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2002년 [세계일보] 시 당선작

문근영 2015. 4. 10. 10:13

2002년 [세계일보] 시 당선작


버스칸에 앉은 돌부처

심은희




생은 울렁거림이다;(누군가 말을 걸어오는지)


목젖을 타고 올라오는 건


환멸이란 이름의 멀미다





그만 살았으면 싶은 노인들의 푸념 또는 수작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늘어진 가로수들이나


심하게 쳐진 할머니 입꼬리에 걸린 담배처럼 언제라도 툭


떨어질 듯이 과자 봉지를 들고 질주하는 어린 아이를 볼 때면


그것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기어이 아이의 과자는 축포처럼 공중분해되고


어디선가 날아든 비둘기들은 겁도 없는 상이군인처럼


버스전용차선으로 뛰어든다 순간 나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어머니의 노동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비틀거렸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제 알겠다 콘크리트 벽에 일렬로 달라붙어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나이트 클럽 벽보를


무슨 복권처럼 긁고 있는 노인들을 볼 때면 왜


까닭모를 화가 치미는지를





버스는 이내 저 홀로 풍성한 계절을 맞이한 청소차를


아슬아슬 비껴나간다 청소차에서 분명


낯익은 해골 하나가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차가 덜컥덜컥거리며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짤랑거리며 들어서는 건 언젠가는 내 몸 가장


투명한 부분을 밀치고 들어설 낯선 불행들일 것이다;갑자기 숨이 가빠온다


(아까부터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당선소감

다시 '나'를 검열하자...그리고 세상을 돌아보자

기뻤다기보다는 얼떨떨했다. 첫 응모라 큰 기대를 하지 않은 탓에 막상 당선 소식을 듣고는 덜컥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시를 쓴다, 쓴다 하면서도 쉽게 세상에 디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준비는 항상 부족했고 시는 언제나 불만족스러웠다. 그걸 참고 고칠 수 있을 때까지 몇년씩 묵혀두기도 하면서 아주 가끔씩 그렇게 시를 써왔다. 돌이켜 보면 어리석게도 시를 썼던 시간보다 시가 도리질치다 달아날까 봐 안절부절 못하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 시를 쓰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다만 어렸을 적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시를 쓰겠노라고 우격다짐하던 기억은 있다. 지금 나는 시인이 되기 위한 출발선에 있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까지도 나의 화두가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한 편의 시를 쓰거나 고칠 때 뿌듯한 적인 많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책읽기가 가능하듯이 행복한 글쓰기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대에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그럴 수록 철저한 자기 검열을 거쳐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시금 시를 쓸 용기를 주신 두분 심사위원님과 항상 그리웠지만 제대로 인사 한번 드리지 못한 한신대 국문과-문창과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함께 고민을 나누었던 내 오랜 벗들과 문창 선-후배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과 언니, 동생에게 진한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 시를 좋아하게 된 것도 영광인데, 시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인 듯싶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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