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노무현 정권과 언론계 대화합 / 김민환

문근영 2017. 9. 14. 09:41
312

 

노무현 정권과 언론계 대화합


  민주화 이전만 하더라도 언론사끼리 싸움을 벌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일제시대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티격태격한 일, 자유당 말기에 경향신문 폐간 문제를 놓고 여당지와 야당지가 논쟁을 벌인 일, 박정희시대 이후 ‘조중동’ 3사 간에 상대를 바꿔가며 간헐적으로 다툰 일 등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싸움은 시간을 그리 오래 끌지 않았다. 싸움을 멈춘 것이 휴전인지 정전인지 냉전인지 모르지만, 싸워봤자 득 볼 게 없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정글 속 전방위 언론전쟁, 노 정권이 해소?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사끼리 싸움을 벌이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1988년에 한겨레신문이 나와 보수매체와 각을 세움으로써 좌우논쟁의 틀이 짜였다. 이 신문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층민중의 대변지임을 내세우며 창간 초부터 기자단에 불참한 가운데 독자적인 취재활동을 벌였다. 이른바 주류매체까지도 한겨레신문의 그런 당당한 도전에 당혹스러워 했다.  

그 뒤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새 신문을 잇달아 창간했다. 지방에서도 토착 유지가 발행하는 지방지가 쏟아져 나왔다. 박정희 시대만 하더라도 광고시장은 커지는데 정부가 신규업자의 언론시장 진입을 막아 모두가 호황을 누렸지만, 민주화 이후 진입장벽이 무너지자 예상한대로 신문전쟁이 일어났다. 신문사끼리 경쟁적으로 보급 확장을 꾀해 한때 신문사 보급사원이 이삿짐을 도맡아 날라주는 진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신문사들이 과열 경쟁을 벌이다가 마침내 보급사원들이 칼부림을 벌여 살인까지 났다.  

1990년에 정부가 민영방송인 SBS를 새로 허가하고 같은 해에 평화방송과 불교방송을 허가한 데 이어 1994년에는 종합유선방송 허가대상 법인을 발표했다. 1996년에는 KBS가 위성방송 시대를 열었다. 1993년에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더니 1999년 초고속 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되자 그 해에 인터넷 인구가 1천만 명 수준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포탈매체가 위력을 떨치고 있다. 언론시장은 이렇게 하여 인쇄매체와 전파매체, 신매체와 구매체가 얽히고설킨 정글이 되었다. 이제 싸움은 앞뒤가 따로 없는 전방위 전쟁으로 변했다.  

언론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언론전쟁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정권 교체였다. 주류 신문은 1992년에 김영삼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급격한 변화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권이, 2003년에는 노무현 정권이 등장함으로써 상황은 급변했다. 방송이 정권 쪽에 자리 잡자 주류신문과 방송 사이에 전에 볼 수 없던 전선이 형성되었다. 신문도 ‘조중동’이니 ‘한경대’니 패가 갈려 싸웠다. 이 시절에 술자리에서 여러 언론사 기자를 함께 만나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기자끼리 안면을 몰수한 감정싸움을 벌이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언론계, 공동선과 숙제해결 위해 지혜 모아야
 
그런데 요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신문과 방송, 신매체와 구매체가 혼연일체로 대동단결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정권 말기에, 기자실 폐쇄니 브리핑룸 통폐합이니 하며 정부가 기자들에 대한 취재지원을 ‘선진화’하겠다고 떨쳐나선 결과다. 노 정권은 언론학자까지도 좌우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언론계 편을 들게 만들고 있다. 대단한 정권이다. 이 정권이 끝나면 아마 언론은 언론계 대화합을 노 정부의 언론분야 최대업적으로 꼽을지 모른다.   

각설하고, 언론계는 이 귀한 기회를 그야말로 숙원 해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시장 여건이 달라졌다면 각개약진을 해 살 길을 찾을 일도 있겠지만, 언론사가 지혜를 모아 공동선을 추구할 일도 많다. 이참에 오랜 숙제를 함께 풀기 위해 언론계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 숙제가 어디 하나둘인가? 언론계에는 유난히도 협회가 많다. 그 많은 협회가 존재 이유를 자답(自答)할 때가 왔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김민환
· 고려대 교수 (1992-현재)
· 전남대 교수 (1981-1992)
· 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한국언론사> 등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