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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가능의 흰색 / 송재학

문근영 2017. 10. 31. 12:22

불가능의 흰색

 

   송재학

 

 

 

   불쑥 흰색의 눈에 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수컷 곰이 배고픔 때문에 새끼를 잡아먹는 북쪽에는 남몰래 우는 낮과 밤이 있다 흰색의 목마름이 색깔을 지운다면 지평선은 얼음을 지운다 허기진 북극곰이 흰색을 삼키거나 애먼 흰색이 북극곰을 덮친다 얼룩진 흰색과 검은 흰색이 아롱지듯 겹치고 있다 솟구치는 선혈과 찢어지는 피륙마저 희고 붉기에 금방 얼어버리면서 흰색이 아니었지만 흰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흰색이 되고 만다 가까스로 흰색 너머 낮달의 눈가가 짓무르다면 유빙을 떠도는 드라이아이스는 유령이라는 단막극을 되풀이한다 용서를 구하는 북극황새풀이 흰색 앞에 엎드린다 사랑한 것들로부터 상처받는 흰색이다 흰색의 손과 내부가 서로 등 돌리고 있다 하루 종일 환하거나 어두운 여기 흰색이라는 귀 없는 해안선이 자란다  

 

 

 

                       —시 전문 계간지《발견》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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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2년 경북대학교 졸업.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기억들』『진흙 얼굴』『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내간체를 얻다』『날짜들』『검은색』.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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