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무늬목
최세라
헛되고 아름답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차츰 흐려지는
당신은 무늬목을 닮았습니다 복사뼈며 팔꿈치며 무릎에 새겨진 나뭇결을 보세요 이제 목젖에도 무늬가 둘러싸이고 가시넝쿨에 목덜미가 휘감깁니다
튀어나온 것들은 죄다 장미목을 닮아서 귓바퀴며 지문이며 배꼽을 문지르게 만들지요 나사가 자유롭게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입구가 넓고 퉁박한 것들이 내 눈을 찌릅니다
가시를 지나 가시를 지나서
장미 속으로
사다리꼴 장식이 달린 끈을 당겨 불을 켜면
아직 이관되지 않은 여름이 소리내 웃고
불을 넘어 불을 넘어서
꽃 바깥으로
가시넝쿨을 점점 잡아당기면
엉치에 들어박히는 날선 번개들
중심으로부터 끝없이 에두르는 불꽃을 꺼도
재에서 나와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간 여인이
온몸에 가시가 타오르며 뛰쳐나오던
장미의 무늬
그 동네 나무마다 제 옹이에 담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꽃 지는 순간 일제히 피어오르는 무늬목 장미
—《문학청춘》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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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라 / 서울 출생. 2011년 《시와 반시》신인상으로 등단. 시집『복화술사의 거리』.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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