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 환(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총선이 끝났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은데 비해 야당인 민주당은 81석, 민주노동당은 5석을 얻는데 그쳤다.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 같은 보수 여권 당선자를 합하면 여권은 185석에 이른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152석을 얻은 민주당 처지에서 보면 이번 총선 성적은 한 마디로 참담하다.
의석의 절대 열세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야당의 대표급 인사들이 줄줄이 낙선한 일이다. 당 대표인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역부족으로 무릎을 꿇었고, 이명박 후보와 대선에서 겨룬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이 긴급 투입한 정몽준 후보에게 길을 내주고 말았다. 김근태 김덕규 이상수 유인태 등 여권 거물들도 맥없이 무너졌다. 이제 그 당을 누가 이끌어갈지 걱정할 형편이 되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민심은 야당을 떠났다 수도권을 고스란히 여당에 넘겨준 것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지역별로 극명하게 표심이 갈리는 상황에서 언제나 선거의 승패를 좌우해온 수도권 민심이 미련 없이 야당을 외면하였음을 야권 사람들은 통절한 마음으로 재확인했을 것이다. 뉴타운 공약 때문에 졌다고 느끼는 야당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수도권 민심이 야당을 떠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선거 결과가 이런 지경인데도 어느 신문은 총선 결과를 논평하면서 “절묘한 표심”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명박 정부가 다수당으로서 지배적인 지위는 누리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절묘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그런 표현이 그럴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야당의 시각에서 보자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견제는 원칙적으로 야당이 하는 것이지 여권 주변부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야당은 81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리고, 작심만 하면 구 여권 당선자를 끌어들여 2백석을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은 거대 여당을 상대로 정치를 해야 한다. 독재시절에 야당은 의석이 적어도 민심이 뒷받침했다. 그러나 지금 민심은 결코 야당에 우호적이지 않다. 이 어려운 상황을 야당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이런 지난한 물음에 ‘새로운 진보’를 지향하는 지식인 그룹이 좋은 답을 제시했다.
‘좋은 정책포럼’이라는 지식인 모임이 내놓은 계명(誡命)은 열 가지다; 이념이 아닌 실생활에서 출발하자, 이상주의와 근본주의에 빠지지 말자, 국민의 평균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제시하지 말자, 반시장경제 반기업 이미지를 탈각하자, 민주주의 단일차원만으로 사고하지 말자, 민족주의의 틀에 갇히지 말자, 국가안보를 중시하자, 북한 주민의 인권보장을 요구하자, 노동의 권리와 함께 윤리도 주장하자,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을 지향하자. 어느 한 가지도 놓쳐서는 안 될 덕목이다.
세상은 변하는 자의 것이다 세상은 변하는 자의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세상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변화에 게을렀다면 보수주의자들은 세상을 잃은 시점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변화를 지향했다. 공안세력 냄새를 털어 내고 산업세력의 면모를 갖추려 애썼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변화한 보수주의자들이 그 과실을 향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변할 차례다. 80년대 운동권의 낡은 사고는 미련 없이 내팽개쳐야 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스스로 변해 지금의 끝을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보수주의자의 변화가 진보주의자의 변화를 부르고 진보주의자의 변화가 다시 보수주의자의 변화를 부른다면 그 사회는 희망을 보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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