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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릎 꿇은 선생님 / 송재소(성균관대 교수)

문근영 2015. 5. 1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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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은 선생님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으로 널리 알려진 오성 이항복(李恒福)이 재상으로 있을 때 높은 관리들이 찾아오면 당연히 앉아서 절을 받았다. 재상은 조정에서 제일 높은 직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신(申) 아무개 훈도(訓導)가 문간에 와있다는 전갈을 받고는 버선발로 뛰어가 맞아들이고 공손히 접대했다. 주위 사람들이 이유를 물으니 어렸을 때 글을 배운 훈장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 이항복은 훈장이 묵고 있는 숙소로 몸소 찾아가 비단과 쌀 등을 드리며 노자에 보태어 쓰도록 했다. 그러나 훈장은 “여행에 필요한 경비는 쌀 두어 말이면 족하다”고 말하며 나머지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준(李埈)의 『창석집(蒼石集)』에 나오는 일화이다. 훈도(訓導)는 시골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천자문 등을 가르치는 종9품의 미관말직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지위에 있는 일국의 재상이 하찮은 시골 훈장을 버선발로 뛰어가 맞아들인 것이다. 어렸을 때의 선생도 선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선생을 존경하는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가 후일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을 것이다.

시골 훈장을 버선발로 뛰어가 맞은 재상

이항복도 훌륭하지만 그의 스승 또한 못지않게 훌륭하다. 아마 훌륭한 인품을 지닌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이항복과 같은 훌륭한 제자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훈장은 어릴 때 글을 가르쳤던 아이가 재상이 된 것을 보는 것만으로 더없이 기뻤을 것이다. 그리고 재상이 된 후에도 오만하지 않고 옛 스승을 모실 줄 아는 제자를 보고는 선생으로서의 보람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무엇을 또 바라겠는가, 비단과 쌀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는데.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들은 우울해진다. 작년 스승의 날에는 경찰이 어느 학교 교무실을 급습해서 교사의 책상 서랍을 뒤지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스승의 날에 그런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금년에는 전국 초·중·고교의 70%가 휴업을 했다고 한다. 존경할만한 선생을 모실 수 있고 사랑스런 제자를 둘 수 있는 행복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일 것인데, 훈훈한 사제간의 정이 실종된 작금의 현실이 서글프기 짝이 없다.

지난 18일 충북 청주의 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더욱 충격적이다. 학교 급식을 빨리 먹게 했다고 학부모들이 담당 여교사의 집으로 몰려와, 사표를 내고 무릎을 꿇으라고 해서 다음날 학부모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물론 그 여교사의 평소 언행이나 인품이 어떠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학교에 누가 되는 것 같아 무릎을 꿇었지만 교육자로서 어긋난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는 여교사의 말로 미루어 보아, 밥을 빨리 먹게 했다는 것이 교사의 무릎을 꿇릴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제한된 시간에 3교대로 급식을 마쳐야하는 급식 환경 때문에 취한 조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밥을 빨리 먹으라고 강요해서 아이들이 설사와 구토를 일으켰다”는 학부모들의 말도 납득하기 어렵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교사의 무릎을 꿇려야만 하는가?

교사의 무릎을 꿇려서야

이 나라에 교육이 실종된 지 오래다. 수업시간에 장난치고 떠드는 학생에게 꾸중만 해도 학부모들이 몰려와 항의를 한다고 한다. 아이의 기를 죽인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그저 못 본 체 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래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공동생활에서 규율을 어기거나 버릇없이 행동하는 학생은 교사가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사의 임무이고 학부모는 교사를 믿고 자식을 맡겨야 한다. 아마 이항복도 어린 시절 글을 배우면서 선생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생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제발 앞으로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막강한 힘을 좀 더 건설적인 일에 발휘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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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 <다산시선>
            <다산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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