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남(언론인)
“부패한 자는 결코 자유인이 될 수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지난 2월,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구성을 보면서 그 말이 과연 진리인 것을 알았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면서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었으니, ‘올스타 코리아’까지는 아니더라도, ‘통합과 전진’의 모양새는 갖출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이것밖에 안되느냐 싶게, 살아온 방식이 그만그만한 ‘끼리끼리’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은 ‘우리 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를 실감해야 했다. 어록에 길이 남을 명언과 함께 이명박 정부가 출범과정에서 국민에게 남겨준 인상과 상처는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도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잘할 줄 알았다. 막혔던 것이 뚫리고, 민족 진운의 새봄이 활짝 열리는 줄 알았다. 유능하니까. 그러나 정권의 인수과정과 정부구성, 그리고 총선국면을 거쳐 나오면서 이명박 정부에 걸었던 국민의 희망과 기대는 불안과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겨우 한 달 남짓도 안돼 불안과 실망이 너무 빨리 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란 다양한 계층의 상충 권익을 조정해 나가는 것 당선자 시절, 이미 약속되었던 민주노총 방문을 그 위원장이 경찰의 출두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일정을 취소했다. 당선자도, 그리고 일부언론도 그러한 결정이 매우 잘된 것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나라의 대통령 당선자라면, 예정대로 찾아가 만나서 “한 가지만 먼저 충고하겠다. 경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아 달라. 법을 지키면서, 대화로 모든 것을 풀어나가자”고 호소했더라면,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정치란 다양한 계층의 서로 상충하는 권익을 공동선(共同善)의 방향으로 조정해 나가는 역할이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의 최종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그러기에 대통령은 당선된 그 순간부터, 네편 내편을 떠나야 한다.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 불가(佛家)에서 해탈의 피안에 오르면 타고 온 뗏목을 버려야 하듯이, 당선되기 이전까지의 ‘나’를 버리고, 더불어 함께할 ‘우리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
총선후보의 공천과정은 국민을 더욱 불안과 실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언이폐지하면 ‘이명박 당’을 만들자는 것이 한나라당 공천의 최대 목표요 기준이었다. 공심위니 개혁공천이니 하는 것은 그 모두가 ‘이명박 당’을 만들기 위한 술수요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여세를 몰아 선진화로 가자더니, 교묘한 방법으로 민주화세력을 탈락시켰다. 영호남이 화합하여 국민통합으로 가자더니 슬그머니 호남을 버렸다. 노장청(老壯靑)하자더니 형님만 남기고 다른 노장은 버렸다. 고난은 나눌 수 있으되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인가. 자신에게 익숙한 배신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들의 실용이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상인의 실용이라는 것도 보여주었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의 단순회귀가 아니라, 통합하고 뛰어넘는 창조이어야 ‘친박연대’라는 기상천외의 선거용 정당이 나오고, ‘살아 돌아오세요’ 소리까지 난무하고 있다. 거기다 ‘이명박 당’의 주도권을 놓고 형님과 친위대 사이에 권력투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386에는 그래도 감옥에 드나들었던 애국심이라도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 이회창을 따라다니던 이명박의 친위세력에게는 권력에의 탐욕 외에 무슨 절개와 경륜이 있는가. 그들이 감히 생육신을 운위하다니. 수양대군은 누구이고, 단종은 누구인가. 한나라당이 승리하면 기고만장에 권력투쟁까지 벌어질 판이요, 그러지 못하면 정국이 혼란스러울 것이니, 국민은 이래도 걱정이고 저래도 불안하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불안 가운데 하나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이 나라, 이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명분으로 과거의 개발독재시대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가 그렇고, 가격관리 운운이 그렇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가야 할 길은 과거로의 단순회귀가 아니라, 개발시대와 그 이후 10년을 통합하고 뛰어넘어 세계 속의 새로운 한국을 창조해 나가는 일이다. 남북관계도 과거의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설득하여 한 차원 높은 한민족시대를 열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반대의 길로 가는 것만이 잘하는 일이 아니다.
누구의 지도자론인지 모르겠으되, 머리의 좋고 나쁨과 부지런하고 게으름의 조합에 따라 지도자를 4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최상의 지도자는 머리는 좋지만 게으른 지도자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머리 좋고 부지런한 지도자쯤 되지 않는가 싶은데, 그래서 그런지 만기친람이요, 가는 곳, 하는 일마다 소리만 크다. 공무원은 물론 국민도 벌써부터 피곤하다. 중용이 없고 신중함이 없으며 겸손함이 없다. 미국발 경제위기, 물가불안, 북한의 시험 등 넘어야 할 파도는 높은데, 과연 이명박 정부가 잘해낼 수 있을지 국민은 불안하다. 정부산하기관 임원 문제에서 보듯이 하는 짓마다 말만 많고 서투르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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