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가는 동전의 경우
안태현
틈의 관자놀이에 교묘하게 숨는다 깊숙이
너는 더 깊숙이
자취도 없이, 시침 뚝 떼고, 조명처럼 꺼진다
네가 주머니에서 흘러나와 굴러가버린 저녁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던 영장류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
비는 쏟아지고
너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
빗방울이 깨지는 난간에서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너는 네 뒤를 의식하지 구르지 않으면 어김없이 뒤돌아보지 길을 잃지 않으려고
언제든 돌아갈 채비를 하듯
문고리마다 다족류의 냄새를 묻혀두지
내가 너에게로 굴러가는 게 이상하다 문득 너를 옹호하느라 꽃들의 저녁을 잊은 것도 이상하다
외곽에서 빙빙 돌다
너를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들도 이상하다
사람들은 너로부터 최초의 위선을 배우고
다발로 묶어서 숨기기 좋은 너의 검은 손가락이 심장을 콕 찌를 때마다 숨소리가 가빠진다
부푼 꿈들이 어지럽고 살벌한 거리에 넘쳐난다
어둠 속에서 납작하게 엎드려 뒤꿈치를 들고 찾아보는 너의 맹독성
대체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거지?
한 번 굴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일생은 검고, 틈이 많고, 나는 자주 너의 냄새를 좇는다
—《시인동네》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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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현 / 전남 함평 출생. 광주교육대학 졸업. 2011년 계간《시안》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이달의 신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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