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수하고 난 가을 들판은 황량하다. 소설이 지나고 나니 문풍지를 스치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이제 슬슬 겨울 채비를 차리라는 신호만 같다. 앞 텃밭에 심어 둔 배추도 이번 주말엔 갈무리해서 김장을 해야 할 것 같다. 시골에도 김치 냉장고가 있다 보니 날이 더 춥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어머님이 살아 계시던 재작년까지만 해도 마당 끝에 김장독을 묻고 김장 김치를 담갔으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서울 사는 큰 시누이가 커다란 김치 냉장고를 사 보내는 바람에 김장독도 쓰지 않은지 이태나 되었다.
지방공무원인 남편의 대학 등록금을 댄다고 작은 논배미를 다 팔아 홍천읍내로 나와 겨우 작은 텃밭 하나 가꾸며 살던 시댁 살림은 변변한 것이 없지만 나는 이 작은 텃밭을 가꾸며 농촌 아낙네로 산지 이십 년 째다. 외아들인 아들 하나 바라보시던 팔순 시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쌍둥이 아들도 서울로 공부하러 떠난 지금 나는 텃밭을 벗 삼아 계절마다 푸성귀를 열심히 가꾸어 자연식단을 차리는 재미에 빠져있다.
작년에는 고구마 밑이 잘 안 들어 서울 시누이 집에 보낼 것이 없었는데 올해는 작년치까지 밑이 들었는지 제법 실해서 시누이네 한 상자를 보내고도 겨울 손님이 드나들 때 쪄먹을 정도는 되니 풍년인 셈이다. 해마다 무와 배추를 직접 심어 시누이집 김장까지 해대지만 힘들다기보다는 즐겁다. 사먹으면 몇 푼 안 줘도 될 만한 들깻가루, 참깨, 고춧가루 따위를 살뜰하게 거둬 보내는 재미는 값으로는 치를 수 없다. 남들은 힘들게 뭘 그런것을 서울로 보내냐고 하지만 서울사는 큰 시누이도 나의 살뜰한 농촌 살림의 고단함을 이해해줘 기쁘다.
그제는 무를 뽑아 무청을 엮어 겨울 시래기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어제는 무말랭이용 무를 하루 종일 썰었다. 초가을부터 가지 말리기, 토란대 말리기, 고춧잎 쪄 말리기, 무말랭이, 호박꼬지 따위의 가을걷이는 짧은 가을 해를 아껴가며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만들 수 있는 겨울 먹거리다. 이런 나물류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공기 좋은 마당가에 내어 말리며 늦가을의 햇볕을 쬐는 일은 시골 사는 아낙의 즐거움이다. 가을 내내 말려 갈무리한 나물들을 맛나게 무쳐 긴긴 겨울 밤 이웃을 불러 동동주 한 잔과 함께 나누는 정은 도시 사람들이 맛보지 못하는 호강이 아닐까 한다.
독자 채윤희 / 홍천군 홍천읍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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