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굴러가는 동전의 경우 / 안태현

문근영 2018. 3. 17. 09:49

굴러가는 동전의 경우

 

   안태현

 

 

 

틈의 관자놀이에 교묘하게 숨는다 깊숙이

너는 더 깊숙이

자취도 없이, 시침 뚝 떼고, 조명처럼 꺼진다

 

네가 주머니에서 흘러나와 굴러가버린 저녁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던 영장류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

비는 쏟아지고

너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

빗방울이 깨지는 난간에서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너는 네 뒤를 의식하지 구르지 않으면 어김없이 뒤돌아보지 길을 잃지 않으려고

언제든 돌아갈 채비를 하듯

문고리마다 다족류의 냄새를 묻혀두지

 

내가 너에게로 굴러가는 게 이상하다 문득 너를 옹호하느라 꽃들의 저녁을 잊은 것도 이상하다

외곽에서 빙빙 돌다

너를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들도 이상하다

 

사람들은 너로부터 최초의 위선을 배우고

다발로 묶어서 숨기기 좋은 너의 검은 손가락이 심장을 콕 찌를 때마다 숨소리가 가빠진다

부푼 꿈들이 어지럽고 살벌한 거리에 넘쳐난다

 

어둠 속에서 납작하게 엎드려 뒤꿈치를 들고 찾아보는 너의 맹독성

대체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거지?

 

한 번 굴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일생은 검고, 틈이 많고, 나는 자주 너의 냄새를 좇는다

 

 

 

                       —《시인동네》2015년 겨울호

---------------

안태현 / 전남 함평 출생. 광주교육대학 졸업. 2011년 계간《시안》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이달의 신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배웅 / 김성대  (0) 2018.03.17
[스크랩] 배웅 / 김성대  (0) 2018.03.17
[스크랩] 의자는 생각한다 / 신철규  (0) 2018.03.17
[스크랩] 양초 / 함태숙  (0) 2018.03.17
[스크랩] 낙태 혹은 낙타 / 서정연  (0) 2018.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