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블링(cyber bullying)*
김지희
밤의 창문처럼 켜져 있는 모니터 속
죽어 있는 저녁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전선의 불을 타고 온 몇몇의 혀가
절벽 위에 서 있을 언어를 찾아 몰려다닌다
낮과 밤이 경계 없이 지내듯
손바닥에 불이 가득한 채 모니터 밖으로 튀어나올 듯
자신마저 잊고 격정적으로 플라맹고 춤추는 사람은 없고…
햇빛을 모아 태워버리고 싶은 모니터 속 언어들
흡반같이 사람들 몸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메마른 나뭇가지는 제 목소리로 툭툭 부러지고
길 잃은 말들은 미친 듯
사막에 난 길처럼 사람들 마음 속을 무단 횡단한다
얼굴도 없이 혀만 날름거릴 뿐 어떤 의미에도 닿지 못하고
온갖 칼 휘두르는 말
뒹구는 죽음을 빨아먹고 버려진 절망도 핥아 먹으며
수천만 개로 쪼개진 새의 날개를 강물에 던져
길 밖으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
참 위태로운
말풍선들이 터질 듯 부풀어져 있다
밤 지새우며 켜진 모니터
제 자신은 아무것도 비치지도 못한다
울음이 지켜선 밤 이윽고 아득한 별빛
한 여자가 창틀을 쥐고
가슴속 붉은 실타래를 풀어
오늘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암흑 속에 수를 놓는다
죽어도 살아있는 것
죽은 나무가 살아 연주하는…
피아노의 맑은 옥타브를 이루고 있다
————
* 사이버블링 : 사이버 상에서 한 개인이나 그룹이 특정인을 의도적 악의적(악성 댓글 적대적 발언 등)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동, 그러한 현상.
—계간《리토피아》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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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 경북 성주 출생. 2006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2014년 〈영주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토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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