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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야기] 표류선 조사 땐 인도주의와 실학정신을

문근영 2014. 7. 26. 06:24

[이야기] 표류선 조사 땐 인도주의와 실학정신을
  글쓴이 : 김태희     날짜 : 2010-09-03 10:24     조회 : 39    

 

다산이 강진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표류선 한 척이 수만 권의 책을 가득 싣고 무장(茂長) 앞바다에 정박하였다. 이를 조사한 관리들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법에 표류선 안에 있는 문자는 인쇄본이거나 사본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베껴서 보고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책들을 언제 다 베낀단 말이냐. 몇 가지만 뽑아서 보고했다간 분명 엉뚱한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조사 나온 관리들은 모래밭을 파서 모든 책을 묻어버렸다.


이 일을 전해들은 다산은 한탄하며 말했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죄가 되지는 않는다. 너무 책이 많아 베낄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라면 책이름과 권수만이라도 기록하여 보고하면 되지 않겠냐. 극악한 도적처럼 보물을 함부로 버렸으니 그 외국인들이 우리를 뭐라 이르겠느냐.


외국인을 큰 손님 대하듯


위 이야기는 <목민심서>에 나온 이야기이다. 다산은 『봉공』 ‘왕역(往役)’ 편에서 표류선 조사[漂船問情]에 관해 다섯 가지 사항을 말하고 있다. 첫째로, 외국인을 큰 손님 대하듯 공손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외모만 보고 그들을 업신여겨 스스로 체모를 잃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둘째는 문자로 된 도서에 대한 보고에 관한 것인데, 서두에 든 사례는 이 대목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셋째, 조사관의 접대를 빙자하여 아전들이 물자를 제멋대로 거두어가니 조사관들이 이를 엄하게 금지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산이 늘 그렇듯 백성들 입장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오직 백성만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표류선이 한번 지나가면 조사관 접대를 빙자한 아전들의 횡포로 섬이 거덜 나니, 표류선은 곧 재앙이었다. 그래서 표류선이 오면 섬사람들이 칼을 빼어들고 죽일 기색을 보여 달아나게 한다. 상황이 급박하여 구원을 애걸해도 나서지 않고 내버려둔다. 배가 침몰하고 선원들이 죽고 나면 몰래 흔적을 없애려 불태워버린다.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런 짓을 한다며, 그 결과 외국에 우리나라가 야만국으로 알려질 것을 다산은 걱정했다.


넷째로는 표류선을 만날 때마다 선박을 상세히 그려두고 재료와 모양, 그리고 수리하는 법과 파도를 잘 헤쳐 나아가게 한 기술 등을 상세히 조사하고 기록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다산은 외국의 조선술이 매우 발전하여 있고,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데도 조선술이 낙후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 다섯째는, 외국인과 말할 때 동정의 빛을 보이고 필요한 음식물은 신선하고 깨끗한 것을 주고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들이 감복하여 기뻐하고 돌아가서 좋은 말을 하게 될 거라 기대했다.


이상 표류선 조사에 관한 다산의 글에서 인도주의와 실학정신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다산이 요구한 행동은 모두 자연스런 인정에서 우러나는 지극히 마땅한 인도적 처사요 문명국인의 보편적 규범에 합당한 훌륭한 외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표류선이라는 문제적 상황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을 상징하고, 위의 네 번째 대응과 같은 외국선박과 선진기술에 대한 관심은 실학을 상징한다. 임형택 교수는 실학을 “서세동점이라는 세계사적 조류에 대한 사상적 각성의 산물”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제자 이강회가 스승 다산이 선박 기술을 배우고 바다를 방비[海防]하려 했던 노력을 계승했던 사실을 논문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이 진전되어 구체화되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세계사적 변화에 대한 주체적 능동적 대응을


서세동점은 함포로 위협하며 개방을 강요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 징후가 나타났다. 실학자들은 이미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많은 서적 속에서 서양을 만났다. 또 아주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조선술로 제작된 배에서 서양을 만났다. 서양세력을 특정적으로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서세가 몰고 온 여러 변화징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이 실학자였다. 그리하여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한 일단의 노력을 실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런 실학적 대응은 19세기에 본격화하지 못했다. 급기야는 나라를 잃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역사로 접어들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 20~30년 동안은 세계사적 흐름에 잘 대응했다. 조선(造船) 강국으로 발돋움했거니와, 동구권 국가들과 통교하고 교전국이었던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냉전 후 시대의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에 적극 대응했다. 남북관계도 변화의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다. 다만, 최근에 해방(海防)의 무능, 통일에 관한 무대책과 철지난 냉전적 진영외교로의 후퇴를 보이고 있다.


8월 29일은 나라 잃은 치욕을 겪은 지 100년이었다. 남북통일이야말로 이런 치욕을 씻고 동아시아를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꼭 필요하다. 개방은 개혁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북한 위정자는 위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에게 개방은 불가피하다. 이런 개방을 우리가 도와주기는커녕 몰아붙여서 중국에 의존하게 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동북4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동서(東西) 체제경쟁에 편승하던 시대는 지났다. 중국과 북한을 한편으로 하고, 한·미·일을 한편으로 하는 패거리 싸움에 앞장서는 한 통일의 길은 요원하다. 세계사적 변화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실학정신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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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희
·다산연구소 기획실장        


 

 

 

출처 : 좋은 세상 물꼬 만들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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