에야 더 달아진
장바닥 그 젖 냄새를 기억했다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젖을 물고 있는 아이의 살갗에 복숭아무늬 촘촘히 박혀
솜털조차 귀티가 난다
잉태의 시간을 견뎌온 부풀림이 자라
복숭아 향 젖이 돈다.
열 손가락 다 미어진 당신의 손에
복숭아 털, 가시로 콕콕 박혀도
좌판 앞에서 당당히 젖을 꺼내 물리던 어머니
저문 열 하루장 귀퉁이에서
젖몸살 앓던
연분홍 어머니가 다문다문 팔리고 있었다.





우수상
입, 덫 /



불임의 시간을 버티는 것은 뾰족한 뜨개바늘이었어요.
난포를 키우는 시간, 아이는 계속 빨갛게 흘러 내렸고
제멋대로 커 버린 나무는 바람에 뒤엉키기 일쑤였어요
딱딱한 플라스틱 테스트기 엔 언제나 빨간 색 한 줄,
명징한 한 줄은 외로움의 상징이었어요.
시계 속에 사는 투명한 거미를
거미가 감아올리고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그때 알았어요,
고양이는 아이처럼 울다 나한테 들키곤 했죠.
뜨거운 물 한 바가지에 울음소리가 뚝 끊어지기를 몇 번
뜨개바늘로 뜨고 있는 투명한 시간들이 끊어질 때쯤,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봤어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연분홍 엉덩이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렸어요.
보송한 솜털,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달콤함이 햇살에 갇혀 엉겨 붙고 있었어요.
아스팔트를 녹일 듯 매미는 울어대고
바람조차 잠에 녹아들 때, 손에 녹아내리는 꿈을 한 입 베어 물었어요
입안엔 피치향이 퍼지고 시간은 분홍색을 입었어요.
뜨개바늘이 투명대의 시간을 뚫어 버렸어요.
테스트기 엔 빨간 두 줄,
복숭아가 익어가고 있어요.





우수상
무른 복숭아 / 유현비



발목에 힘을 주고 나무에 매달리는 일
아버지의 입에서는 파문이 일고 있다


바람을 품고 떨어지는 복숭아
가장 높은 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발목을 절면서 그 별을 딴다.
단맛처럼 통통하고 무른 복숭아를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들은 터진 물감처럼 힘이 없다
아버지는 열매가 되어서
꼭지를 떼고 미끄러진다.


나는 손금이 짙은 바구니에 복숭아를 담는다.


멍이 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모두의 상처가 물렁해지는 시간
아버지는 옆구리에다 복숭아 냄새를 닦는다.


이빨이 성하지 못해 볼이 얇은 아버지
나를 등지고 걸어가는 동안
무른 복숭아를 반으로 나누고 있다

아버지의 검은 입속으로 상처를 녹이는
복숭아 씹는 소리










제11회 복숭아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심사평에 앞서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는 복숭아문학상 심사를 맞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또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문학상 운영과 지역문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오신 청미문학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투고한 작품들은 저마다 사연을 담은 나름대로 수준을 갖춘 의미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심사를 위해 몇 가지 기준을 마련하였다. 첫째로, 얼마나 시적 요소들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예를 들면 운율, 이미지, 신선한 표현 등이다. 둘째로,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공감력 있게 풀어내고 있는가. 셋째,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작품 속에 얼마나 잘 녹여내고 있는가. 넷째, 앞의 요소들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한 편의 시로 형상화시키고 있는가 등이었다.   


이러한 기준에 맞춰 최종심에 다섯 편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복숭아>11, <복숭아의 꿈> 19, <무른 복숭아> 21, <입, 덫> 18, <장날> 1 이 그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복숭아>와 <복숭아의 꿈>이 대상을 두고 겨루게 되었다. 두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는 수작이었다. 먼저 <복숭아>는 일단 ‘복숭아’라는 시적 대상을 시적화자인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별’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면서 이끌어가는 시상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복숭아의 꿈>은 시적 대상에 대한 참신한 착상과 표현이 시선을 끌게 하였다. 특히 ‘복숭아’의 이미지를 화자의 내면 깊이 있게 끌어들여 ‘당신’에게 다가가고자하는 심리를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복숭아>를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시적 대상인 ‘복숭아’의 이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시적 표현이나 구성 면에서도 완성도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작들이었다. 특히 <입, 덫>은 참신한 발상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제재의 시적 형상화 면에서 아쉬운 작품이었다. <장날>도 사연을 제재의 특성과 잘 연결시켜 전개하고 있는 점은 좋았으나 너무 이야기가 길게 풀어진 느낌이었다. 시적 응축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무른 복숭아>도 내용이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복숭아’와 ‘아버지’를 연결시켜 가족을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해주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으나, 좀 더 세부적이고 자연스런 시적 흐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상자들의 입상을 축하드리며 더 좋은 작품으로 문단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박영우 (시인,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이순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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