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2009년 신춘문예 당선작

문근영 2015. 4. 20. 10:51
[2009 조선일보 신춘문예]
오늘은 달이 다 닳고 / 민구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마 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 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



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라



여간 해서 불어나지 않는 욕망의 칼,


부릅뜨고 나를 노린다





[당선소감]


음성메시지로 당선을 통보받았다. 식구들에게 번갈아 들려줬다. 대낮에 벼락을 맞은 것 같다고 하면 좀 더 그럴듯하겠지만 이로써 갈 길이 더 멀어진 기분이다. 그것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재촉한다. 두근거리게 한다. 웅덩이에 발이 빠지면 통째로 달고 가는 수밖에. 내 발이 썩지 않고 견딘다면 섬 하나를 띄울 수 있을까.



이제 시는 나를 주시하고 교대로 돌며 내 행적을 감시할 것이다. 교묘히 숨는 대신 얼굴을 드러내고 두 손에 들린 연장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휘두르고 싶다. 꽃과 뿌리가 줄기만큼의 여백을 두듯, 나와 내 시도 끝내 일치하는 지점을 찾지 못하고 집요하게 거리를 두길 바란다. 부족하지만 시를 쓸 때만큼은 프로라는 자신감을 부여하겠다.



내 이름은 본명이다. 일의 자리 가운데 제일 높은 숫자라고 그런 이름을 달아주셨다. 많이 다르게 흘러왔지만 자잘한 기억 하나 놔줄 수가 없다. 깨물어서 아플 손가락은 전부 다 잘라버렸다. 그러니 내 고통의 빈도를 기록해둘 만한 서식이 달리 없다.


당선되고 사라진다면 그보다 더한 낭비는 없을 것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 작품을 선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나를 격려하는 분들께 더 나은 작품으로 답하는 것 말고는 이제 방법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인이 되는 생각을 한다. 벼락을 맞아도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한다.





* 민구 / 1983년 인천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심사평]
우리 두 심사위원은 각기, 김다연씨의 '얼음왕국'과 민구씨의 '오늘은 달이 다 닳고'를 당선작 범위 안에 든 작품으로 올려놓았다. 우리는 이들의 다른 응모작들을 포함하여 두 차례 더 읽어보았다. 민구씨의 '오늘은 달이 다 닳고'를 당선작으로 꼽는 것으로 합의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민씨의 작품들은 시가 일상언어 사용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서 시 아닌 것들과 스스로를 변별케 하는, 고유한 층위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층위란 산문의 평지에서 좀 떠 있는 부력, 흔히들 말하는 시적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영역을 지칭하는 것인데, 민씨에게는 그러한 발견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새들은 (…)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라든가, 그의 다른 시 〈배가 산으로 간다〉에서의 "물속에 매달아 놓은 조등" 같은 대목은 범상치 않은 발견이다. 그것이 있을 때 시가 스스로 뜬다. 이런 좋은 부력이 있음에도 그것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민씨에게도 있다. 다분히 서술적인 말투라든가, 시라고 하는 대단히 인색한 지면에서 동어반복하면서 낱말들을 낭비하는 것, 시적 상념이 더 깊은 데로 들어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 등등이다. 이런 악습은 대부분의 응모작들에게 더 해당된다 하겠다. 특히 근래 판타지에의 경향성 속에서 스스로도 감당 못할, 실패한 은유들의 범람은 참 견디기 힘들다.













[2009 한국일보 신춘문예]
무럭무럭 구덩이 / 이우성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러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형이

내가 한 눈 파는 사이 구덩이를 들고 나갑니다

달리며 떨어지는 잎사귀를 구덩이에 담습니다

숟가락을 뽑아 들고 퍼 먹습니다

잘 마른 잎들이라 숟가락이 필요 없습니다

형은 벌써 싫증을 내고 구덩이를 던집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러 옵니다

반짝반짝 구덩이

외출하기 위해 나는 부엌으로 갑니다

중력과 월요일의 외투가 걱정입니다

그릇 사이에서 구덩이를 꺼내 머리에 씁니다

나는 쏙 들어갑니다

강아지 눈에는 내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

학교에서 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구덩이를 다시 땅에 묻습니다

저 구덩이가 빨리 자라야 새들이 집을 지을 텐데

엄마는 숟가락이 없어져서 큰일이라고 한숨을 쉽니다




* 이우성(李宇成) : 1980년. 서울 출생 대진대 국문과 졸업. 현재 'GQ KOREA' 에디터.



[당선소감]

이런 날이 안 오는 줄 알았습니다. 전화를 받고 엉엉 울다, 마음 가라앉히면, 또 눈물이 났습니다. 대학 다닐 때, 스쿨버스 안에서 매일 시집을 읽었습니다. '틈'이란 시창작 모임에도 나갔습니다. 사는 게 즐거웠습니다만, 시를 너무 못 써서 서러웠습니다.


제겐 시에 대해 이야기할 동기도, 등단한 선배도 없었습니다. '이 외로움은 내 거야, 동생들에겐 물려주지 말아야 해' 하며 늘 강한 척했는데, 속으론 무너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선한 것보다 '틈' 동생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시답지 않은 작품 읽어주신 홍은택, 심재휘 선생님, 죄송합니다. '금요반'의 기둥 권혁웅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께도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특히 조연호 '티처'에겐 거듭 감사해야 합니다.


겨우 서른인데 세상이 참 아픕니다. 살아야겠습니다. 살아서, 지구를 지켜내야겠습니다. 이영주, 이용준, 김한선, 자랑스런 '틈' 가족, 치열한 '금요반' 식구들, 눈부심 그 자체인 'GQ' 스태프들, 왁자지껄한 '문장의 소리' 팀, 좋은 친구는 나의 영예입니다. 아빠, 엄마, 형, 당신이 곧 나입니다. 등 두드려주신 박상륭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10년을 매진하면 안 될 일이 없다, 말씀해주신 서범석 선생님, 그 진리가 저만 두고 갈까 무서웠다고 이제 고백합니다. 어느 오후, 대책 없는 제 시를 읽고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시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종이야, 쉼표야, 말줄임표야, 오래오래 미안.




[심사평]

시 부문 응모작은 양과 질이 모두 풍성하여 선자들을 즐겁게 했다. 응모작의 경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최근 수년 동안 신춘문예나 문예지 응모에서는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포스트모던하고 전위적인 실험시를 흉내 내는 시들이 많았다.


실험정신과 발랄한 어법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젊은 시가 문단에 활력을 준 것은 긍정적이지만, 삶의 현장과 역동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헛바퀴를 돌리는 듯한 아쉬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응모작들에서는 이런 흐름이 크게 줄어든 반면 삶의 현실을 체감하거나 강하게 끌어당겨 미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늘었다. 이것은 기존의 역량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시적 경향이 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이우성의 '무럭무럭 구덩이'와 장예은의 '만월'이다. 이우성의 시는 감각과 상상력이 희귀하고 개성적이며 생기있고 활력이 있다. 목소리도 힘있고 거침없고 속도감과 리듬감이 있어 신인다운 신선함이 돋보였다.


장예은의 시는 꿰맨 자국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섬세함과 발랄함을 갖고 있다. 밝고 싱그러운 서정적 감각도 인상적이었다. 가장 완성도 높은 한 편을 고르라면 주저없이 손이 갈 만한 작품이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이우성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함께 응모한 그의 다른 작품들이 편차 없이 고르게 살아있는 감각을 보여주어 앞으로 계속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장예은의 다른 작품들은 기복이 있어 끝까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오윤희의 '뫼비우스의 띠'와 박은지의 '열쇠 도적'도 만만치않은 역량을 보여주었다. 앞의 시는 시사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재치 있게 드러냈으나 거친 것이 흠이며, 뒤의 작품은 안정적이고 참신한 목소리를 지녔으나 산만하여, 각각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뜻을 이루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도전해줄 것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신경림(시인) 김사인(시인,동덕여대 교수) 김기택(시인)










[2009 동아일보 신춘문예]
술빵 냄새의 시간 / 김은주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해?**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 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아

한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1991년에 발표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

** ‘추억은 방울방울’에 나오는 대사.



[당선소감]

누군가는 만남에 대한 어휘가 가치 있다 했지만 나는, 미래의 이별들을 모으느라 하루를 보내곤 했다. 가령, 눈이 오면 눈의 일부처럼 만남을 맞고, 흩날리거나 녹아 없어지는 눈을 보며 이별이 아팠다. 그러한 내력으로 연연해하며 살았다.


연연의 목록이 추가될 때마다 구덩이를 팠다. 얕기도, 넓기도 한 연유들이 둥글게 고인 구덩이들. 그 속에 풀리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녹아 없어지지 않을 삶의 문제를 대신해 스르르 몸을 녹였다. 그 구덩이 안팎에서 만만한 한 生을 들여다보려 시를 썼다. 게으름과 무책임을 가책으로나마 아플 수 있는 시간. 이제 서른이니 뭐라도 하나는 구원해야 하지 않을까, 골몰하는 밤이 앞으로도 길겠다.


習은 어린 새의 퍼덕임이라고, 날기 위한 연습에 멈춤이 있어선 안 된다 알려주신 장석남 선생님, 다른 시선은 틀린 게 아니라 특별하다 가르쳐 주신 권혁웅 선생님께 인사 올린다. 통증의 마디인 어머니, 일평생 소슬함의 자루를 메고 가는 아버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근원 창수 창현 창미 세 형제들, 많은 것의 동기가 되는 민혁,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 이리, 내 모든 풍경의 흉곽인 달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아가는 연습을 하도록 어깨를 두드려주신 이시영, 남진우 선생님께 조금은 더디어도 주저앉지 않을 거란 다짐을 드린다.


김은주 / 1980년 서울 출생.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마지막까지 선자들의 눈길을 끈 이들은 ‘술빵 냄새의 시간’ 등을 투고한 김은주와 ‘꽃 피는 일’ 등을 보내온 류화, 두 사람이었다.


류화의 작품은 집중력과 돌파력이란 점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뤘다. 새벽녘 시장에서 돼지 잡는 장면을 다룬 ‘꽃피는 일’은 동물의 몸을 부위별로 분리하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처참한 장면을 복사꽃이 피어 가지를 타고 뻗어나가는 것과 중첩시킴으로써 기발하면서도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탐미적 시선이 공존하는 그의 시는 이미지의 조형 능력과 더불어 삶과 죽음의 질서를 투시하는 만만치 않은 인식의 깊이를 내장하고 있었다.


김은주의 작품은 심각한 현실에 정공법으로 대응하기보단 가볍게 우회해서 대응하는 여유와 다채로운 화법이 돋보였다. 비근한 현실에서 예기치 않은 놀라움을 끌어낼 줄 아는 이 응모자의 시는 친숙한 어조로 삶의 다양한 양태를 포착하고 있다. 류화의 작품은 집중력이 있는 대신 단조롭게 여겨지는데 비해, 김은주의 작품은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듯 대상에 따라 화법을 다채롭게 변주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축하와 더불어 정진을 당부한다. 이 밖에 선자의 관심을 끈 응모자로는 ‘바람 부는 날의 모과’의 박은지, ‘흰 개와 바다’의 이현미, ‘구불구불거리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의 진유경 등이 있다.


이시영 시인·남진우 시인








[2009 경향 신춘문예]
맆 피쉬 / 양수덕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

젊음이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서 좋아? 싫어?

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없이 내려놓았다

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

콘크리트 계단에 몸을 붙인 청년의

물살을 떨다 만 지느러미

뢴트겐에서 춤추던 가시, 가물가물

동전 몇 개 등록상표처럼 찍혀 있는 손바닥과

염주 감은 손목의

그림자만이 화끈거린다

채 풀지 못한 과제 놓아버린 손아귀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의 푸른 이마였던 그의

꿈이 요새에 갇혀서

해저로 달리는 환상열차

잎사귀인지 물고기인지를 한 땀 바느질한

지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

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





[당선소감]

시 부문 당선자 양수덕씨(55·본명 양선희)는 기자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첫번째는 적지 않은 나이로 ‘늦깎이 등단’을 했다는 점이었다. 두번째는 그럼에도 그의 시가 젊고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양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제를 재확인시켜주었다.


“뿌리가 없던 사람에게 뿌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시에서 많은 실패를 겪었고, 희망도 안 보여 스스로가 바람 같다고 느꼈어요. 제가 당선된 것은 시를 잘 써서라기보다 저 같이 뿌리없이 사는 사람들, 존재감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뿌리가 없다고 했지만, 양씨에게 시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다. 성신여자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시에 대한 꿈을 한시도 접지 않았다. 40대 초반 자비로 시집을 내기도 한 그가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8년 전. 혼자 쓰는 시는 발전이 없다는 생각에 시 공부모임에 나갔다. 지금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시사랑회 화요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시에 대한 애정 하나로 외길을 걸어왔지만, 신춘문예 등에서 낙선을 거듭하며 아픔도 많이 겪었다. “한 선생님이 ‘시를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 시가 보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큰 용기가 됐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았는데 이제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기분입니다.”


당선작 ‘? 피쉬’는 양씨의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목격한 젊은 걸인을 보고 가슴이 아파 시를 쓰게 됐다. “살다 보니 제가 모르는 사람도 스승이고,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스승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양씨는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가 너무 놀라 심장마비라도 걸릴까봐’ 나중에 조용히 당선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오래 지켜봐줬던 부모님, 형제, 친구, 주변사람들, 시사랑 화요팀 선생님뿐 아니라 인연 있었던 선생님들, 시사랑에서 함께 공부한 분들께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양씨에겐 시가 바로 그 자신이다. “그동안 혼자 즐기려고 시를 썼지만, 이제 사람들이 위안받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심사평]

예심을 통과해 본심의 대상이 된 열다섯 분의 작품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수연씨의 ‘숙련공’이었다. 시를 쓰고 있는 자기 세대의 어법을 개성적으로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행과 행의 관계를 긴밀하게 조직하는 힘이 부족해 보였고, ‘숙련공’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감각적인 표현에 구체적인 사유를 담지 못한 허약한 표현이 많았다. 시에서 강한 정신력과 숙련된 언어는 함께 이루어진다. ‘도원역’과 ‘아주 조금만 남은 것들’을 쓴 김우찬씨는 언어를 정제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갈고 닦은 언어는 새롭다기보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언어나 세계를 향한 모험이 보이지 않는다. 시에 지루한 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시인 최정례씨(왼쪽)와 황지우씨가 본심에 오른 작품을 분석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안웅선씨의 ‘창밖으로 오분’은 창을 내다보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개성적인 어조로 붙잡아내는 그 착상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해 환상으로 잇대어진 연결 부분은 실감이 부족했다. 감탄어미와 ‘치명’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시의 끝을 맺고 있는 것도 안일한 수법이다.


양수덕씨는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 개성있는 언어를 활달하게 구사하고 있다. 언어에 개인적 표현이 많아 소통부재의 위험이 보이기도 하나, 당선작 ‘? 피쉬’에서는 지하도의 걸인이라고 하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묘사력과 참신한 비유로 대상을 섬세하게 구현해내었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갈고 닦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 자신을 이 세계로 실어보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신춘문예의 당선을 계기로 세계 속으로 자아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힘도 함께 얻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황지우·최정례>











[2009 대전일보 신춘문예]
비 온 뒤 / 구민숙





빨랫줄에 매달린 빗방울들

열일곱 가슴처럼 탱탱하다

또르르! 굴러

자기네들끼리 몸 섞으며 노는

싱싱하고 탐스런 가슴이 일렬횡대, 환하니 눈부시다

그것 훔쳐보려 숫총각 강낭콩 줄기는 목이 한 뼘 반이나 늘어나고

처마 밑에 들여 놓은 자전거 바퀴는 달리지 않아도 신이 났다

빗방울의 허물어지지 않은 둥근 선 안에는

주저앉지 않은 꿈들이

명랑한 송사리 떼처럼 오글거리고

서른여섯 나는, 물컹해진 나의 그것과 비교하며

녀석들을 살짝 만져보고도 싶다

그래, 내게도 저런 가슴이 있었지

열일곱, 연분홍 유두가 장식처럼 화사하던,

주눅 들지 않은 노래로 충전되어

금방이라도 둥실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만 같던



나는 바구니에 담아 내 온

일곱 살 아이의 반바지와 말 안 듣길 소문 난 신랑의 양말과

목욕 수건들과 75 A컵 내 분홍 브래지어를 널지 못한다.





[당선소감]

많이 부끄럽습니다. 아직 시인이 될 그릇이 못 됨을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밥 짓고 빨래하고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모든 일들이 시와 같아야 함을, 그 모든 일들이 이미 시임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욕심 부리고 옹졸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아직 시인이라는 이름을 받기에는 멀었지요.


하지만 한 편으론 참 기쁩니다. 3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당선의 소식이 마침내 제 몫이 되었다는 것이 꿈처럼 낯설지만 그래도 이 기쁨 무엇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무엇을 보고 부족한 저의 손을 들어 주셨는지 심사위원님과 대전일보사에 빚을 진 기분입니다.


이 부끄러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길바닥만 내려다보던 제가 이제 손차양을 하고 길 너머를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 너머에 닿으려면 쪼그려 앉아 제 마음속 강물 줄기 오래 바라다보는 일 더 많아야 함을 압니다.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평생을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사신 아버지, 당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던 남편과 나의 보석 두 아들들 그리고 처음 시에 입문해서 아무 것도 모르던 제게 가르침을 주신 권선생님과 등단문의 산방거인님께 감사드립니다. 네 기쁨이 온전히 내 기쁨이 된다던 친구와 서림문학회 동인들 감사합니다. 평생 삶으로써 시를 쓸 것을 당부하신 중학교 은사님의 말씀이 앞으로 제 글의 지표가 될 것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일이어야 함을 또한 압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어온 스무 분의 30여 편의 시들 중 선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당선을 겨룬 작품은 다음 세 편이었다.


<멀리 보는 잠언>은 요즈음 유행하는 시들의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인식하는 감각은 신선했고 형상화 방식 또한 개성적이었다. 특히 “석양 무렵 던져진 새들에게서 붉은 사과향이 난다” 같은 표현에서 보이듯 그는 느낌을 형상화하는 데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시상의 전체적인 전개가 추상적이고 모호했으며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그 메시지가 불분명했다. 시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의 한 양식인 한 추상적 전언의 약점은 더욱 치명적인 것이다.


<허물어지는 것들>은 앞의 작품과 달리 이른바 메시지가 분명한 사실주의적 기율의 시였다. 그러나 그의 시는 현실의 ‘재현’에 충실한 나머지 그 현실적 모사를 한 단계 뛰어넘는, 이른바 시적 비약의 순간을 자기 작품에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약점을 범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들이 피랍선원들과 아홉시 뉴스, 조간 속 활자들을 거쳐 지난 암흑의 시절 “외삼촌이 허물던 야심한 밤들”에까지 육박하고 있으나 그 너머, 다른 세상을 구현하려는 데까진 미치지 못한 채 그야말로 현실의 모사 속에 갑갑하게 갇히고 말았다. 네루다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지만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 또한 죽은 시인이라는 말을 이 시인은 명심하기 바란다.


<비 온 뒤>는 우선 깨끗하게 정돈된 작품이며 메시지가 분명하고 시적 논리가 합당하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의 결점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는 작품이었다. “빨랫줄에 매달린 빗방울들/열일곱 가슴처럼 탱탱하다/또르르! 굴러/자기네들끼리 몸 섞으며 노는/ 싱싱하고 탐스런 가슴이 일렬횡대, 환하니 눈부시다”라는 첫 부분의 표현들에서 보듯 이 시는 어느 날 우연히 목격된 ‘빗방울들’에서 시적 사념을 출발시켜 그것을 약동하는 언어의 충전으로 끌고 나가다가 마침내 그것을 ‘시로써’ 터트릴 줄 아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괜스리 어렵거나 추상적이거나 한 표현 한 구절 없이 자기 소리를 하나의 작품 안에 오롯이 담아낼 줄 아는 그 시적 절제 또한 믿음직스러웠다. 한마디로 싱싱하고 단정하며 마지막 연에서 보듯 장난기 어린 웃음이 배시시 행간 밖으로 삐어져나올 듯한 작품이다. 선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면서 그의 감각이, 그의 언어가 사념과 철학을 동반하며서, 오늘의 유행에 주눅들지 않으면서 더욱 깊은 세계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오세영, 이시영)











[2009 매일신문 신춘문예]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 / 최정아





한 떼의 구름이 내게로 왔다.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수백 개의 모자들이 쏟아졌다. 백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의 모자도 나왔다. 그 속에서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도 났다. 할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어깨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삼십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모자를 긴 손에 들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 속에서 망사 모자를 집어 들었다. 망사 모자를 쓰자 세상도 온통 모자로 가득했다. 빌딩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꽃들은 모자를 벗겨달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새떼들은 모자를 물고 날아갔다. 수세기에 걸쳐 죽은 친척들도 줄줄이 모자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할아버지는 꽹과리를 치고 새들은 노래를 부르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다. 둥둥둥 북을 친다. 풍랑에 빠져죽은 영혼들이 줄지어 걸어 나온다. 파도에게 모자를 던져준다.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온다. 갈지자로 걸으며 손을 흔든다. 친척들은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넘어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아버지 모자를 다시 구름이 빼앗아간다.





[당선소감]



먼저 저의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박재열, 안도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습니다. 이게 사실인가. 아닐 거라고 부인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이 더 나고 울음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얼굴을 드니 먼 행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앞이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선 또 뭔가 꿈틀거리는 것도 있었고요.


중학교 때 아버지를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리면서 소녀시절부터 허무를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꿈을 자주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빛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상 속의 물고기 같았습니다. 나는 그 물고기를 잡으러 이 바다 저 바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물고기가 바로 내 안에 있었고 어두운 강을 거슬러 오르려고 그동안 몸부림치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물고기를 잡게 해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김영남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채찍이 이렇게 큰 영광으로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이제 그 물고기를 꺼내 넓은 바다로 보내야겠습니다. 이유 없이 투정부리면 묵묵히 받아준 남편, 함께 공부하며 큰 힘이 되어준 정동진 회원 여러분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께도 이 영광을 올립니다.



*본명: 최정순
1950년생, 장안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심사평]

예심을 거친 21명의 작품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신선한 감각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거개의 작품이 산문적인 발상이거나 묘사에 그쳐 있어서, 패기 있는 언어의 구조물이라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시가 삶이나 자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는 날카로운 인식과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런 뜻에서 최정아의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 이정희의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 류화의 「그녀의 검은 봉지」, 김승훈의 「곤달걀의 비명」, 김지훈의 「바다 복사실」, 이담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정학명의 「구름정원의 기억」 등은 사물을 보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서 시의 기초가 튼튼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검은 봉지」는 이야기체를 못 벗어나는 한계를 보였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가상의 공간을 제시하는 만큼 리얼리티가 부족한 것 같았고, 「곤달걀의 비명」은 곯아버린 병아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돋보였으나 강한 인상을 줄 만한 이미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은 베란다의 식물을 극화한 것은 신선했으나 역시 식물들의 구체화가 아쉬웠다. 「바다 복사실」, 「구름정원의 기억」,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는 현실과 상상, 외계와 내면을 무리 없이 넘나드는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바다 복사실」은 재깍거리는 복사실의 이미지를 바다 이미지와 멋지게 오버래핑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효과를 내는 데는 미숙해 보였다. 「구름정원의 기억」은 터프한 호흡이 매력적이었지만, 사물을 형상화하는 능력에서는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만 못했다. 최정아의 이 작품은 활달한 상상력에서 터져 나오는 내면세계가 제의적(祭儀的)으로 살을 채워나가면서도 상당한 예술적인 즐거움과 깊이를 주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 없었다









[2009 부산일보 신춘문예]
담쟁이 넝쿨 / 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를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 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간 구멍으로 쫓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뜯기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예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빠져나가도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갯짓하는 나비 한 마리 등에 앉았네요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





[당선소감]

초등학교 때 나는 자주 옆길로 빠졌다. 실개천을 끼고 있는 쓰레기하치장에서 병뚜껑, 깨진 그릇, 털 뽑힌 인형, 몽당연필 보석 같은 소꿉놀이에 정신 팔려 학교를 가지 않거나 지각을 하기 일쑤였다. 지금 그렇다. 철없고 맹목적이던 어린 시절처럼 이른 밤 시와 지내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등교시간이 부산스러웠다. 써 놓은 시가 잘 있는지 시간마다 만지작거렸다. 만지다 보면 상처 나고 스쳐간 모든 것들이 눈물 나게 하였고 꿈틀거리게 하였다.


문을 두드릴 땐 몰랐으나 들어선다 생각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한 발짝도 걷기 힘든 늪이거나, 하늘마저 보이지 않는 정글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시 한 편 내밀 곳 없이 혼자 걸어왔듯이 아프며, 아물며 헤쳐 가도록 하겠습니다. 내세울 것도, 재주도, 능력도 없습니다. 속살 끌어안느라 칼바람에 시퍼렇게 멍든 배춧잎 같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늘 가슴속에 계셨던 김창근 교수님 건강하십시오, 노원희 교수님. 마경덕 선생님, 이상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늦게나마 인연 맺은 '잡어' 동인의 최희철, 박진규, 김성환, 백진희, 최병문 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 형, 같이 갑시다. '시담' 벗들에게 늦은 안부를 전한다. 해정, 혜정아, 너희들이 있어 내가 오래 살지 싶다. 애간장만 태운 딸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계신 어머니 아버지, 시 쓰는 일에 몰두하는 아내가 보기 좋다는 남편, 강이, 산이,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 재주 없는 저에게 귀한 자리를 펴 주신 부산일보사에 거듭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사랑해도 된다, 걸음해도 된다며 빗장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께 큰 절 올립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조원 / 1968년 경남 창녕 출생. 동의대학교 미술대학 회화 전공. '잡어' 동인.





[심사평]

따로 예심을 거치지 않고 심사위원 세 사람이 응모 작품 전체를 나누어 읽었다. 생각과 말의 균형이 일그러져 있거나, 유행을 추수하고 있거나, 겉멋에 치우쳐 있거나,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작품들을 제외하고 일차적으로 서른 명 남짓을 추렸다. 이를 다섯 명으로 줄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서진 씨의 '물의 씨앗'은 어조가 활달하고 상상력의 전개가 볼 만했으나 관념을 구체화하는 데 미흡했다. 이와 반대로 이규 씨의 '해바라기 노란 열쇠'는 시가 대상의 구체적 형상화라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와 관련해서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정아 씨의 '그의 우화(羽化)'는 재기 넘치는 상상력과 감각으로 일상을 성찰하는 시인데, 그 상상력이 크게 확대되지 않아 아쉬웠다.


김승원 씨의 '다시, 봉천고개'와 조원 씨의 '담쟁이 넝쿨'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능숙하게 끌고 가면서 일상적인 소재를 적절한 이미지와 결합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다만 김 씨의 작품은 일부 상투적인 표현을 노출하고 있어 아깝지만 뒤로 제쳐두기로 했다.


당선작 '담쟁이 넝쿨'은 담쟁이 넝쿨이라는 시적 대상에다 건강하고 격조 높은 사랑의 고백을 매우 탁월한 기법을 이용해 얹어놓았다. 이 시가 발산하는 그윽한 울림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시루 속 콩나물'의 대담한 상상력도 이 시인을 믿음직스럽게 만들었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김종해 강은교 안도현 시인










[200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입춘 / 안성덕



골판지는 골판지대로 깡통은 깡통대로

끼리끼리 모여야 밥이 된다고

삼천변 요요要要자원* 파지 같은 생들이

마대자루에 빈 페트병 고봉으로 눌러 담는다

오락가락하던 진눈깨비가 물러간다

유모차에 생활정보지 걷어오는 할머니

치마꼬리 따라온 손주 볼이 발그레하다

어슬렁거리던 누렁이가 꼬리친다

쥐불 놓는 아이들의 함성 오종종 모여 있는 갈밭

풀린 연기 사이로 북녘을 가늠하는

오리떼 몸통이 통통하다

버들개지 은대궁도 제법 토실하다

모두 요요夭夭하니

풀려나간 요요yoyo가 제 목줄 감아올리듯

스르르 계절조차 되돌아온다

쥐불 놓은 갈밭에도 펜촉 같은 새순이 돋아

돌아올 개개비떼 노래 낱낱이 기록하겠다

코흘리개 맡겨놓고 감감 소식 없는 며느리도

한 소식 보내오겠다


*전주 삼천변에 자원재활용센터 요요자원이 있다





[당선소감]

이미 일가를 이루었어야 할 다 늦은 때 나를 찾아온 시는, 내가 나를 달달 볶게 했다. 소싯적 이웃집 가시내처럼 희멀건 목덜미 슬쩍 내보이고는, 풀풀 살 냄새 흘리고는 그뿐,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숱한 밤 잠 못 들고 열뜨게 했다. 먹다 남은 소주병을 찾게 한 밤이 많았다.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다 돌부리에 차여 고꾸라졌었다. 고꾸라진 나를 일으켜 세우고 깨진 무르팍 쓰리게 닦아 딱지 앉게 해준 형 같은 아우가 있다. 그 상처 덧나지 않도록 호호 불어 처매주고, 다시는 넘어지지 말라고 두 다리에 힘을 넣어준 선생님이 계신다.


내게 언제까지 곁눈질 할 수 있는 핑계 하나 만들어 준 전북일보와 두 분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린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다. 강연호 교수님 고맙습니다. 박성우 시인 고맙다. 고향집을 홀로 지키는 어머니,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두 아들 지혁 동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루한 내 삶에 위로가 된 적도 아주 없진 않았던 시, 재촉하지 않겠다. 연필심에 침 발라가며 밤새 풀잎에 이슬 내리는 소리 또박또박 받아 적겠다. 원고지 한 칸 한 칸 사람냄새 채워 넣겠다.


아파트 모퉁이에 '행복수선'이라는 헌옷 수선집이 있다. 해지고 구멍 난 옷만 수선되는 게 아니라, 조각나고 망가진 우리들 행복도 수선될 수 있다면 좋겠다. 뜻하지 않은 경제난으로 춥고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이 빨리 왔으면 참 좋겠다.




안성덕 /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현 한국전력 전주전력관리처 근무





[심사평]
전북 거주의 응모자가 많았음을 큰 기쁨으로 생각했다. 작품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음을 읽었다. 응모작들의 문법은 거의 정확했다. 구조의 탄탄함도 믿음직했다. 시대나 사회적인 문제의식보다는 시 본연의 감각과 감수성을 기조로 한 시들이 만만치 않았다. 다만 장광설 또는 단순 처리로 아쉬움을 준 시, 명쾌해야 할 전달력이 불투명하게 처리된 시도 없지 않았다.


걸러내고 걸러내다 보니 최종심에 오른 시는 강영식의 '삼거리 외눈부처'와 '물수제비', 이연아의 '대팻밥을 담으며', 안성덕의 '구두병원'과 '입춘' 등이었다. '삼거리 외눈부처'는 개성미와 형상성이 괜찮았으나 울림이 부족했고, '물수제비'는 깨끗하고 투명한 이미지가 좋았으나 단순 처리된 것이 흠이었다. '대팻밥을 담으며'는 수준급에 달했으나 부분적으로 산문형태의 상투성이 눈에 거슬렸다. '대패질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의 돌출로 말미암아 아차, 하는 사이에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상식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구두병원'은 어둡고 구석진 삶의 단면을 걷어내고 윤끼 반짝이는 건강성을 보이고 있으나 끝 연의 처리가 안이하게 풀어져 균형을 잃고 말았다. 당선작 '입춘'은 구조의 일관된 응집력과 나무랄 데 없는 언어표상, 그리고 선명한 주제와 함께 시의 내면을 가득 채운 따뜻한 훈김이 삶을 지탱하게 하는 역동성으로 작용하여 당선작 선택에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읽을수록 깊이 깨물려 단물이 고였다. 참신한 이미지의 거듭됨이 안정된 어조로 짜여 있다. 더할 수 없이 살기 힘든 현실의 가난과 외로움을 따뜻이 끌어안고 삶의 밑바닥을 뒤지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이웃의 아름다움이 측은지심을 넘어 감동을 이끌어낸 수작이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처럼 생명감이 넘치는 노래다. 재활용품 수집이 생계수단인 할머니와 어린 손주, 이들 가족사의 진정성을 뒷받침해줄 끝 부분의 희망의 불씨 또한 시의 완성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심사위원 : 이운룡(시인·문학평론가) 정양(시인·문학평론가)










[2009 무등일보 신춘문예]
아르정탱 안을 습관적으로 엿보다 /윤은희





1

골목의 연탄 냄새 부풀어 전생의 어스름 빛으로 울적한 저녁

길바닥의 검푸른 이끼들 엄지손톱 半의 半 크기 달빛에 물들었다

아르정탱Argentan * 에 맨발로 들어가 자주 꾸는 꿈 벗어두고 나왔다


2

예전에 방앗간이었다는 전설 알고 있다

아,르,정,탱, 하고 불러보는데 안쪽 벽 타고 ‘돌돌돌’ 물소리 흘러내린다

남자들의 이야기 소리, 쉼 없는 흐름에 세월 함께 묻혀졌다

무대 뒤쪽 갤러리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의 The Flower Vendor를

힐끔,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계절의 호흡이 울다가 지쳤나보다


3

나무로 된 제단(祭壇)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높지 않은 천장과 벽을 지나 기억字 다락방에 들어갔다

먼지 깔린 마루 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눈꺼풀 깜빡인다

습기 묻어 닳은 웃음 나무 계단을 미친 듯 닦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없었다


4

하루 종일 굶었다

마티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에 은그릇 반짝거림이 딸꾹질 한다

이슬 맺힌 잎사귀 후려치는 듯, 벽난로의 기둥이 꽃화분 훔쳐보고 있다


5

미친 여자의 하이힐처럼 똑딱대는 子正무렵

오늘은 '도둑맞은 시간에 걸어오는 연인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연인을 능욕한 천박한 권태는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손도 닿기 전에 시들기 시작하는 마른 허브잎

그날은 불안을 잠식하는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의심은 달착지근한 냄새로 붙어 있었다


6

詩를 생각하다 그만,

생선 눈알처럼 벌겋게 달구어진 子音들, 꼭꼭 밀어 넣어 반죽한다

슬픔 뚝뚝 떠내어 ‘대리만족’ 이라는 수제비를 굽는다

기호를 품지 않은 낱말 대리만족을 모른다

세상의 조롱거리 내 몫이 아니지


7

물안개 추파秋波처럼 미끄러지다 까무러치는 호수 주변을 손잡고 뛰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던 맹세는 황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갑자기 입술의 냄새는 서걱거리는 먼지처럼 까칠해졌다

사나흘 내린 비 끝에 다시 아르정탱에 갔습니다

본능의 능숙함이 당신의 입술을 더듬거렸습니다.당신의 입술은 나의 미각만을 기억할 뿐

두 시 방향으로 기운 햇살의 온화함이 묻어 있어요


8

주인장

오늘은 Leonard Cohen의 Famous Blue Raincoat를 들을 수 있겠소

내 인생이 파편으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요

약하게 슬어지는 音調, 불구가 된 기억에는 없다

건너 편 테이블의 핑크재킷과 홍차 사이에는

말해야 하는 것이 있음에도 말할 수 없는 어색함 감돌았다

다만 성스런 스푼이 빛바랜 비단옷 차림으로 춤추고 있다


9

그날은

교리의 꽃봉오리에 충실한 교회 사람들

마음씨 좋지만 우둔한 젊은 청춘들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매끈하게 빠진 조약돌 하나 주머니에 넣고 땀이 나도록 문질러도

손이 헤지 않을 그런 신부와 결혼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각별한 의식儀式

주인장이 누구에게나 봄소식 하나 던져 준 날이다


10

오늘은

여자들 불편하게 하는 소박한 음악 연주회가 있어요

콘트라베이스를 든 남자의 팔뚝이 검게 그을다만 남성성을 과시하고 있어요

첼로의 숨결소리, 매일 밤 떠오르는 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카스트라토를 죽이지는 마세요

수족관의 주홍빛 물고기들

살아, 살아 외침을 거듭하고 있다

함께 살고 싶어 안달하는 소년 소녀를 위로하는

무조건적인 달, 높이 떠올라

호수는 물안개의 소름으로 노닥거리고 있었다

(손끝 적셔주는 빗방울 떨어져 분열증 낚아챌 때,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해요)


11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기다린다

서로 같은 나라 말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표준말에 서투르고, 다른 한 사람은 사투리에 서투르다

그런데 표준말을 잘하고 또한 사투리도 잘하는 사람이 죽는다

무슨 뜻, 어떤 의도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관객들은 짐작만 할 뿐


12

남자 둘 여자 하나

쭈그린 술친구들입니다

한 사람의 맹세가 나뭇가지 위 잔설殘雪에 반짝이고 있어요

술 그리고 여름날의 여자만 저울질하겠다 말했지요

맥주의 쓴맛을 혀 위에 굴리며 곁눈짓으로 농담을 엿들었다

혼자 잠드는 침대처럼 사는 게 아쉽다고 느껴질 때면

Bevinda의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이 떠올랐어요


13

'장미빛 인생'을 닮지 않은

장미 입술에 입맞춤 한다고 장미가 웃겠어요

오히려 우리가 울었지요

그대 떠났을 때 나는 온통 그림자로 드리워질 거예요건너 보이는 트라이엄프 아파트의 커튼 찢겨져 방향 없이 나부낀다

不在의 냄새, 비온 후의 버섯이 되었다


14

서리 내리는 차가운 11월

골목길 빠져나오는데

검은 상복 벗어던지지 못한 숙녀의 얼굴 빤히 쳐다보는 여름날의 구름은 못내 불편하다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을 염려하고 있는가

구름의 맥박은 거의 고동치지 않았다


15

밤이면 내 꿈을 흔들어 놓던 그대는

홀린 듯 둥글게 닫힌 가방을 열고 몰래 감추어둔 햇빛을 쏟아 부었다

- 숨쉬기 운동에는 적당한 햇빛이 필요해


16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경절형 심장이

베네딕트 여자 봉쇄 수도원 55m 종루에 사로잡혀 길게 하품하더니

졸음을 재촉하고 있다

다트의 화살은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쏟아내는구나


17

빵 굽는 냄새 속,

기억은 회초리 맞은 情에 사로잡혀

한낮의 깊은 그림자 소진해 버렸다

걸어 두어 목이 잘린 꿈 외투 걸치듯 입고 나왔다



* 대구 수성구 파동 664번지에 있는 카페





[당선소감]
지난 두 해 동안 詩와 나는 서로 의존하며 살아왔다


시가 그 모습을 가지게 되는 시각화(visualization) 작업을 통해, 이해하고 양육하며 내 인생이 파편으로 취급당하지 않도록 협력하였다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상상력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부자가 된 기분이다. 거친 들판을 가로질러 별안간 봄이 오는 것 또한 보인다.


詩의 양식을 혼자 먹어야 하듯이 시인에게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그것은 슬픈 교만이 깃든 기쁨의 눈물이 되리라


벽돌이 가득 든 배낭을 어깨에 올려놓은 중압감을 잠시 내려놓고 기쁨은 상속된다는 의미를 새긴다


이 시대 여성의 미덕이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ethic of care'라면 그 주제어에 대한 가치 깊은 천착(穿鑿)이야말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여성의 문학적 역할과 그 파급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당선작이 ‘잘 빚어진 항아리’와 같은 훌륭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결정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르헤스의 말을 변명으로 대신하면서 앞으로도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글읽기와 글쓰기는 계속할 것이다.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도약할 수 있는 열정의 꿀씨를 던져주시어 초심자의 마음으로 자신을 독려하고 삭정(削正)하라는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호흡이 긴 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말로 시 앞에서 직면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울산대 구광렬 교수님, 17년 동안 시와 반시를 이끌어온 구석본 교수님 그리고 손진은 교수님, 김상환 선생님, 고희림 시인께도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사랑을 표현하기에 서툴기만한 가족과 시와 반시 전체 회원님들 이 기쁨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새해에는 언어의 영매가 되어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넓어진다.


윤은희 / 경북 경주 출생. 계명대 일반대학원 영문학과 졸업




[심사평]

'신춘문예'는 한 신문사의 대단한 일년농사다. 그리고 이 일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겐 두꺼운 지층을 열고 나온 새싹의 그 파릇한 정신과 가능성을 보여드리는 일이다.


세상이 저물고 나서야 떠오르는 얼굴, 새해의 일출이다. 무등산의 저 너른 오지랖을 덮어버릴 넘치는 그 일출 같은 생명력이 당선자라면 이것만으로도 '신춘문예'가 작품을 읽어낸 독자들에게 보답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남겨진 작품들은 '트래픽 잼', '새벽, 삼당 민박집 콩밭을 걸으며', '엄마가 움직이지 않아요', '프레임 아웃', '하회탈', '딱지를 접으며', 그리고 당선작으로 뽑은 '아르정탱(Argentan)안을 습관적으로 엿보기' 등이었다.


이들 작품들은 저마다 신인에게 필요한 패기와 발랄함, 시적 개성 등이 숨쉬고 있어서 어느 작품을 당선에 올려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허나 선택에는 항시 '보다 더 좋은'이라는 조건이 걸리는 터여서 '아르정탱…'이 뽑힌 것이다.


당선작은 우선 시적 길이부터가 근년의 경향에서 조금 예외이다싶게 장시적 모습을 띠고 하나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당선작이 지닌 장시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갖가지 시적 여러 요건이나 장치들이 담겨 있어서 그야말로 시에 대한 총체적 기상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이같은 길이를 파탄 없이 끌고 가는 시인의 저력이 돋보였고 후일의 야심 또한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손끝에 달린 몇개의 감각과 재주로 세상에 덤비는 얄팍함도 덜어낼 수 있었다.


덧붙여 동반 응모작품 또한 고른 수준을 보인 점도 이 시인을 더욱 미덥게 한 부분이다.


그래서 '아르정탱…'에게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당선작'이라는 배 한척을 내어드리기로 한 것이다. 응모자 모두의 건승을 빈다.



- 김 종 시인.










[2009 국제신문 신춘문예]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 / 도미솔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됐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끝별 명왕성은
난쟁이행성 134340번이란
우주실업자 등록번호를 받았다
그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한 남편은
지구에서부터 점점 어두워져 갔다
명왕성은 남편의 별
그가 꿈꾸던 밤하늘의 유토피아
빛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별이 될 수 없어
수평선 같았던 한쪽 어깨가 기울어
그의 하늘과 별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꿈을 간직한 소년에서 마법이 풀린
꿈이 없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명왕성은 폐기된 인공위성처럼 떠돌고
남편의 관절은 17도 기울어진 채 고장이 났다
상처에 얼음주머니 대고 자는 불편한 잠은
불규칙한 삶의 공전궤도를 만들었다
이제 누구도 남편을 별이라 부르지 않는다
알비스럼 낙센에프정 니소론정
식사 후 늘 먹어야하는 남편의 알약들이
그를 따라 도는 작은 행성으로 남았다
남편을 기다리며 밝히는 가족의 불빛과
아랫목에 묻어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그의 태양계였으니, 늙은 아버지와
아내와 아들딸을 빛 밝은 곳에 앞세우고
그는 태양계에서 가장 먼 끝 추운 곳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노예처럼 일했을 뿐이다
절룩거리고 욱신거리는 관절로
남편은 점점 작아지며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도 난쟁이별로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돌아오는 길이 점점 멀어진다
그가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그 길을 작아진 그림자만이 따라오는데
남편은 그 그림자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지구의 한 해가 명왕성에서는 248년
그 시간을 광속에 실어 보내고 나면
남편은 다시 별의 이름으로 돌아올 것이다
명왕성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당선소감]

내 방에는 어둠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침은 내 방을 찾아오지 않고 멀리서 보고 있습니다. 그 어둠이 무서워 전등 스위치를 찾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스위치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끝이 없는 일은 나를 더욱 내 방에서 나갈 수 없는 외톨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후가 저물어가는 시간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어둠이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서만 숨을 쉬었던 시에게도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다시는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쁩니다. 당선 소식을 자랑하고 싶어 여기 저기 전화를 겁니다. 햇빛도 덩달아 신이 나서 내 방안 구석구석 돌아다닙니다.


아침 햇빛이 베란다 가득 들어앉아 나를 보고 있습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햇빛이 따라옵니다. 환하게 비치는 내 몸을 봅니다. 내 몸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서있습니다. 어둠에서만 숨을 쉰 내 언어들도 이 햇빛에서 고른 숨을 쉬게 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합니다. 오랜 기도를 끝내고 나는 일어납니다.


먼저 부족한 시를 뽑아 주신 국제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늦은 시 공부에도 늘 칭찬만 해주신 엄마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며 묵묵히 나를 믿어주고 밤 늦도록 컴퓨터 앞에만 있는 나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주곤 했던 남편과 우리 아이들, 민지 양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시의 씨앗을 찾으러 같이 다녔던 조덕자, 이궁로, 유금오 시인에게도 마음 가득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 나를 위해 기도해주던 진영미 씨에게도 그동안 많이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약력〉본명 도순태 / 1957년 경북 경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경향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보내온 많은 시들을 읽었습니다. 다양한 시의 형식과 더욱 다양한 주제들 앞에서 심사위원은 고심하면서 오랫동안 시를 읽었습니다.


그렇게 거르고 걸러 '꽃들이 타오르는 이유'(신원희), '꽃게와 발레리나'(박세랑), '장롱을 열어놓고'(박종인),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도미솔) 등 4편의 시를 최종심에 두고 또한 오랜 토론이 있었습니다.


'꽃들이 타오르는 이유'는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좋은 시였는데 함께 보낸 다른 작품과 편차가 심해, '꽃게와 발레리나'는 발랄하고 감성적이어서 좋은 시였는데 그래서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다음 기회로 넘겼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장롱을 열어두고'와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를 두고 두 분 다 표제작은 물론 함께 보내온 탄탄한 구성의 시들에서 오랫동안 시를 써온 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롱을 열어두고'는 맑은 서정과 부드러움이 빛나는 시였고,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는 시가 갖는 힘과 긴 시를 흔들리지 않고 장중하게 끌고 가는 저력이 돋보이는 시였습니다.


심사위원은 '장롱을 열어두고'가 가지고 있는 반복적 구성이 결점이 된다고 지적하면서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된 것과 우리 사회의 구조조정이란 문제를 서정적인 문체로 제시하며 '희망'이란 메시지를 선물하고 있는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특히 당선작과 같이 보낸 시들의 어떤 작품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어 그런 신뢰가 당선자의 앞으로 활동에 큰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당선자 도미솔 씨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에게 다음에도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는 말을 전합니다.


본심 심사위원 천양희 정일근 문태준(시인)











[2009 문화일보 신춘문예]
즐거운 장례식 / 강지희





생전에 준비해둔 묫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는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모서리를 앉혀줄 때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壽衣 위에

한 겹 더 나무그늘 옷을 걸치고

그 위에 햇살이불 끌어당겨 눕는 당신

이제 막 새 세상의 유쾌한 명찰을 달고

癌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린다

향 같은 생전이 다시 주검을 덮을 때

조카들의 두런대는 추억 사이로

국화꽃 향기 환하게 건너온다




[당선소감]
기찻길 옆 우리 집은 탱자나무가 담장이었다. 손에 상처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울타리가 낳은 노란 전구알 같은 탱자에 경부선 기차 소리를 받아 적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자주 내가 쓰는 언어로 세계의 결을 환하게 열고 싶었지만 제 몸을 가시로 감싼 탱자나무처럼 가시 속에 숨은 시의 언어들은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빠져 달아나는 언어의 꼬리, 그 미끄러짐들. 그때마다 나는 네모난 종이로 학을 접었다. 일곱 번 몸을 접고 마지막 날개를 펴주어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 내 언어를 들고 푸른 신호등을 따라 삼각지 로터리를 도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 옷깃을 파고 들었다. 갑자기 마른 몸을 털며 종이학이 날아오르고, 갖가지 색깔로 접었던 물고기들이 별로 살아나 파닥이기 시작했다.


당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두렵고 막막했지만 가시가 심장을 찔러대도 모든 아픈 몸들을 보듬으며 나아갈 것이다. 칠년 만에 보내준 화해의 품 안엔 가시가 있을 테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믿듯 나의 시를 믿기로 한다.


부족한 제 시에 손을 들어주신 황동규, 정호승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언어를 빛나게 갈고닦아 시에 부려 놓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이기철 교수님, 시어가 대상과 나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몸과 현실을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신 손진은 교수님 두 분께 두고두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도 모자라는 느낌이다.


늘 바쁘게 쫓기는 시간들을 불평 없이 뒷바라지해준 남편, 수능으로 고생하는 딸 지수가 고맙고 당선 소식에 가장 기뻐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함께 보듬고 격려해준 영남대와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문우들이 떠오른다. 지면을 빌려 따뜻했던 마음들에 손을 내민다. 저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 강지희 / 1963년 영천 출생. 영남대·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재학중. 페이퍼 로즈 공예연구실 원장





[심사평]

최종심까지 올라온 8명의 작품 중에서 마지막 남은 작품은 이강해씨의 ‘집들이’, 강지희씨의 ‘즐거운 장례식’ 2편이었다.


‘집들이’는 탄탄한 내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이 먼저 단점으로 지적됐다. ‘사랑은 시작하기도 전에 슬프고/ 살아보기 전에 무덤이다’ 등의 표현 또한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멋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져 자연히 ‘즐거운 장례식’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됐다.


‘즐거운 장례식’ 또한 단순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으나 그러한 단점보다는 죽음을 보는 눈이 새롭다는 장점을 더 높이 샀다.


누구의 죽음이든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기존의 생각을 즐겁게 뒤집는 역설적 묘미가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나름대로 높은 시적 성취도를 이루고 있다.


‘관을 들어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작은아버지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긍정성과 순응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자 기쁨의 축제다.


작은아버지는 ‘암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릴’ 정도로 오히려 남은 가족들을 위로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이 반어적 발상을 통한 시적 구현은 이 시인의 앞날에 대한 신뢰의 깊이를 더해준다. 앞으로 한국시단을 빛내는 시인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2009 불교신문 신춘문예]
가게 세 줍니다 / 유금옥



나뭇가지에 빈 가게 하나 있었어요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화원을 차렸죠 (햇살 꽃방) 정말 그날부터 햇빛들이 자전거 페달을 쌩쌩 밟았다니까요


가게에 봄이 한창일 때는 산들바람도 아르바이트를 했죠 사랑에 빠진 벌 나비가 주 고객 이였는데요 창업에 성공한 사례였어요


참새들은 날개 달린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요 가위로 꽃대를 자르다 서로 눈이 부딪치면 재재거리며 웃었어요 앗 ! 그때 여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어요


가을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보았죠 양은냄비 브래지어 구두 숟가락들이 낙엽이 되다니 아스팔트 바닥에 나 뒹굴다니


비 내리던 가을 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꽃방은 다시 문을 닫았어요 가랑잎 한 장만한 쪽지를 붙여 놓았지만 겨울 내내 가게는 나가질 않았어요 가게 세 줍니다 (연락처: 살구나무)





[당선 소감]

영동지방 적설량, 108cm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02-733-1604’ 낯선 전화벨 소리가 서울에서 강원도 대관령 중턱, 폭설로 버스도 끊긴 이 산골짝까지 어떻게 찾아왔을까요.


길이 어디에도 없을 때 온통 절망으로 세상이 캄캄해져 있을 때 나의 시는 이렇게 불쑥 찾아오곤 했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부메랑처럼 내가 당도할 수 없는 먼 곳으로 사라졌다가 신기하게 되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지금, 내 앞에 사뿐히 놓여 있는 부메랑이 둥글다는 것은 왜 이제야 알게 되는 걸까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함부로 날려 보냈던, 연필 칼이나 가위로 오려낸 장래희망, 비뚤비뚤한 각이나 모가 나 있던 장래희망이 어느 세월을 떠돌며 스스로 지워지고 닳아버린 다음에 돌아오는 걸까요.


흰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내가, 떠돌던 부메랑처럼 돌아와 잠시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 도서관, 전교생이 스무 명도 안 되는 산골학교 운동장은 오늘같이 흰 눈이 내리지 않아도 날마다 순백의 백지였습니다. 아이들 마음 속에는 크레파스 공장이 한 채씩 들어 있습니다. 몽당 크레파스 같은 아이들이 뛰어와 아름드리 살구나무 밑동을 타고 오르면 우르르, 분홍빛 봄이 몰려왔고, 가끔은 초록빛 소나기들이 뛰어다녔고, 또 어느 날은 실바람 혼자 가오리연을 날리는 일요일도 있었지요.


훌쩍 그 연을 타고 올라가, 실눈을 뜨고 서울 방향을 가늠해 보아도 여기서 임 계시는 서울은 너무 먼 곳이었지요. ‘거무데데한 나의 시들이 도시체험 한 번 못하고 저 살구나무처럼, 뿌리박혀 살다가 죽어가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야’라며 제법, 똑똑한 생각이 들 때쯤 이렇게 폭설이 내려 마을이며 운동장을 온통, 새하얀 도화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순백의 마음이 되기까지 나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가요.


드디어, 지금까지 내가 방황했던 모든 길들은 지워졌습니다!


살구나무 한 그루로 살 수 있도록, 우둔한 나에게 미리 시를 가르쳐 주신 정진규 스승님, 이승훈 스승님, 그리고 송준영 선생님 고맙습니다. 또 전국 미인대회에서 산골 아이처럼 생긴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앞으로도 결코 미인이 되지 않도록 맨발로 흰 눈밭을 뒹굴 것이고 햇볕에 그을리면서 크레파스처럼 자유분방하게 원고지 위에서 뛰어놀겠습니다.





[심사평]
투고된 작품들을 몇 차례씩 숙독하여 마지막 까지 남은 작품은 ‘가게 세 줍니다’, ‘자작나무의 행로’, ‘정씨 목공예방’, ‘신발 속에서 걸어나오다’, ‘딱다구리 경전’, ‘꽃들의 언어’, ‘호수의 법문’, ‘안부’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게 세 줍니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최후까지 겨룬 ‘자작나무의 행로’도 당선작으로 별반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미학적 완결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가게 세 줍니다’는 스케일이 크거나 문제성을 지닌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 속에서 진리를,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발견한 시적 통찰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미학적 차원에서 신선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언어적 감수성도 탁월하였다. 자연과 하나 된 인생의 참 모습이 나무의 사계절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훌륭한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주는 법이다. 굳이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 당선작은 이 같은 시의 원리를 잘 터득한 듯 하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시론에서 논의되고 있는 시의 보편적 원리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시창작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한 정석이다. 첫째 이미지의 등가적 반복이다. 1, 2연은 봄의 이야기를, 3연은 여름의 이야기를, 4연은 가을의 이야기를, 5연은 겨울의 이야기를 빌어 같은 자연의 의미를 네 번 굴절시키면서도 각각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둘째 상상력의 이원적 대립이다. 시인은 자연과 문명이라는 상반된 두 세계를 한가지로 일원화시킨다. 셋째 이미지들의 병렬적 기법이다. 1연에서 ‘자전거 페달’을 이야기한 것은 3연에서 ‘오토바이 질주’에 2연 ‘산들 바람’은 3연에서 ‘이삿짐 트럭’에 대응된다.



‘자작 나무의 행방’은 사유가 깊고 복선적이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보다 무게가 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상상력의 논리가 부족하며 그런 까닭에 다소 산만하다. 주제 의식보다도 형상화의 완결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나머지 시들도 모두 상당한 수준에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 창작의 도움이 될까하여 여기서는 약점만을 지적해 보도록 하겠다. ‘호수의 법문’은 긴장감이 부족했으며, ‘안부’는 설명적이었으며, ‘꽃들의 언어’는 작위적이었으며, ‘딱따구리 경전’은 다른 시인들의 이미지와 유사한 점이 있었으며, ‘신발 속에서 걸어나오다’는 상상력의 비약이 지나쳐 보였으며, ‘정씨 목공예방’은 사실적이었다.


-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2009 영남일보 문학상]
나무의 공양 / 이경례


졸참나무가 제 몸통을 의탁해왔네
지난 태풍에 겨우 건진 살림살이지만
기와 불사를 생각하며 제 몸 선뜻 내 놓았다네
오래도록 산문의 입구를 지켜 온 졸참나무와


딱따구리, 한참을 골몰한 붉고 노란 머릴 조아리며
하피첩서霞帖書를 떠올리다, 마침내
졸참나무, 거친 한 생의 피륙에다
제가 살아온 산야의 사적비를 짜기로 했네


구족口足 화가가
붓을 입에 물고 넝쿨처럼 뻗어 오르는
푸른 영혼을 펼쳐내듯
한 땀 한 땀이 딱따구리 혼신의 필사


졸참나무 나이테에 누가 바늘을 올렸나
아득한 시간의 엘피판에서 흘러나오는
여든 아홉 암자의 일천성인 득도의 날들과
어느 날 산사의 소신공양燒身供養


졸참나무의 한 생이 받드는 허공 속으로
무거운 산 울대 오래 공명하는 딱따구리의 필력
노을치마인 듯 소슬히
산야가 제 온 몸 펼쳐 품안에 보듬는 저녁이라네


[당선소감]
무의미를 꿈꾸던 한때가 있었다. 부화하지 못한 말들이 슬어놓던 무덤을 세어보던 시린 새벽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 푸른 길섶에 들어섰던 것일까. 새소리와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에도 움트는 우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파르다 생각한 오르막들은 더 멀리 바라다볼 수 있는 생각 언저리에 나를 내려놓았다. 나를 돌려세우고야 비로소 다가오던 세상, 한 개의 돌을 움직이자 돌아가기 시작하는 비밀의 문처럼 이제 막 해독한 암호처럼 세상을 읽기 시작한다. 나의 영혼으로 빚은, 그대와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소통방식.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신 김명인·이하석 두 분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 내 작은 소리가 오래된 우물처럼 세상의 귓가에 더 웅숭하고 깊은 파문을 울릴 수 있도록매서운 시의 들판을 헤매는 날이 많아질 것이다. 한 영혼이라도 떨게 할 수 있는 언어를 빚는 날까지 끝없이 나를 담금질하겠다.


맵고 따뜻한 가르침으로 가능성의 끝간 데까지 이끌어주시는 경주대 손진은 교수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교수님으로 인해 시의 출렁거리는 넌출과 속 깊은 뿌리를 알게 되었다. 더 열심히 읽고 쓰는 불면의 날들로 그 은혜를 갚아 나가고자 한다. 동리목월문학관과 경주대 사회교육원의 소중한 인연, 내 시의 덩굴손을 더듬어 가면 오롯이 서 계시는 김성춘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 생의 소중한 분들께도 여전한 사랑을 보낸다. 나의 웃음은 늘 누군가의 울음위에 열린다는 무거움이 있다. 詩로써 그 누군가의 눈물을 닦을 수 있을까?



[심사평]
예심을 거쳐온 20여분의 작품들을 숙독하면서, 올해의 응모작들이 시적 다양성이나 인식의 틀에서 선자(選者)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안타까웠다. 그러나 습작기의 신인들에게서 흔히 살펴지는 판에 박힌 수사나 장식적 언술, 뿌리 없는 상상력과 모호한 주제들, 리듬을 사상(捨象)시킨 줄글체의 중언부언들은 다소 걸러진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마지막까지 선고(選考)의 대상이 된 작품들은 '무릎' '유리주의' '흔적' '나무의 공양' 등이었다.


'무릎'은 신체의 일부분을 일상의 틀 속에서 음미하면서 자성(自省)으로 이끌고 가는 노련함이 읽혔다. 시어의 경제를 실천하면서도 환상을 끌어안는 견고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또 다른 응모작 '둘레'도 이 응모자의 습작의 강도를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유리주의'는 대상으로 집중하는 시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삶의 음영을 겹쳐놓는 시적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상상력의 결을 좀더 활달하게 풀어헤쳐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만든다. 한 작품을 지탱해 줄여타의 시편이 없다는 것도 이 응모자의 한계라고 판단했다.


'흔적'은 당선을 두고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이다. 이 응모자가 선택하는 깊이 있는 시어들은 주제를 끌고나가는 끈질긴 사유의 힘과 어울려 상당한 설득력과 무게를 차지해 보인다. 그럼에도 당선작의 뒷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딘가 익숙한 수사로 가로질러 오는 언술들이 잦았던 탓이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자신에게도 낯선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무의 공양'은 오래 묵힌 소재를 활달하고 투명한 상상력으로 맑은 샘물처럼 산뜻하게 변주한 작품이다. 대상을 새롭게 부조하여 오롯이 완결된 한편의 서정으로 빚어내고 있어서 이 응모자의 숙련된 공력을 느끼게 한다. 시가 직선도 곡선도 아닌 얼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깨우친 결과이리라. 당선에는 다른 시편의 수준들도 함께 평가된 것임을 부언해둔다. 더욱 정진하길 당부한다.


심사위원: 이하석(시인), 김명인(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009 한라일보 신춘문예]
오래된 잠 / 이민화


다섯 송이의 메꽃이 피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알리는 검은 적막을 깨고,

돌담을 딛고 야금야금 기어올라

초가지붕 위에 흘림체로 풀어놓는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람벽이

움찔 다리를 절면,

마당가에 선 감나무도 키를 낮춘다.

아버지의 귀가에서 나던 솔가지 타는 냄새

너덜너덜해진 문틈으로 새어나오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도꼭지

끄윽끄윽 울음을 뱉어낸다.

산 그림자 마당으로 내려서면,

거미줄에 걸린 붉은 노을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먼지 쌓인 잠을 쓱쓱 문질러 닦아내면

아버지의 오래된 시간이 푸석한 얼굴로 깨어난다.

늙은 집이 메꽃을 피우고 있다.





[당선소감]

새벽에 꿈을 꾸었다. 누군가 하얀 봉투를 제 손에 꼭 쥐어주고 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그럴싸한 일이 생길 듯한 예감, 응모 작품을 보내고는 잊어버리리라 생각했으면서도 은근한 기대와 설렘으로 지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포기 쪽으로 기울던 참이었다. 올해도 빈손으로 한 해를 건너는가보다 하며 초조한 기다림은 허탈함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당선 통보를 받았다.


3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무슨 용기로 뛰어들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저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이 났다. 그런데 시를 쓸수록 자신이 없어지고 한쪽 가슴께에 통증이 왔다. 중간에 주저앉기도 여러 차례, 결국 시의 길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힘들고 아팠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많이 아팠던 기억뿐이다. 오랜 기간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저를 업고 다니시느라 어머니의 등에서는 항상 쉰내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가 결코 싫지 않았다. 그러기에 글을 쓰게 된다면 꼭 어머니의 냄새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이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누구보다 기뻐해준 남편과 아이들한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그 동안 온갖 짜증 다 받아준 남편한테 더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주말마다 시의 벽돌을 함께 쌓는 다층문학동인과 지도해 주신 변종태 선생님,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아울러 고마움을 전한다. 살아 계셨으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기뻐하셨을 시아버님께 이 상을 바치고 싶다. 고인 물이 되지 않고 자만하지 않을 생각이다.


* 이민화: 65년 경남 남해 출생. 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다층문학동인. 제주MBC 여성백일장 시부문 동상. 제주신인문학상 시당선. 동서커피문학상


[심사평]

응모작품은 2백여 명이 보내온 8백여 편이었다. 2008년 1백 50여명 6백여편에 견주면 응모자만도 50여 명이나 늘어났다. 응모자들을 살펴보자면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10대에서 80대까지 고루 응모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응모한 시 작품들은 풍족하게 많은데도 평년 수준을 밑도는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당선작을 고르는 데 그래서 진땀이 났다.


우선 10편, 강병철의 '허수아비', 장유정의 '빈집', 권혁찬의 '노트북', 이민화의 '오래된 잠', 김웅철의 '11월 대정 골', 한규현의 '밥', 엄계옥의 '매미 집', 정현의 '곶감', 권삼현의 '까치밥', 임창선의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을 뽑았다. 여기서 5편을 뽑았다. '허수아비''빈집' '노트북' '오래된 잠' '11월 대정 골'이 그것들이다. 모두 만만찮은 시 쓰기의 경지에 있다. 그런데도 모두 조금씩 부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구두점 쓰기 등에 좀더 마음 썼으면 한다. 여기서 '부족감'이라고 지적하는 바는 읽고난 뒤에 받는 시 읽기의 감동이다. 시 읽기는 혼의 울림을 깨닫는 자리가 아닌가. '11월의 대정 골'은 제주어로 시를 쓰고 그 시를 표준어로 다시 쓰고 있다. 아무리 인간의 혼이 언어라 하더라도 그 혼의 노래를 두루 알려져 있지 않는 토박이어로 쓴다는 것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마침내 우리는 최종심에서 '빈집'을 떨어뜨리고 당선작으로 '오래된 잠'을 뽑기로 했다. 시의 구조가 견고하지 못한 점도 없지 않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아기자기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절제된 감정을 언어로 수채화 그리듯이 잘 그려내었다. 시간 구조도 과거를 현재로 잘 풀어냈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이 폐가인 데도 '낡은 집'이 아니고 '늙은 집'으로 의인화시키는 놀라운 표현을 간단히 해내고 있다. 정진하시라!


- 문충성 시인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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