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장례식
이종섶
두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었던
동네 어귀 버드나무 한 그루
길을 넓히기 위해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연고조차 없어 애를 태웠으나
밑동이 잘려 우지끈 넘어진 나무를
운구하기 알맞게 자르기 시작했을 때
하나 둘 나타나는 유족들
가족들의 뿌리였던 할머니 위로
든든한 기둥이었던 남편이 먼저 내려왔고
그 위에 있던 자식들도 차례로 도착했다
평생 살을 맞대고 살던 남편이
허공으로 뻗어가는 어린 가지들 뒷바라지가 힘겨워
노모를 돌볼 생각조차 못했던 아들과 딸들이
기계돕의 부음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잠시 후면 트럭을 타고 떠나갈 가족들
유품으로 남긴 나이테 편지를 읽었을까
언제나 동구 밖을 바라보며 살았던 할머니
떠나간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는
땅속을 헤집는 뿌리 끝까지 그리움이 사무쳤는데
자를 건 자르고 뽑을 건 뽑으면서
가족들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수습한 후
마침내 지상에서 그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
움푹 파인 집에 남겨진 뿌리들은
간혹 할머니의 기억을 틔우기도 하겠지만
빈집을 헤매다 숨을 거둘 것이다
-(2008년《수주문학상》우수상)
출처 : 수천윤명수시인과함께
글쓴이 : 수천/윤명수&짝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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