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2010 매일신문

문근영 2015. 4. 22. 08:17

 [2010 매일신문 시 당선작] 그녀의 골반/ 석류화

 

그녀의 골반

 

석류화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날개 끝에 고인 몇 점 물방울무늬, 방문 밖으로 날았다 돌담에 피는 씀바귀꽃 그늘을 옮겨다녔다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

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그녀의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던 거죠 나도 작은 나비모양 엉덩이를 달고 나왔던 거죠 그러니까 그녀가 힘겹게 좌판에 쪼그리고 있었을 때, 날품팔이, 품앗이 할 때 그녀 속의 나비가 조금씩 앓고 있었던 거죠 이 지상 마지막까지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25명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갈래였다. 안정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익숙한 문법의 작품들과 언어의 긴장이 돋보이는 패기 넘치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안정적인 작품들은 패기가 부족하기 쉽고, 언어의 섬세함이 시선을 사로잡는 낯선 문법의 작품들은 공허한 말놀음의 혐의를 넘어서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두 사람이 각각 숙독하고 5편씩 고르니 겹친 한 작품을 포함해 9편의 작품이 다시 선별되었다. 논의 끝에 4편을 최종 후보로 골랐다. 권분자의 ‘여우비’ · 성은주의 ‘검은 고양이 카바레의 검은 고양이 신사’ · 김승훈의 ‘입술에 관한 새들의 보고서’ · 석류화의 ‘그녀의 골반’이 그것이다.
권분자의 ‘여우비’는 삶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이 돋보였다. 언어 수련의 과정을 잘 거쳤음을 짐작게 하는 적절한 비유의 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산문적 발상이란 아쉬움을 남겼다. 성은주의 ‘검은 고양이 카바레의 검은 고양이 신사’는 시적 언어의 활달한 운용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의욕이 넘쳐 정작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김승훈의 ‘입술에 관한 새들의 보고서’는 언어 자체의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실험적 작품이었다. 상상력의 참신함과 더불어 구조적인 완결성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신춘문예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영탄의 언어는 시의 진정성과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흠결을 드러냈다. 반면 석류화의 ‘그녀의 골반’은 핍진한 삶의 굴곡을 고루 살피는 성숙한 시선이 깃들여 있었다. 정확하고 곡진한 언어로 시상을 잔잔하게 엮어나가는 솜씨가 신뢰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투고한 작품들 모두 완성도가 높고 수준이 골랐다. 반면 젊은 패기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같이 남겼다. 심사위원들은 탄탄한 사유구조와 시적 완성도라는 관점에서 석류화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합당한 행운을 차지한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송재학(시인)·엄원태(시인· 대구가톨릭대 교수)

 

[당선소감]


때마침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었습니다. 거세게 끓기 시작하며 김을 내뿜는 저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떨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등점! 그렇습니다. 나에겐 이 비등점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늘 끓기 전에 멈춰버렸거나 식은 내 몸과 영혼을 달래며 다시 끓기 직전까지 올려놓는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돌아보면 반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움이 비등점에 이르면, 무언가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그곳을 바라보고만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곳을 향하여 늘 심지를 달궈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고 소외된 것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를 보았습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얘기를 가장 필요없고 사소한 것에 걸어서 얘기하는 방법을 모색해보았습니다. 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불가능에 대해 무릎 꿇었습니다. 오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든 게 시와 귀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시를 썼지만 아직도 쓰지 못한 한 줄을 위해서 앞으로 살아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을 수밖에 없는 시 속에서 그 한 줄을 위해 나를 바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각은 무디기만 합니다. 앞으로 많이 달라지지 않을 듯한 자신을 그래도 또 닦달하고 몰아붙일 것입니다.
책상 머리맡에 붙어 나를 항상 바라보는 근취제신(近取諸身), 원취제물(遠取諸物), 이 말의 귀한 뜻을 깨우치게 해주신 계명대 문창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의 몸을 들여다보라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늘 불안한 나를 애정으로 바라봐준 가족들과 선후배님들께도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부끄러운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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