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Pino Daeni 의 여인들 /Italian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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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을 배우는 방법
문장은 도를 실어 나르는 것이고,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 도가 한 세상을 구해 건지기에 부족하고, 그 뜻이 텅 비어 수립한 것이 없는 자는 비록 그 글이 요란하고 분방하며 시가 화려하여도 이는 빈 수레를 몰고 가며 소리를 내는 것이나 배우가 풍월을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어찌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른 바 도와 뜻이란 것은 본시 더듬어 찾을 수 있는 형태가 없다. 제 몸을 세우고 임금을 섬긴 자취나 화복과 이해의 갈림에서 나아가고 버리는 것을 살펴 그 도와 뜻이 드러나는 것이다. 옛사람의 글을 좋아하여 섭렵코자 하는 자는 진실로 이를 구하는 방법이 있다. -〈서원유고서(西園遺稿序)〉 6-57
文所以載道, 詩言志者也. 故其道不足以匡濟一世, 而其志枵然無所立者, 雖其文嘲轟犇放而詩藻麗, 是猶驅空車以作聲, 而倡優談風月也. 何足傳哉! 然所謂道與志者, 本無形質可以摸索, 考其立身事君之跡, 與夫禍福利害之際, 所趣舍而道與志顯焉. 則好古人之文, 而欲涉獵焉者, 求之誠有術矣.
좋은 글을 짓고 싶은가? 훌륭한 시인이 되고 싶은가?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속을 채워라. 빈 수레는 원래 요란하다. 배우의 흉내로는 안 된다. 폼만 잡아서는 후세에 전해질 글 한편 남길 수가 없다. 글에는 정신이 담겨야 한다. 그 정신은 어디에 있나? 내 안에 있다. 정신이 없으면, 뜻을 잃으면, 글 한 줄 시 한 수도 쓸 수가 없다. 좋은 글은 어떤 글인가? 그 정신과 뜻이 형형하게 살아있는 글이다. 무얼 보고 알까? 글쓴이의 행실을 보면 안다. 화복이 갈리고 이해가 나뉘는 즈음에 그가 한 행동, 그의 몸가짐과 처세를 보고 안다. 말만 번드르하고 행실은 따로 놀면 그게 바로 빈 수레요, 놀음하는 광대다. 그러니 글 한 줄 시 한 수가 참 무섭다. 함부로 붓을 놀릴 일이 아니다.
정리:DaumCafe 이보세상
원본글: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