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현장 통감관저 터 표석 무허가 상태로 세워져 | ||||||||||||||||||||||
경술국치 100년, “통감관저 터” 표석 제막식 열려 | ||||||||||||||||||||||
| ||||||||||||||||||||||
그 치욕의 강제병합 현장 통감관저 터엔 강제병합 100년이 되도록 역사의 교훈을 새길만한 어떤 표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 10년을 맞아 한국실행위가 드디어 나선 것이다. 행사의 시작은 먼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개식사로 시작되었다. 임 소장은 "평화를 기원하는 한일 시민단체들의 염원을 모아 이 표석을 세운다. 이 표석은 서울시가 허가를 안 해준 채로 세우는데 이것이 무사히 서 있을 수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도 달라질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부끄럽지만 그 사실을 감추려고 하는 현실이 더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또 이해학 한국실행위 상임대표는 이날 기념사에서 "가슴 아픈 역사가 시작된 이곳에 표석을 세우자고 서울시에 건의했지만 시는 어처구니없이 '녹천정 터'라는 표석을 세우자고 했다. 치욕의 역사라 할지라도 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이 후세를 위한 길이다."라며 서울시를 비판했다. 이어서 일본실행위를 대표하여 기념사를 한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은 "이 표석을 통해 지금의 세대들이 강제병합의 역사를 계속 기억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서울시와 표석 설치에 대해 협의했지만 서울시는 지난 18일 '표석설치자문위원회'를 열어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며, 국민 정서상 반감이 있는 경향이 강하므로 <경술국치> 표석 설치는 재고해야 한다."라는 답을 해왔다며 '통감관저 터' 표석 설치에 반대했다고 한다. 또 서울시는 이 자리에 오는 10월께 '녹천정 터'라는 표석을 세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가 세운다는 어처구니없는 정자 '녹천정'(鹿川亭)은 조선철종 때 있었던 정자를 말하며 1884년 갑신정변 때 일본 공사관이 불에 타자 일본이 녹천정 터를 빼앗아 정자를 허물고 새로 공사관을 지었던 것이다. 그 후 1906년부터 통감관저로, 강제병합 이후 1939년까지는 총독관저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정자 복원 계획을 세운다는 말에 세찬 빗줄기 속에서 행사 참석 중이던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었던 자리라는 표석을 세우는 게 좋은지 한량들이 호시절 앉아서 음풍농월하던 정자를 복원하는 게 좋은지 서울시는 시민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어서 표석을 세울 수 없다고 한 표석설치자문위원회 명단을 서울시는 공개하라.”라고 서울시를 향해 큰 목소리를 내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철종 때 세워졌다는 흔적도 없는 녹천정이라는 정자에 억지로 역사적 의미를 붙이려는 모습이 한심스럽다. 서울시가 차마 강제 철거를 하지는 않겠지만, 한 자리에 나란히 '통감관저' 표석과 '녹천정' 표석이 세워진다면 세상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시민들 중 아들 문하람 군과 행사에 참석한 권혜순(47) 교사도 흥분하면서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역사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일 것이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정부와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3년여에 걸친 토론을 한 끝에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학살 역사를 기억하는 홀로코스트기념비를 세워 놓았다고 한다. 이들 독일 사람들과 달리 부끄러운 과거를 어떻게 청산하고 기억할 것인지 고민하는 않는 서울시장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이 행사가 시작되기 전 김영호 유한대 총장,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아라이 신이치 일본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고은 시인 등 지식인 20여 명이 퇴계로 세종호텔 로비에서 통감관저 표석 제막식장까지 침묵행진을 했다. 이들이 침묵 행진을 한 까닭은 을사늑약과 한일강제병합이라는 두 조약이 설명할 수도 없는 유례없는 잘못된 역사로, 이에 대해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고은 시인은 “마침 오늘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은 100년 전 오늘 우리 한국인 전체가 흘린 눈물과 같다.”라고 말했다. 사진을 찍는 기자들은 물론 참석자 대부분이 비에 온몸을 흠뻑 적신 채 1시간을 꼼짝 않고 지켜보면서 치욕의 역사 100년을 새기고 있었다. 어쩌면 참석자 중 일부는 행사 뒤 온몸이 비에 젖은 탓으로 몸살을 앓았을지 모른다. 대신 그 몸살이 이제 국치 100년을 청산하는 혁명의 시작이 되는데 밑거름이 되면 좋을 일이다.
순종 포고문(칙유) 국역 ⓒ민족문제연구소 |
'알아 둘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큰 배뱅이로 자리매김 해가는 서도명창 박준영 (0) | 2016.08.02 |
---|---|
[스크랩] 만파식적을 음반으로 공연으로 들려준 이삼스님 (0) | 2016.07.31 |
[스크랩] 민요 공연, 이렇게 청중을 사로잡아라! (0) | 2016.07.25 |
[스크랩] “미래사회 불교운동은 응용과 현실 차원 될 것" (0) | 2016.07.23 |
[스크랩] 김아라ㆍ김다드림, 한말글 이름 장한 청소년상 받아 (0) | 2016.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