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말/ 유안진
말하고 나면 그만
속이 텅 비어버릴까 봐
나 혼자만의 특수성이
보편성이 될까봐서
숭고하고 영원할 것이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해버릴까 봐서
거리마다 술집마다 아우성치는 삼 사류로
오염될까 봐서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 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 거다
참고 참아서 씨앗으로 영글어
저 돌의 심장 부도 속에 고이 모셔져서
뜨거운 말씀의 사리가 되라고
- 시집 『봄비 한 주머니』(창작과 비평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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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랑한다'는 말의 값어치를 따져보면 도무지 쉽게 말해버릴 수 없다 한다. 또 헤프게 보일까봐 아끼고 참아내고 싶다고 했다. 그 달콤한 말은 백번 천번 들어도 좋다 했지만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말해버려 그 말의 제값이 인플레 된 세상에서 살아온 지 오래다. 그 원인을 시대의 가벼움, 젊은이의 경박 탓으로 돌릴 것만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진실 되고 고귀한 사랑이 그만큼 귀해진 탓이거나, 도처에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 널려 있어 내남없이 외롭고 쓸쓸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그 수요가 많다보니 소품종 소량 생산으로 은밀하게 유통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고 현주소가 아닐까. 이성간 매력에 이끌려 강력하고 육체적인 자극을 원하는 감정이 남녀간 좁은 의미의 사랑이라면 언젠가 마광수 교수가 말했던 ‘관능적 경탄’으로부터 사랑의 시동이 걸린다는 주장에 일정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하지만 그런 상대를 만나 덜컥 첫 눈에 반했다고 해서 곧장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을 수 없는 노릇이다.
끌리는 감정만으로 쉽게 사랑한다 말할 수는 도무지 없을진데 선행조건 단계에서 망설임 없이 ‘사랑’을 뱉어내는 사람을 종종 본다. 재바른 고백의 하자를 탓하는 게 아니라 숙성을 거치지 않은 사랑은 자칫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단숨에 사랑의 계단을 다 뛰어 올라 단 하루에 초고속 성장을 이룩한 ‘운명적’사랑이 없으란 법은 없다. 단박에 망설임 없이 함몰되는 사랑도 가능한 게 사랑의 다른 모습임을 어쩌랴.
문학과 영화에서 곧잘 만나는 그런 사랑을 한번쯤 동경하며 설레기도 하는 것인데,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정서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좋아하는 것에는 책임이란 게 없지만 사랑하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서로 좋아하는 것은 그냥 싫어지면 그걸로 그만이지만 사랑은 싫어지는 것으로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픔과 상처가 남는 법이며, 쉬 뱉어낸 무책임한 그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유린된 사랑도 부지기수이다.
반면에 반드시 말해야할 때 말하지 못하고 꼭 듣고 싶을 때 듣지 못한 비대칭으로 인하여 평생을 회한과 추억 안에서만 맴돌고 묻혀버린 사랑도 허다하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간담 서늘한 판결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해 영원히 가슴속에 ‘사랑했었다’로 유배되어서는 안 될 말이기에 그 말 ‘사랑한다’ 오늘 그대에게 낮은 목소리로 전하고 싶은 것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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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 - 김동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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