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저녁이 올 때 / 문태준

문근영 2017. 9. 7. 01:20

저녁이 올 때

 

   문태준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

 

산 그림자가 물가의 물처럼 움직여요

 

나무의 한 가지 한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요

새들은 나뭇가지를 서로 바꿔가며 날아 앉아요

 

새들이 날아가도록 허공은 왼쪽을 크게 비워 놓았어요

 

모두가

흐르는 물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시 전문 계간지《딩아돌하》2017년 여름호

-------------

문태준 /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먼 곳』『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