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편지

[스크랩] 기자실에 못질하려면 / 김민환

문근영 2017. 5. 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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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에 못질하려면


정부는 정보의 산실이다.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공적 정보를 정부는 끊임없이 생산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보 관련 업무가 생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보를 국민에게 신속하고도 충실하게 분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는 일에 가장 능동적인 나라로 흔히 미국을 꼽는다. 미국은 정보자유법을 만들어 국민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민이 알고자 할 경우 정부는 법이 금하는 사안을 제외하고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또한 정부 부처는 뉴스 브리핑 제도를 통해 공적 관심사에 대해 정부가 가진 정보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린다.

정부의 정보공개와 브리핑은 민주주의의 척도
 
어느 나라가 정보공개제도나 브리핑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다면 그건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잘 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자면 국민이 공적 관심사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민주적 결정의 질이 높아진다.    

우리나라도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답시고 정보공개법을 만든 지 오래다. 그러나 그 법은 아직은 유명무실하다. 대다수 국민은 그 법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 그런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그 법을 통해 유익한 정보를 얻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속이 시원하게 알고 싶으면 지연이나 학연 등의 줄을 대 공직자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브리핑제도를 정례화 했다. 언론학자들은 브리핑제 실시를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은 이 제도에 대해 곧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부가 브리핑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내놓지도 않거니와 그 제도를 빙자해 기자가 공직자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년이 지난 현재 유능한 기자들은 정부의 브리핑에 별로 기대지 않는다. 특종을 하려면 기자들은 과거와 다름없이 잘 아는 공직자에게 은밀하게 접근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부처별로 있는 브리핑 룸과 기사 송고실을 통폐합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기자실에 대못질을 해놓고 물러나겠다고 공언했다. 한다면 하는 정부니까 부처 기자실이 임기 중에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기자실 폐쇄 방침을 밝히자 언론계는 벌집을 쑤신 듯 야단이 났다. 당연한 반응이다. 브리핑제가 있으나마나 한 상황에서 아예 부처 기자실까지 없애면 기자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기자단체는 물론 진보적인 언론운동단체마저 반대에 가세했다.

정보공개법과 정부 브리핑을 실효성 있게
 
이런 일이 나면 학자들이 귀찮아진다. 나한테도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기자실 폐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답했다. 다른 기자에게도 같은 대답을 했다. 혹은 시뜻해하고 혹은 어이없어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같다. 기자실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 언론의 선진화를 바란다면, 기자실을 지금 모양 그대로 두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부가 기자실에 못을 박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보공개법을 다시 손보는 일이다. 그게 정보를 나르는 접시라면 진열장에서 꺼내 주방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그 법을 통해 국민이 정보다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브리핑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기자들에게 풀어놓는 일이다. 브리핑 룸에서 정보가 넘칠 때,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 기사를 쓰는’ 기자는 절로 사라질 것이다. 정부는 그때 가서 텅 빈 기자실에 못질을 하면 된다. 꼭 대못일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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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환
· 고려대 교수 (1992-현재)
· 전남대 교수 (1981-1992)
· 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한국언론사>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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