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한용국
누워 있는 남자의 입으로 공기가 밀려 들어간다 느릿느릿 기다려왔다는 듯이 열린 식도를 통과해 간다 곧 저 공기는 남자의 꼬리뼈에서 마지막 흔적을 밀어내리라 남겨질 한 줌의 질척함을 비둘기가 안다는 듯 고개 주억거리며 지나간다 십분 전 그는 마지막 담배를 피웠으리라 손끝이 다 타들어갈 때쯤 모든 회한과 환멸을 떨어뜨리고 수도승처럼 신문지 위에 누웠으리 그의 잠을 깨우던 굉음이 떠나가고 세상이 그를 정적 속으로 초대한 것이다 한때 그를 빛나게 했던 꿈의 이마는 꼬깃꼬깃 접혀 있다 어쩌면 저녁거리의 불빛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까 하지만 모로 누워 웅크린 자세는 무언가 단단히 그러쥔 손아귀처럼 보이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안식을 단 한 번의 눈길로 스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이 소리 없는 잔혹 앞에서야 모든 궁극적인 질문은 보편성을 얻는가 공기가 지나간 그의 몸을 얼룩진 신문의 활자들이 더듬더듬 읽으며 덮어주고 있다
― 2003년 『문학사상』신인상 수상작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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