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는 사랑
이운진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
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
빛에서 어둠만을 도려낸 듯
검정보다 검은 네 얼굴을
나는 닫힌 눈꺼풀 안의 눈으로만 보았지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
강물이 음악이 된 그때 그날
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왔더라면
작은 가슴이라도 빌려왔더라면
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
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
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
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직 너에게
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
—웹진《문화多》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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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진/ 1971년 경남 거창 출생. 동덕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석사 졸업. 199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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