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양산 북정리 고분군(北亭里 古墳群)

문근영 2016. 8. 6. 09:47

양산 북정리 고분군(北亭里 古墳群)




전경


금조총 유구 노출 근경


금조총 유구 내부 유물 출토 상태


1호 고분 발굴 현장


3호 고분 발굴 현장


금조총 출토 금제 태환 이식


금제 조족


출토 유물


지정 번호; 사적 93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 697 오봉산

지정일; 1963121

시대; 신라(5세기 후반~6세기 전반)

분류; 고분

내용; 양산 북정리 고분군은 양산시 북정동으로 천성산(千聖山) 줄기 끝 부분의 서쪽에 해당하는 오봉산(五峰山)의 중심이 되는 산등성이 일대에 있는 고분들이다. 대형분은 산의 능선 정상 부분에 퍼져 있고, 소형분은 비탈진 곳이나 산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와 같은 고분의 위치는 시기적인 차이에 따라 무덤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분들 가운데 부부총(夫婦塚)과 금제 조족(金製鳥足)의 출토로 알려진 금조총(金鳥塚)1920년에 일본인에 의해 조사되었다. 1990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때 부부총도 내부 구조 확인을 위한 재조사되어 1991년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모두 관을 보관하는 석실[돌방]의 앞면이 트인 횡구식 석실묘(橫口式 石室墓; 앞트기식 돌방무덤)임이 밝혀졌고, 횡혈식 석실묘(橫穴式 石室墓; 굴식 돌방무덤)로 알려졌던 부부총도 횡구식 석실묘였음이 확인되었다. 지정 면적은 25,994[7,877]이다.

  북정리 고분군의 석실은 입구의 위치가 북에서 남으로, 평면은 긴 사각형에서 정사각형으로 변화하였다. 석실 자체는 지하식에서 반지하식을 거쳐 지상식으로 바뀌었으며 입구는 전면에서 일부분으로, 궤석은 높은 것에서 낮은 것으로 변하였다. 고분 입구가 북쪽으로 나 있는 것이 더 오래된 것이며, 신라 전기의 고분으로 추정된다. 부부총은 산 윗쪽에 자리 잡은 대형분으로 석실 내부의 벽면과 천장을 흰색으로 칠하여 장식하였다. 반면 금조총은 산의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소형분인데 무덤들이 자리 잡은 위치와 형태가 다른 것은 고분 주인들의 신분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부부총의 유물은 토기가 대부분이나 ()’자형의 금동 관식편(冠飾片; 관 꾸미개 장식 조각),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반지 등의 장신구와 안장, 재갈, 행엽, 운주 등의 마구류, 대도, , 화살촉, 화살통 등의 무기류도 출토되었다. 금조총에서는 금제 조족 외에도 금동관, 금제 귀걸이, 팔찌, 은제 과대, 유리구슬, 곱은 옥[曲玉] 등의 장신구와 철기, 청동제 초두 등이 나왔다. 또한 이 두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경주의 대형 목곽분에서 나온 것과 큰 차이가 없어 이 고분의 피장자는 신라의 중앙 정부와 깊은 관계를 가졌거나 친족 관계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부총의 경우는 추가장으로 남편이 5세기 중반 이후에 먼저 사망하여 무덤을 만들고, 5세기 후반에 부인이 사망하여 함께 묻힌 것으로 보인다. 금조총의 주인은 5세기 후반이나 6세기 전반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특기 사항; 출토 유물로 볼 때 고분의 주인공은 신라의 중앙 정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또는 그 친족에 해당하는 인물로 추측된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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