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육
고영민
눌린 고기 속에
여자가 박혀 있다
우는 아이가 박혀 있다
하이힐과 잘린 채 더듬는 손
큰 엉덩이가 박혀 있다
뺨을 갈기는 손과 빼도 박도 못하는 얼굴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발과
임산부와 노약자가 박혀 있다
아무리 떨어지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몸
안내방송, 짜증스런 목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와 커터칼
구겨진 넥타이가 박혀 있다
성화봉송 주자처럼 높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중년남자가 박혀 있다
젤리처럼 쫀득한 사각의 고기 속
다급한 목소리
속이 훤히 보이는 가방 하나
발기된 성기, 떠밀려 끝내 내리지 못한
납작한 어깨가
박혀 있다
—《문학사상》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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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사슴공원에서』『구구』.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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