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늘 / 이미산

문근영 2017. 10. 31. 12:31

 

   이미산

 

 

 

 

모퉁이 돌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를테면

트럭이라는 나무

 

알록달록한 열매들, 떨어지려는 과일 하나

 

중얼거리거나 구시렁거리거나

번져나가는 불콰한 향기

 

향기의 유효함이란

사내의 눈동자 속 시들지 않는 아내

끈질기게 지켜보는 나무, 끝내 남겨질 모퉁이, 가령

잘 익은 과일 하나가 또르르 굴러 내리막이 태어날 때

침묵은 나무를 다 삼켜야 하나

삐져나온 살점 숨겨야 하나

 

잘 익은 열매는 잘 보관할 주머니가 필요할 테고

 

모퉁이 돌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를테면

한 사내가 남긴 독백 같은

두리번거리는 낙엽들

 

누군가 슬그머니 오줌을 내려놓고

헐떡이는 숨소리 나눠주고

사내라는 가지처럼 부르르 떨다가는

날마다 달빛

 

 

 

                       —《현대시》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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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산 /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저기, 분홍』.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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