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미산
모퉁이 돌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를테면
트럭이라는 나무
알록달록한 열매들, 떨어지려는 과일 하나
중얼거리거나 구시렁거리거나
번져나가는 불콰한 향기
향기의 유효함이란
사내의 눈동자 속 시들지 않는 아내
끈질기게 지켜보는 나무, 끝내 남겨질 모퉁이, 가령
잘 익은 과일 하나가 또르르 굴러 내리막이 태어날 때
침묵은 나무를 다 삼켜야 하나
삐져나온 살점 숨겨야 하나
잘 익은 열매는 잘 보관할 주머니가 필요할 테고
모퉁이 돌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를테면
한 사내가 남긴 독백 같은
두리번거리는 낙엽들
누군가 슬그머니 오줌을 내려놓고
헐떡이는 숨소리 나눠주고
사내라는 가지처럼 부르르 떨다가는
날마다 달빛
—《현대시》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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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산 /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저기, 분홍』.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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