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10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굴지와 불과] 안녕하세요.
어제 편지에서 '우측 보행'이 아니라 '오른쪽 걷기'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나 방송에서 이렇게 한자말을 앞세우니 사전에도 '비포장도로'는 올라 있지만 '흙길'은 없고, '독서'는 올라 있지만 '책읽기'는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 6:57, KBS라디오에서 같은 뜻인데 한자로도 쓰고 우리말로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굴지(屈指)는 무엇을 셀 때, 손가락을 꼽음이라는 뜻으로 매우 뛰어나 수많은 가운데서 손꼽힘이라는 뜻으로도 자주 씁니다. 국내 굴지의 대학, 한국 굴지의 실업가,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처럼 씁니다. 이를 국내에서 손꼽는 대학, 한국에서 손꼽는 실업가,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재벌처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불과(不過)는 주로 수량을 나타내는 말 앞에 쓰여 그 수량에 지나지 아니한 상태임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불과 몇 명뿐이었다처럼 씁니다. 이를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에 지나지 않다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많은 우리말이 한자말에 가려 있습니다. 한자말을 먼저 쓰기 시작했더라도 우리말로 바꿔서 쓰는 게 좋고, 우리말이 먼저 쓰이기 시작했다면 마땅히 그런 낱말을 찾아내서 써야겠죠. 왜냐하면, 우리 머리로 생각해서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우리의 넋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쓰는 말이 한자 투면 내 넋이 한자를 좇고, 내가 쓰는 말이 깨끗한 우리말이면 내 넋도 덩달아 깨끗하고 맑아지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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