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 수난사>(23) /
땅속의 쇠솥에서 나온 형제불
1907년 어느 날,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서 마을사람 하나가 땅을 파다가 우연히 뚜껑이 덮인 옛날 쇠솥 하나를 발견했다. 솥 안에는 금빛도 찬연한 작은 부처님이 둘이나 들어 있었다. 선량한 발견자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마을에 알렸다. 그러자 당시 부여 지구에 파견돼 있던 이른바 통감부 소속의 일제 헌병대가 알고 압수의 손길을 뻗쳤다.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유실물로서 보관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난리 때, 어느 절의 중들이 부처님에 화가 미치지 않도록 땅속 깊이 안전하게 묻어놓았다가 다시 캐서 절로 모셔갈 기회를 갖지 못하든 바람에 영원히 잊혀 져 버렸으리라 추측되는 그 작은 금동불들을 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보관한다던 일제 헌병대는 1년 후에 가서 결국 ‘임자 없는 물건’이라 하여 일본인들을 상대로 경매에 붙였다. 저들 멋대로의 압수와 처분이었다.
[부여 규암리 금동 관음보살 입상] 국보 293호
불상이 낙찰자는 니와세 하쿠쇼(庭瀨博章)라는 일본인이었다. 그는 크기가 약간 다르나 백제 시대의 뛰어나게 아름다운 불교 미술품인 ‘금동 관음보살 입상’ 둘을 독차지한 것인데, 겉으로는 경매 입찰이었으나 내막은 헌병대를 통한 단독 점유였을 가능성이 짙다.
니와세는 1922년에 그가 갖고 있던 두 개의 백제 금동불 중 하나를 대구의 이치다 지로(市田次郞; 1930년에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을 불법적으로 입수하려고 했던 자)에게 팔아넘김으로써 15년 전에 땅속의 한 솥에서 나왔던 형제불은 그 후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다.
크기가 약간 작아 동생뻘이었던 것(높이 약 22.8cm)은 해방 후 서울에서 압수, 귀속 재산으로 국립 박물관에 들어갔으나 대구로 가 있던 형뻘 되는 불상(높이 약 28cm)은 소장자였던 이치다가 해방 후 일본으로 숨겨 갖고 간 듯 아주 사라져버렸다.
고려자기나 석탑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일제 때의 고적 혹은 고미술 관계 서적이나 도록에 무수히 소개돼 있는 일본인 소장의 귀중한 불상들이 오늘에 와서 거의가 행방불명이며 국내에서는 완전히 찾을 수가 없다. 그 태반이 일본으로 반출된 것이다.
일제 초기부터 일본인들은 석탑류에서처럼 이 땅의 대소 불상 유물을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날뛰던 일부 악질 일본인들은 곳곳의 폐사지에서 석탑과 함께 석불도 걸리는 대로 불법 반출하여 돈 있는 일본인 사회에 팔아 넘겼고, 순금 혹은 금동제의 작고 값나가는 불상을 약탈하기 위해서 시대가 오랜 석탑이나 부도를 무너뜨리고 그 속의 사리 장치 유물을 훔쳤다. 그런가 하면 살아 있는 사암에서 약탈하거나 매수하는 방법도 썼다. 그들의 악랄한 약탈품 가운데 국보적인 가치를 갖는 어떤 불상은 총독부 박물관과 이왕가 박물관으로도 비싼 가격으로 팔려 들어갔다.
당시 일본인 사회에 이 땅의 각종 불상에 대한 관심과 식견을 고조시킨 것은 고려자기나 석탑류의 경우처럼 역시 일본인 전문가들의 고적 조사 보고와 강연회였다. 한 일본인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1915년 5월이었다고 생각된다. 세키노 다다시(關野 貞; 1868~1935) 박사가 서울 남산여학교 강당에서 고적 조사의 보고 연설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이런 말이 나왔다. ‘나이치(일본 본토)와 계열을 같이 하는 불상이 조선에 많이 있을 걸로 생각하고 많은 사원을 조사해 봤으나 비교적 적었다. 어디선가 나타날 거라고 주의해 보았더니 근자에 와서 여러 곳의 절터, 산속의 동굴, 경작지 같은 데서 하나둘씩 출토되기 시작했다. 이왕가 박물관의 많은 불상은 그런 경위로 모여진 것들이다.’ 사실 그 후에도 삼국시대와 신라의 불상들이 무수히 출토되고 있다. 박사의 강연이 있은 후, 어떤 사람(물론 일본인)이 높이가 약 23cm쯤 되는 금동 불상 하나를 들고 가서 박사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강원도 산 속에서 나왔다는 그 불상을 본 박사는 깜짝 놀라면서 ‘이건 굉장한 삼국시대 불상이다. 이런 것이 민간에 나돈다는 건 곤란한 일이다.’고 주의를 시키는 것이었다.”(<조선의 미술 공예에 관한 회고>,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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