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의 중국어실력과 ‘영어파시즘’
고 미 숙(연구공간 수유+너머)
혹시 연암의 중국어실력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주지하듯, 연암은 북학파의 핵심이고, <열하일기>라는 천고에 드문 중국기행문을 남긴 인물이다. 단지 이 정보만 접한다면, 누구든 당연히 연암이 중국어에 상당히 능통하리라고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연암은 자신이 아는 중국어라곤 압록강을 건넌 뒤 길에서 주워들은 말이 전부라고 한다. “니 하오”, “카이카이”, “씬쿠” 등등. 한마디로 초짜 중의 초짜인 셈이다. 실제로 그가 각양각색의 이국사람들과 접선(?)하는 수단은 필담이다. 고담준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질구레한 농담따먹기와 말장난까지도 다 필담으로 했다. 그래서 상대편이 까막눈인 경우, 연암은 말을 모르고, 저들은 글을 몰라 서로 멀뚱히 바라보거나 각자 독백을 하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연출되기도 한다.
연암의 중국과 소통, 필담으로 충분
그럼, 연암은 왜 중국어를 익히지 않았을까? 그의 명석한 두뇌와 언어감각 정도면 조금만 애써도 금세 상당한 수준에 이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통역관들이 있어서? 그건 아닐 것이다. 일단 통역관들은 공무에 매인 몸이라 연암과 동선을 맞추기가 어렵다. 연암의 행로는 늘상 ‘옆으로 새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탓에 통역관들을 수행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이국의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는 데는 필담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사실 그렇다. 낯선 문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건 몸과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용기, 강렬한 호기심, 인생과 우주의 지혜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정이다. 언어적 테크닉은 그야말로 수단이자 교량일 뿐이다. 연암의 일행 중에는 중국을 문지방 드나들 듯 하는 ‘중국통’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인들의 삶과 문명에 대해 어떤 관심도 없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중국여행이란 관광이나 영업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영어에 ‘미쳤다!’ 전국민이 토익시험에 올인하고, 모국어를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외쳐댄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태어나자마자 숫제 ‘영어로 우는’ 아이들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대학에서는 영어로 하는 수업을 늘여갈 작정이란다.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 그 수업의 현장을 한번 상상해보았는가? 영어강의란 게 유학코스를 제대로 밟고 돌아온 이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법인데, 유학은커녕 평생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만 해온 교수들이 영어로 강의를 한다면 그 수준은 대체 어떤 것일까? Terrible! 단언컨대, 그 수업은 <열하일기>에 나오는 바, 연암의 하인 장복이와 호행총관 쌍림의 '아아, 어어' 하는 식의 수준을 절대 넘을 수 없다. 결국 그것은 학문의 질과 ‘저급영어회화’를 맞바꾼 꼴에 불과하다.
영어실력, 대체 뭘 위해선지 생각해야
아무튼 그러다보면 대학생들의 영어실력이 늘지 않겠느냐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치자. 근데, 대체 뭘 위해서? <열하일기>에 나오는 ‘중국통’들이 그랬듯이, 오직 관광과 영업을 위해서? 솔직히, 작금의 이 영어광풍에 ‘미국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라는 지상과제 외에 어떤 문명적 비전이 있는가? 그런 점에서 이건 분명 파시즘이다. 국가와 자본의 공모하에 전국민을 영어라는 ‘남근’을 향해 질주하도록 몰아붙이는 파시즘! 어떤 유형이건 파시즘의 진군 앞에선 궁극적으로 삶의 다양성과 생명력이 고갈되어 버린다는 것, 반드시 환기해야 할 사항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한문을 익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글이나 영어는 음성언어다. 20세기가 음성언어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상형문자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음성언어는 인터넷의 기계어로 그 절정에 이르렀고, 앞으로 웬만한 수준의 소통은 통역기계가 거의 다 해결해 줄 것이다. 만약 그런 식의 수준을 뛰어 넘어 새로운 삶을 창안하는 진정한 문명 간 교류를 기획한다면, 한문보다 더 멋진 자산은 없다. 230여년전 단지 붓 한 자루만으로 세계문명이 각축하는 열광의 도가니를 유유하게 가로질렀던 연암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다. 그런 점에서 한문이야말로 ‘탈근대적’ 기호체계다!
글쓴이 / 고미숙
· 고전평론가
· <연구공간 수유+너머 www.transs.pe.kr> 연구원
· 저서 :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그린비, 2007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아이세움, 2007
『나비와 전사』, 휴머니스트, 2006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휴머니스트, 2004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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