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오월의 오후 / 김이듬

문근영 2017. 12. 5. 07:42

오월의 오후

 

  김이듬

 

 

 

 

너의 뒤에는 바오바브나무가 있다

배경이라고 할까

 

희고 조그마한 천이 새 모양으로 접혀있다

우리는 과자점 테이블 앞에 마주앉아

서로의 비밀을 말한다

 

나는 비밀보다 비닐에 싸인 너의 우산이 좋은데

귀띔보다 귀에 입맞춤이 좋은데

 

너의 뒤에는 바오바브나무가 있다

배후라고 할까

비애라고 할까

비밀을 말하고는 마음이 깃털이 되면

 

바바브브브한 기분이 들겠지

 

비읍은 고장 난 창문 같아

금방 사라지는 것들만 창문으로 들어온다

냅킨 위의 스푼 두 개처럼

우리가 흰 침대 위에 누웠다가 더 차가워져서 일어났던 날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고 악했다

 

나의 뒤에는 바오바브나무가 없다

나는 너무 많은 페이지와 데이지와 마지막 나무까지 봐버렸다

배경으로 커다란 거울이 있고 우울한 사람들이 달디단 과자를 고르고 있겠지

 

네 비밀을 알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네게 발꿈치를 들지 않아

 

아이스크림에 빠진 핑크색 스푼이라고 할까

머리가 크고 나쁘지

우리는 창문이 있는데도 문으로 출입한다

 

 

   

                        —《현대시》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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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 1969년 진주 출생.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별 모양의 얼룩』『명랑하라 팜 파탈』『말할 수 없는 애인』『베를린 딜렘의 노래』『히스테리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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