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귀의 취향
박미라
누군가 숨죽여 울고 있다 앙다문 이빨 사이로 줄줄 새는 울음소리다 아니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다 아니다
큰비가 온다는 전갈이다 빗줄기보다 먼저 도착한 빗소리이다
잠 깨니 창밖은 햇볕이 쨍쨍
낯선 빗소리에 대하여 내 오른쪽 귀에게 묻기로 한다
귀에서 나는 소리를 귀에게 묻는다
이것은 최근에 시작된 내 오른쪽 귀의 취향
달팽이관 가득 빗소리를 쌓아둔 듯
밤낮으로 들리는 빗소리 때문에 세상의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내가 즐기는 소리의 목록에도 빗소리가 있지만 소리로 소리를 지우는 건 뜻밖의 횡포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와 유리컵 깨지는 소리를 혼동한 날부터 시작된
오른쪽 귀의 소심한 반란
색깔을 뒤섞으면 검정이 되듯 소리를 뒤섞으면 침묵이 된다니
몸 속 어딘가의 근육 한 줌은 토악질을 할 때만 반응한다는데
어떤 이름을 생각할 때만 빗소리를 내는 기관이 내 안에 있거나
기어이 큰물을 내어 쓸어버릴 기록 따위가 있다는 것인지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고흐의 자화상을 생각하는 한때
창밖에는 햇볕이 쨍쨍
—《시와 표현》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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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서 있는 바람을 만나고 싶다』『붉은 편지가 도착했다』『안개 부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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