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스크랩] 인디언 벽화감상 그리고 인디언에 대한 오해와 인디언 미술운동

문근영 2016. 3. 9. 00:53

인디언 벽화감상 그리고 인디언에 대한 오해와 인디언 미술운동

 

 

 

 

 

검은호수 서정록


일란성 쌍둥이라 해도 자란 환경이 다르면 성격과 품성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법이지요. 각자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요. 혼자서는 못 산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어떤 문화에서 성장했는가가 결국 그 사람을 결정짓는다는 뜻이 됩니다. 특히 거의 도그마화한 종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소지가 높습니다.


백인들이 인디언을 탄압한 역사를 보면, 종종 서구에 의한 문화적 폭력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어머니 대지를 과학과 발전의 이름으로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유럽 사람들의 직접적인 조상은 스키타이-흉노계통의 유목민인 게르만입니다. 기원후 3세기경, 동북아에서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한 흉노족(훈족)이 동부 유럽지역에 출현하면서 고트족, 반달족 등 게르만의 연쇄 이동을 가져왔고, 결국 유럽은 게르만족의 말발굽 아래에 짓밟히고 맙니다. 그 여파로 로마 또한 문을 닫고, 유럽은 중세로 넘어가지요.

 
유럽사는 이 시기를 '야만의 시대'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현 유럽인들의 조상이 게르만 유목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유럽에 정착한 뒤 로마의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조상이 수천 년간 믿어왔던 샤머니즘 문화도 철저히 배격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유명한 중세의 마녀사냥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최소한 수십만 명 이상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마녀라 규정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샤머니즘을 신봉하거나 무당의 소질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유럽을 정복한 유목민들은 골수 기독교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예부흥시대를 거쳐 해외로 본격적인 식민지 전쟁에 나섭니다. 콜럼버스가 바다로 나갔던 것도 사실은 식민지 확보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인디언들의 문화는 샤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유라시아는 중앙아시아와 중국, 페르시아 등 이웃 제국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국가와 계급과 신분, 빈부격차 등 전통사회에서 흔히 보는 그런 요소들을 함께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북아메리카에는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당시 국가도 없었고, 계급과 신분제도도 없었습니다.(중남미의 경우는 약간 사정이 다릅니다)


따라서 북아메리카는 국가가 들어서고 계급과 착취와 축적의 문화가 들어오기 전의 샤머니즘의 원형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아마도 피상적으로 인디언을 아는 많은 분들은 인디언들의 모습에서 그저 원시인의 모습만을 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문화에는 적어도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국가의 지배, 자본의 횡포, 빈부의 격차와 착취 등의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친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자연에서 수렵과 채집, 어렵 등을 통해 먹을 거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또 축적 대신 나눔의 문화를, 내 것보다는 이웃과 부족과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는 아름다운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또 동식물과 바위 등 모든 존재는 생명을 갖고 있으며, 우리 인간과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럽의 백인들이 북아메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욕심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인디언 문화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백인들의 조상들이 믿던 것과 같은 종교를 믿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아니 그들의 조상보다도 훨씬 더 정제된 샤머니즘을 들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백인들의 눈에는 그저 헐벗은 야만인 이교도로밖에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성인'이라는 오만과 착각 속에서 인디언들의 각종 의례를 미신으로 매도하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문화적 독선과 폭력이지요.


백인들이 하는 짓을 보다 못한 호피족 노인이 전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백인들의 눈에 우리는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신을 믿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신을 믿는다. 우리의 신은 우리에게 말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준다. 우리의 신은 우리에게 비구름과 햇빛과 옥수수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다. 우리의 신은 우리가 당신들의 신에 대해서 듣기 훨씬 전부터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주셨다.

 


만일 당신들의 신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그분에게 말해서 나의 신이 내게 하는 것처럼 내게 말하게 해주기 바란다. 백인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의 가슴을 통해서 말이다. 당신들의 신은 잔인한 신이며, 강력하지도 못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늘 사악한 것을 입에 담고 있으며, 사람들이 죽은 후에 지옥에 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은 아주 강력하며, 늘 좋은 일만 하신다. 삿된 점이 없을 뿐더러 우리가 죽은 뒤에 가는 지하세계에는 지옥과 같은 것이 없다. 당신들의 종교로 개종하느니 차라리 나의 신과 나의 종교를 고집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종교 속에 있을 때보다 나의 종교 속에 있을 때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Festivals of the Hopi : Religion, the Inspiration, and Dancing, an Expression!!!!! of Their National Ceramonies' in The Craftsmen, No.12, 1907에서)

결국 백인들은 광활한 아메리카 땅을 빼앗기 위해 인디언들을 그들의 터전에서 내쫓기 시작합니다. 미국정부는 "신이 아메리카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종교적 슬로건까지 내세우며, 십자군 전쟁-그것이야말로 중세에 유럽이 중동에 가했던 문화적 폭력이지요.-을 하듯이 인디언들을 싹 쓸어버리기 시작합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할 당시, 북미 인디언들의 수는 최소한 6~7천만명에서 1억 내지 1억2천만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당시 중국의 인구가 1억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95%가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가지고 들어온 질병들-홍역, 콜레라,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이질 등-에 감염되어 죽고 맙니다. 끔찍한 이야기지요.


그리고 살아남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 또한 그들이 살던 땅을 지키기 위해 백인들과 싸우다 대부분 살육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많던 인디언들이 20세기 초에는 불과 수십만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백인들이 지정한 보호구역(Reservation)에 갇혀서 배급생화을 해야 했습니다. 말이 보호구역이지 철조망 친 포로수용소였지요. 백인들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에게 시민권은커녕 영주권조차 주지 않은 채, 문자 그대로 포로로 가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저는 유럽인들의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묘한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기원후 수세기까지도 샤머니즘을 신봉했던 이들입니다. 이른바 '북유럽신화'니, '오딘신화'니 하는 것들은 우리 동북아나 시베리아, 그리고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두루 믿었던 바로 그 샤머니즘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른바 진보의 이름으로 인류의 소중한 원주민 문화-특히 제3세계의 많은 민족문화-를 짓밟는 야만을 자행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북아메리카인들은 찬란한 '인류의 황금시대'를 살았던 이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를 공경하며 인간답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축적이 가져오는 해악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그것을 나눔의 문화로 발전시켰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자연과학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의 눈에는 그런 참다운 가치는 보이지 않았고, 오직 번지르한 물질문명만이 최고라는 생각에, 그런 물질문명을 갖지 못한 민족들을 원시인, 야만인으로 몰아 학살했던 것입니다.

 


서부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듯이, 백인들은 서부로 진군하면서 인디언들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전사 집단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래야만 여론을 움직여 그들을 공격할 정치적 명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정부의 그와 같은 악의적인 선전 탓에 많은 백인들이 실상도 모른 채 '인디언'이라면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것입니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기본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인디언들도 부족끼리 더러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규모의 전쟁이 아닙니다. 인디언의 각 부족에는 일반 추장 외에 따로 '전사 추장'이 있습니다. 일반 추장이 부족의 대소사와 행정적인 일을 맡는다면, 전사 추장은 일종의 군사책임자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족이 쳐들어오거나 다른 부족을 응징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가 발의를 합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으므로 언제 공격하려고 한다. 이에 동의하는 전사들은 모여라."하고 말이지요. 거기에 동의하는 전사들이 모이면-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당연히 모이지 않지요.-그것이 바로 '전사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가 대개 20명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부족 간의 분쟁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인디언 사회는 여성중심의 사회입니다. 여성중심의 사회라는 것은 여성문화가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성들의 경쟁, 권위, 갈등, 대립의 요소보다는 자연히 여성들의 협동, 우애, 공존, 화해의 요소가 우세합니다. 따라서 인디언 사회를 폭력적인 전사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 백인들이 인디언을 공격하여 그들이 살던 땅을 빼앗기 위한 마타도어(흑색선전)였던 것입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으면서 수많은 조약을 써주었습니다. 모두가 그들이 원해서 만들어진 조약들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땅이 탐나면 번번이 자신들이 맹세한 그 조약을 위반하고 침략을 했습니다. 그렇게 야금야금 거대한 아메리카 땅덩어리를 모두 빼앗았던 것입니다.


19세기 말, 수우족의 유명한 전사 추장이었던 '앉은 소(Siting Bull)'는 자신을 비난하고 모함하는 백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인들이 만든 조약을 우리 붉은 사람이 깬 적이 있는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백인들은 우리와 만든 조약을 지켰는가?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세계는 우리 수우족의 것이었다.
우리의 땅에서 태양은 뜨고 졌다. 우리는 만 명의 기병을 전쟁터로 보냈다.
전사들은 오늘 어디에 있는가?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우리의 땅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그들을 소유했는가?


내가 백인들의 땅을 한 조각이라도 훔친 것을 본 자가 있으면
지금 내 앞에 나서 보라.


내가 단 1페니라도 훔친 것을 본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럼에도 그들은 나보고 도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백인 여자가 포로로 잡혔을 때 내게 모욕을 당한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나쁜 인디언이라고 말한다.


내가 술 마시는 것을 본 백인이 있는가?


배고픈 사람이 내게 왔을 때 내가 굶긴 채로 보낸 적이 있는가?


내가 아내를 때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아이를 학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또 내가 법을 어긴 적이 있는가?

내가 나의 민족을 사랑한 것이 잘못인가?


나의 피부가 붉은 것이 죄인가?


아니면 내가 수우족이기 때문에?


내가 내 아버지가 시시던 곳에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나의 민족과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백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의 땅을 호시탐탐 노립니다. 보호구역에 거주하던 인디언들이 외부로 나가면서 일부 보호구역에 거주인구가 줄어들자, 그 땅마저 빼앗기 위해 온갖 시비를 거는 겁니다. 그렇게 그들의 탐욕은 그칠 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비단 백인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 사회 또한 모두들 물질을 신봉하고 있지 않나요? 서구문화를 따라간답시고 이 땅의 전통문화를 미신으로 모는 어리석음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지는 않던가요?
우리는 누구인가요?
흔히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지역의 문화를 보존·발전시키되, 그 정신만은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지구적 차원으로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서정록/ 고대 동북아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깊은 관시을 갖고 있는 글쓴이는 인디언의 삶과 정신세계에 크게 감명 받아 지인들과 조그만 인디언 모임을 가지며 현재 거제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 생태공동체를 일구는「이장」, 2003년9월호.



 

인디언 미술 인디언 벽화에 대해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석류석·터키옥·진주모와 같은 준보석 모자이크를 특히 좋아했고 이것들은 보통 방패·가면·신상(神像)과 같은 작은 물건의 표면장식에 이용했던 것들을 보다시피 인디언들들에 문화 예술성 역시 대단했음을 우리는 모르고 있던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결코 백인들이 이야기해온 야만과 원시성을 가진 악마의 자식들은 아니였다. 지금 이시대에 돌아보아도 그들은 우리가 그 깊이을 알 수 없는 위대한 정신문화의 소유자들이였다.


 

인디언이 많은 나라에서는 그들의 미술에서 ‘인디헤니스모’(Indigenismo; 수 세기 동안 유럽인들에 의한 식민지 정책으로 잃어버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우수했던 문화의 부흥을 꾀하는 사상)를 발견 할 수 있다.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인디언 문화 고유의 뿌리를 찾는 운동이 많은 라틴 아메리카의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흑자는 이러한 움직임을 일명 "튀기" 문화의 일종이라며 백인들과 인디언 인디오들의 혼혈종에 탄생한 문화운동으로 곡해들 하는데 이건 어차피 그들을 점령해온 백인들의 인디언 고유문화 찾기운동에 대한 비아냥 일뿐이다라고 필자역시 몫을 밖는다.

 

계속되어온 백인들의 인디언들에 대한 점령처럼 문화적 정신적 점령에 대한 현대적 정신적 침략의 당위성을 주는 행위이며 이는 계속되는 그들에 대한 현대적 침략이라 규정한다.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은 미국이나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어왔다. 그리고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은 미국과 서유럽의 모더니즘에서 파생되었거나 그것을 모방한 것으로 치부되는 모욕적인 대접을 받아왔다

 

이유는 20세기 라틴 북미 아메리카 인디언 미술은 미국이나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어왔다. 그리고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은 미국과 서유럽의 모더니즘에서 파생되었거나 그것을 모방한 것으로 치부되는 모욕적인 대접을 하며 협소화 시켜내는 역사에서 잘보여진다.


 

20세기 초반 라틴 북 아메리카와 유럽 미술 사이의 가장 눈에 띄는 문화적 업적은 멕시코 벽화운동이었으며, 벽화운동의 의미는 국가적, 문화적 동질성을 찾는 한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전달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 공공미술을 계속 활성화시키는 데 있었다. 그와 함께 인디오 인디언들의 자신들의 뿌리을 찾기위한 미술적 교두보을 확보하였다.


라틴 북 아메리카 미술이 역사적으로 백인들에 의해 수세기 동안 지배를 받으면서 그들의 미술까지도 유럽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근거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백인들도 역시 자기 우월주의에서 나온 발상에 사로잡혀 멕시코 벽화운동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일방적인

 

서양의 논평이나 의견에 무조건 따라가며 인디오 인디언들의 미술에 대한 시각을 서구 백인들만의 논리을 확대하는 점을 반성할 문제다.

 
그러나 라틴 북아메리카 미술은 유럽의 미술이 흉내 낼 수 없는 점이 있어, 세계 미술의 흐름을 조절하는 유럽 미술에 동승하지 않고 멸시 속에서도 그들만의 세계를 발전시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그들은 오히려 미술 사대주의에 젖지 않는 어느 면에서 보면 용감한 예술 혼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역사의 흐름 속에 혼혈 인종으로 변하면서 다양한 혼혈문화를 만들어 왔다. 서구인들이 혼혈인을 멸시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그들은 혼혈의 특색을 살려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 좋은 것이다.

 

그것은 백인들에 침략과 점령으로 얼룩진 그들 조상의 한과 그들의 정서을 찾기위한 그들의 저 깊은 내면에 흐르는 그들만의 정서적 밑바탕일 것이다.

 

그것은 인디언 인디오들이 지닌 자연과 인간에 대한 내면적 정서에 대한 뿌리찾기 이기 때문이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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