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듯이 서듯이 자작자작
천수호
봄 자작나무가 하늘로 하늘로
어린 청개구리들을 토해 낼 때
철없는 청개구리들이 우주 밖으로 뛰어내릴까 봐
막다른 골목길을 선물로 내려 준 것처럼
다투고 있던 당신과 나도 그 골짜기에 멈춰 섰다
한 실랑이가 다른 실랑이에 기대어 사르락거릴 때
당신은 그 하얀 길에만 취해 앞서가기 시작한다
모서리를 숨겨 온 잎들이
당신 앞의 산을 둥글게 만들어
산의 광기와 골짜기의 맹렬을 다 덮었다고 생각할 때
애초에 모두 길이었던 자작과 자작 사이
멈추는 발자국소리처럼 당신이 자주 턱 턱 걸린다
먼 발 아래 꽈리처럼 부푼 비닐하우스가 없었다면
저 밭뙈기의 냉증을 이해하지 못했을 터
앞서가는 당신 뒷등이 바람에 불룩 부풀어서
당신의 냉증은 그대로 내 몸속의 꽈리가 된다
냉증의 땅이 꽈리를 불어서
누워 있는 장작과 장작 사이
서 있는 자작과 자작 사이에
눕듯이 서듯이 푸른 한 잎 또 터져 올라온다
아직도 자작자작 속을 태우는 중이다
자작 숲에선 뛰어내릴 수 없는 서로의 길이 선물이다
—《문예바다》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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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2003년 〈조선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아주 붉은 현기증』『우울은 허밍』. 현재 명지대학교 강사.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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