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혹은 관자(貫子) 그리고 나비
김서하
한 쌍의 홍합 껍데기는
나비를 닮았다
뜨거운 국물에서 꺼내 후후 불었을 때
식어서 날아가는 나비
나비의 안쪽엔 뜨거운 꽃의 유착
혹은 부착,
불꽃 위에 검은 나비가 가득하다
꽃보다 가벼운 것들은
다 껍데기다
날아가거나 죽어 버리거나
탈피는 겉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두는 것
대부분 안과 밖이 다르다
말랑한 홍합니 쉽게 부서졌다
아버지는 관자(貫子)에 고정돼 끝내 별을 달지 못했다
뒤집힌 채 죽은 나비를 본 적 없다
사월에서 삼월로 돌아가 죽은 나비가 없듯
식은 물에서 살고
뜨거운 물에서 죽은 홍합
입을 다문 채 죽은 홍합의 내부는 암흑이다
꽃송이가 탈피하고 간 나비의 허물
아버지는 끝내 뜨거운 꽃 위에 앉아보지 못했다
—시집『나무의 세 시 방향』(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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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하 / 본명 김현희. 1963년 光州 출생. 2012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늘」당선. 2014년 제14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에 시 「굴참나무를 읽다」 대상 당선. 방송통신대학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중. 시집『나무의 세 시 방향』.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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