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키에프 지하철의 사이렌 / 심경호

문근영 2017. 9. 9. 01:54

제59호 (2007.9.5)


키에프 지하철의 사이렌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이 2007년의 여름, 키에프 지하철역에서 나의 오랜 궁금증이 풀렸다. 지오반나가 안토니오를 만나보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지하철에 올라탈 때 역에서 났던 굉음은 사이렌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 소리가 과연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인지, 30년 동안이나 궁금하게 여겨 왔었다. 


30년 전 사이렌의 추억과 굉음의 궁금증


들뜬 나는 동행한 시인들이나 동료 교수들에게 같은 말을 하고 또 하였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소피아 로렌이 지하철에 오른 직후 나던 굉음은 사이렌 소리가 아니었어요, 지하철이 출발할 때 나는 소리가 이 150미터 깊이의 동굴 속에서 증폭되어 그렇게 들렸던 거죠. 전 말입니다,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왜 사이렌 소리를 듣고도 사람들이 대피하지 않는지 무척 궁금했었어요. 해바라기 밭의 찬란하고도 슬픈 노란 빛보다도 그 소리가 제게는 더 강렬하였답니다. 


아무도 문제 삼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 그 굉음을 30년 동안이나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것은 사이렌에 유난히 민감한 내 자신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1975년 학부 첫 겨울, 나는 영문과의 한 여학생에게 데이트를 청했다. 신림동에서 저녁을 먹은 뒤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 종로 1가 귀거래 다방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갔을 때는 이미 시간이 꽤 늦어 있었다. 그런데 아홉시 등화관제 사이렌이 울리자 다방의 불이 모두 꺼졌다. 삼십 분 뒤면 해제된다고 하였으나, 그 긴 시간을 채울 ‘교양’이 내게는 없었다. 하릴없이 어두운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 광화문 대성학원이 있는 곳까지 가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였다.


지금도 나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등화관제나 대피 등의 단어를 연상한다. 그리고 거리 곳곳을 열 지어 걷던 군인들, 길모퉁이에서 불쑥 주민등록증이나 학생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던 ‘사복’들을 떠올린다.   


AFKN에서 <해바라기>를 본 것은 그 무렵이었다. 왜 AFKN이 정규방송처럼 수신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른다. 나는 그 무렵 금지된 영화를 볼 수 있었기에 가끔 채널을 돌렸다. 이 영화는 본래 1970년,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 빗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이 프랑스와 합작으로 제작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폴리의 여인 지오반나(소피아 로렌)는 남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전사 통지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살아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소련으로 향하였고, 마침내 안토니오가 부상을 당하였다가 소련(지금의 우크라이나) 여인 마샤(루드밀라 사브리에바)의 도움으로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안토니오는 과거의 기억을 잊고, 그녀와의 사이에 자식까지 두고 있었다. 지오반나는 마샤와 함께 안토니오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곳이 바로 키에프의 지하철역이었던 것이다.


내가 키에프 지하철의 굉음에 대해 궁금해 한 것은 사소하기 짝이 없는 내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만 무언가를 궁금해 하고 어떤 사실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일종의 탐구 정신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생활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고 탐구정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킨 분들이 실학자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다산의 춘천여행, 역사서술상 궁금증을 실제 답사로 해결하고자


이를테면 다산 정약용은 『맹자』「고자(告子) 하」편에서 “맥 땅에는 곡식이 나지 않고 기장만 난다”고 한 기록이나, 『한서』 「조조전( 錯傳)」에서 “호맥의 땅에는 나무껍질이 세 치나 되고 얼음 두께가 여섯 치나 된다”고 한 기록이, 흔히 맥국이라고 알려져 왔던 춘천의 실제 기후와 다르지 않은가, 오랫동안 궁금해 하였다. 특히 강진에서 『아방강역고』와 『대동수경』을 엮을 때에는 춘천을 맥국으로 보는 종래의 관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한강 부근의 지리와 역사에 대한 기록을 보류하였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뒤 다산은, 아마도 중풍의 고생을 겪고 난 뒤인 듯한데도, 춘천으로 두 번이나 여행을 떠났다.


곧, 다산은 59세 되던 1820년 3월에 소내를 떠나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 춘천 일대를 유람하였고, 62세 때인 1823년 4월 15일(음력)에도 역시 마재 앞에서 배를 띄워  소양정에 오르고 곡운의 구곡(九曲)을 돌아보았다. 한 번은 조카의 혼사에, 또 한 번은 손자의 혼사에 동행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은 평소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탐구의 여행이었다. 


다시 말해, 다산은 상고사 체계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두 가지 문제, 즉 열수·산수·습수의 위치를 비정(比定)하는 문제와 춘천과 맥국·낙랑의 관계를 밝히는 문제에 대하여, 답사를 통해 결론을 내리겠다는 의도를 지니고 춘천을 찾았다. 이미 다산은 문헌고증학의 방법으로 일정한 견해를 마련해 두었지만, 실사구시의 탐구정신은 그로 하여금 춘천 여행을 결행케 하였던 것이다. 이 여행 끝에 다산이 한강을 고조선의 중심을 흐르던 열수로 확신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내가 이미 『다산과 춘천』에서 밝힌 바 있다. 그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의 춘천 여행이 역사서술에서의 궁금증을 실제 답사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 탐구정신의 발로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해바라기>는 한동안 우리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였다. 누군가는, 공산국가인 소련에 그런 훌륭한 지하철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군부가 개봉을 금지했다고 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시 이른바 서방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철의 장막 저쪽의 소련에서 로케를 하였다. 그래서 붉은 광장(사실은 아름다운 광장) 등 구 소련의 여러 곳이 화면에 아름답게 나온다. 또 소련 공산당 당국이, 선량한 노동자 안토니오를 인도적 관점에서 일시 귀국하게 한다는 줄거리를 지닌다. 그런 요소들이 군사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뒤에 들으니 <해바라기>는 80년대 군부 시절에 가까스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명화가 1번지라고 일컫던 단성사(團成社) 포스터를 이미지로 보면, 윗부분에 큰 글씨로 ‘얼어붙은 북구(北歐)의 대설원(大雪原)을 녹이는- /뜨거운 비련(悲戀)의 대서사시(大敍事詩)’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북구의 대설원’이라니!


지금까지 나는 키에프의 지하철 때문에 그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여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아름다운 도시 키에프의 정교회 성당과 돌길을 먼저 추억하고, 그 끝에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무슨 거창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궁금증은 아니지만, 사소하나마 30년의 궁금증이 우연히 풀리게 되어, 이 여름이 나는 좋다.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