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 갇힌 자, 그들의 ‘오래된 미래’
김신영(시인)
1. 시인들의 오래된 미래
최근 시인들이 자주 쓰는 시어 중에 시간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특히 고대의 시간과 관련하여 많은 시인들이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이번에 시선이 선정한 정예시인들의 시에서도 시간성에 대한 과거로의 회귀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과거로의 회귀가 단지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이 섞인 미래를 뜻하는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 온 산업문명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시에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odgy, Helena Norberg)는 그의 책 (『오래된 미래』, 녹색평론)에서 라다크1)의 변화를 제시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개발과 진보에 대한 의문을 강력히 표현한다. 그는 미래사회의 불안과 모순의 그 대안을 과거에서 찾고 있다.
시인들은 미래를 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과거를 지향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과거속에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미래의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늘 개발과 진보를 염탐하면서도 시인들은 노르베르 호지의 말처럼 오래된 과거인 미래의 모습을 이미 그들의 시에 예지적 감각으로 과거지향을 표현하고 있다.
2. 따뜻함과 기백이 넘치는 미래 / 서규정의 시
진흙 벽돌로 집을 짓고 살던 우리 민족의 과거는 오늘에 다시 재현되고 있다. 황토벽과 황토로 만든 방바닥과 멍석이 깔린 거실에서 꺼칠하게 앉아 시골사람처럼 담소 나누기를 기꺼워하는 것이다. 이른바 웰빙 바람이다. 서구인들이 추구했던 행복의 조건들인 소유와 기계문명의 편리는 사람들에게 휴머니즘을 잃고 끝없는 소유욕에 시달리며 현대적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해 안달하게 만들었다. 우리도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예외없이 맹목적인 근대화를 이룩하였다. 이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세계화에 내몰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우리에게 행복이며 진정한 삶인가를. 여기에 시인들은 과거지향의 시와 고대의 시간 속에 묻힌 화석을 캐내어 오래된 미래를 고대하면서 행복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서규정의 시는 휴머니즘이 넘치는 과거를 지향하여 현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오래된 미래의 시인이다. 그가 추구하는 세상은 가난하더라도 따뜻한 세상이며, 그 마을은 세련된 문명보다는 ‘따뜻한 말’이 사는 곳이다. 인격화된 ‘따뜻한 말’은 따뜻하다는 말로 인하여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듯이, 세상이 훨씬 행복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일 6동 안창마을 입구 조그만 가게엔
가장 따뜻한 말이 산다
솜 탑니다
이불 만들어 드립니다.
빛 바랜 87번 버스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서
다닥다닥 잇닿은 지붕 위로
온 세상이 고루 덮는 포근한 이불처럼 눈이 또 내려 덮인다
더 아프지는 마, 삶은 예찬이 아니라 갈구일 테니까
펴고 개는 슬픔
이불 한 장을 눈썹 위까지 끌어 덮는 데에도
-「안창마을」에서
서규정이 추구하는 미래는 따뜻한 말이 살아 숨쉬는 시간과 공간이다. 가난이 지배하는 삶이지만 애써 이불 한 장인 ‘슬픔을 눈썹 위까지 끌어 덮는’ 행위를 통해서 그가 지향하는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과거를 추구하고 있다. 사람 사이가 느리지만 따뜻하여 삶의 가치를 인정받던 과거가 미래의 이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규정이 정의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은 ‘솜 탑니다/이불 만들어 드립니다’ 이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솜을 다시 타서 이불을 새로 해서 덮었다. 다시말해서 모든 자원은 재생이 되었고 다시 사용되어도 그 가치가 없어지지 않았으며, 환경문제를 유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조금만 유행이 지나도 환경문제가 되는 쓰레기를 유발한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풍요는 풍요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시인은 솜을 타서 사는 세상에서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과거에 안주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 속에서도 기백을 떨치며 다시 미래를 사는 시의 화자를 우리는 쉽게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 말을 타고 나갈 때
부디 너만은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동네 아낙들 뒤에서 옷소매에 눈물 훔치는
그런 못난 가족들 말고
부족을 위해 어서 나가 죽어라
작대기를 들고 몰아낼 어머니와 마누라를 꼭 다시 갖고 싶다
화살이 빗발치는 싸움터
강아지 그 청아한 눈빛의 병사들을 이끌고
맨 앞에서 큰소리로 외치리
-「순장」에서
가야의 기마무사는 가야국의 제대로 번영을 누려보지도 못한 그 짧은 역사로 인해 비극적 인상을 준다. 서규정은 「순장」에서 자신이 순장되어 가야의 청동거울 밑에 산채로 묻혀 매장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족만의 안위와 소시민적인 자신의 존안보다 죽을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위대한 기상을 만나는 것이다. 현대인의 이기는 개인주의의 팽배에 있다 할 것이다. 자신의 안위가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절대 양보하지 않는 개인적 이해타산은, 현대 국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집단 이기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라를 위해서라면 순장이라도 긍정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아직은 산채로 묻혀있는 시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오호라, 남의 삶을 거짓으로 연기하지 않고
온몸으로 스스로를 들어 바친 자만이 최고의 배우가 되듯이
오늘의 막은 턱으로 들어 올렸다 내리 닫을 것인가
지금 한창 소주병을 꺾어 불며 열연 중이다
버드나무 속엔 버들잎끼리 스치는 파랑새 무늬
-「배우수업」에서
마치 연기하는 배우처럼 넝마를 걸치고 나타난 진짜 부랑자를 보면서 시인은 차마 그의 생이 그것이 전부라 말하지 않고 막간을 연기하는 배우로 본다. 그의 분장술은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 거지로서 갖추어야할 리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시인은 그를 배우로 보며 연민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우리의 지난 과거시대 어디쯤에 그 거지가 살았던들 농사도 짓지 못해 일 년 내내 배고픔과 추위에 떨었겠는가? 문명의 이기가 찾아온 이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농촌의 물건들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대도시로 향하였고 그로 인하여 그의 생은 파멸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넝마는 연기이며 분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생은 넝마를 걸치기 이전인 과거의 모습이 진실이며 그의 진정한 미래라 할 것이다.
3. 도저한 운명과의 충돌 / 오성희의 시
65만 년 전이라고 하면 우리의 시대감각으로는 얼른 짐작이 되지 않아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참을 가도 언제쯤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아 백과사전을 보며 연대를 찾아봐야 정확히 그 시대의 좌표를 읽을 수가 있다. 65만 년 전은 백악기후기에 해당하는 공룡시대이다. 여기쯤에서 쥐라기나 백악기는 워낙 유명한 영화로 공룡시대임이 명확해 지지만 이것도 정확한 연대는 한참을 헤아려야 한다. 문명이 생성되기 훨씬 이전의 시간에 대해 우리는 화석이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여기 오성희 시인은 그 시간을 독자에게 낯설게 선뜻 제시한다. 사람들의 운명과 운명의 만남은 그 엄청난 세월을 두고 충돌한 것이라는 사실을 매우 강력하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도저한 웉명運命과의 충돌은, 그 후의 광막한 어둠 속 추락은 차라리 머릿속 지우개로 지워버렸지만…65만년이 지나도 그 눈물은 속속들이 까맣게 탄 채 이 땅별까지 찾아왔다. 그간의 이야기는 철광석으로 입 봉해 버려도 슬픔의 빛깔은 끝내 벗지 못했다. 제주도 우도 박물관에서 만난 눈물모양의 별똥별, 아직도 녹는다는 그리스어 제 이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나의 가슴속에 깊이 가라앉는다.
-「테크타이트」에서
시인의 슬픈 심성으로 환치된 별똥별의 슬픈 이름과 그 눈물모양은 65만 년 전의 대단히 먼 시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슬픔을 지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빛깔을 벗지 못한 채 시인의 가슴 속에 가라앉아버린 참 머나먼 오래된 미래이다. 그는 그 시대의 좌표를 짚으면서 자신의 슬픔의 깊이를 가름한다. 그만큼 크고 깊었던 슬픔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니 미래에까지도 그의 생을 관통하고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성희 시인의 이번 시에서는 그 오래된 고생대의 시간을 많이 만나게 된다. 생물의 고참에 해당하는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삼엽충 또한 그러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살던 삼엽충은 유난히 머리가 크다. 거의 몸의 절반이다. 지구상에서 최초로 눈을 떴다는 동물, 그는 무엇을 보았길래 저리 머리통만 커졌을까. 그 머리통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굴러다녔을까… 어쩌면 그 처음의 영통한 눈은 그때 절명의 운명을 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두려움에 떨며 별자리의 틈새라도 찾았던 것일까. 어떤 절박함에선지 저렇게 몇 마리씩 뒤엉켜도 있다. 10000여종이나 주로 바다에서 번식하다가 갑자기 멸종되어 지층에 갇혀버린 절지동물들… 통일 전망대를 내려오다가 지구 역사박물관에서 고생대의 화석을 보며 나도 캄캄하게 갇힌다. 출구 없는 큐브 속에서 머리통이 삼엽충 만하게 팽창한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삼엽충에 대한 정보는 우리는 학습을 통해서 알고 있다. 시인은 이론만으로 학습하던 시절과는 달리 실제의 모습을 보고 그 외적인 모양에 치중하여 삼엽충을 바라본다. 어떤 기관이 유난히 발달하였다면 그 방면이 반드시 필요하여 진화하였을 것이다. 삼엽충의 머리가 몸체의 반 이상이나 되었다면 반드시 연유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이다. 머리만 무지막지하게 큰 절지동물을 보는 시인은 자신과 삼엽충을 동일시하여 자신의 두뇌가 삼엽충처럼 팽창하는 상상을 하며 갇혀 있다. 시인의 두뇌가 오래된 미래인 삼엽충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두뇌를 몸체의 반이상이나 커지게 하는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아직 답을 얻지 못하겠다. 또한 이 시는 압축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적 긴밀도가 약하다 하겠다.
4. 재구성된 오래된 미래 / 김나영의 시
김나영의 시들은 일상에서 포착된 소재를 개성적 시어로 반전을 이루는 묘미를 갖고 있다. 동의어로 불리는 어휘들은 70-80년대나 지금 2007년도에도 화투짝처럼 똑같이 거리에 반짝이고 있어 어두운 시대를 짐작하게 한다. 「동의어에 관한 답사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란한 간판들의 동의어에 밤마다 피어났던 밤의 어록을 엿보고 연민을 갖는다. 밤새 불을 밝히는 밤의 어록, 그 답사기는 우리들의 뒷골목이다.
24시편의점과 통돼지 숯불 갈비구이 사이에
토마토/투투/핑계/물망초/꽃님이/야화/자유인/달맞이꽃/여인의 향기/언니/ 님/촛불/복숭아/딸기/들꽃/소나타/마돈나/낙원/별/이방인/섬/제8요일/여울
이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있습니다
저 간판들 화투짝처럼 뒤집어 놓고
아무 문 열고 들어가면
70년대나 80년대나 지금이나
게슴츠레한 불빛 아래 반쯤 벌어진 붉은 입술이 출몰하는 곳
유행 따라 저 간판들 몇 번 바꿔 달았겠지만
뒤돌아서면 생각나지 않는 이름들
그러나 거기! 하면 단번에 통하는
토마토/투투/핑계/물망초/꽃님이/야화/자유인/달맞이꽃/여인의 향기/언니/ 님/촛불/복숭아/딸기/들꽃/소나타/마돈나/낙원/별/이방인/섬/제8요일/여울
이 밤새 골목을 알록달록 불 밝히고 있습니다
저 불빛 아래서 밤의 어록이 끊임없이 집필되고 있습니다
낮에는 살짝 접어둔다는,
쉿! 여기는 이 동네의 뒷 페이지라고 들 부른다지요
-「同義語에 관한 踏査記」에서
동의어들은 그 의미망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 소리만 같을 뿐 뜻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용된 동의어들은 모두 꽃의 이름이나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제목이다. 없는 공간과 시간이거나 아름다운 꽃 이름 들이다. 이 간판들이 문제의 뒷 페이지이기에 그 다변화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재구성되는 것들은 지독한 소망의 의지와 희망을 갖고 새로 태어난다고 하겠다. 그것은 좀더 나은 세계를 위한 위대한 희망을 포함한다. 「봄」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의 삶을, 하나의 소통의 문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혜안이 느껴진다. ‘장애가 불편으로 해석되는 길이라면/발로 그림 그리는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라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없는 길을 발굴하여 반전하는 장애인의 인생을 재구성한다. 다시말해 사람들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라 다른 출구를 찾는 행위이며 결국 다른 출구로 나아가는 희망을 의미한다. 그것이 이 시의 반전이며 김나영 시의 묘미이다.
장애가 무기되어 이 거리로 나올 때까지
한쪽 문 닫힌 후 다른 문 열 때까지
봉인된 삶이 수많은 문 내어 달았을 것이다
모든 장애가 불편으로 해석되는 길이라면
발로 그림 그리는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義足 달고 농구장 뛰어다닐 상상이나 했을까
멀쩡한 몸이었을 때 감지해내지 못할 일을
장애를 가진 몸은 해낸다, 없는 길 발굴해 낸다
한쪽 문 막히면 다른 쪽 문 찾아나서는
반전의 힘으로 세상은 으랏찻차! 재구성 된다
-「봄」에서
사람들은 작은 일에 낙담을 잘한다. 그리고 그 작은 일로 인하여 삶의 길을 잃고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한다. 그 어려운 길에 서있는 장애인의 행동을 소통으로 보고 그것이 ‘봄’을 의미한다는 표현이다. 이로써 재구성된 장애인의 삶은 비록 온전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사는 것임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5. 사막에 떨어지는 별똥별의 미래 / 노운미의 시
도시의 하늘에서는 여간해서 별똥별을 볼 수가 없다. 하늘을 가리운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끊임없이 반짝이며 주변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혹여 별똥별이나 은하수를 보려면 그야말로 오지에 가지 않으면 이제는 수많은 별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노운미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처한 상황들을 부정 어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시의 화자가 처한 상황은 몹시 비극적이지만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러한 이율배반의 상황에서 화자는 그만 눈물이 고이고야 마는 역설을 드러낸다. 분명 아름다운 것을 보았음에도 그 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서쪽 하늘 깊숙이 칼금을 그으며
별똥별 하나 떨어졌어요
엄마의 깊은 한숨이 뒤따라 떨어졌어요
움직이고 할딱할딱 숨 쉬며
붉은 피 돌아 펄떡이는
심장이 있는 것들만
목숨이라 하는 것인가요
화분에서 시들거리던 부겐베리아
물을 주니 붉은 꽃송이를 피웠고요
섣달 열흘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있는 아버지
환하게 웃음꽃도 피우고
헛말도 피워 올렸었는데
꽃잎들
내 심장을 훑으며
깊디깊은 어둠 속으로
하나씩 날아가 박히는데요
그 밤,
하늘이 어찌나 밝던지
왈칵! 눈물이 고이는데요
-「별똥별이 떨어지는데」에서
부모님의 존재는 우리에겐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 부모님의 병환은 또한 버팀목의 무너짐이다. 이 시의 누워 있는 아버지의 심장은 시의 화자에겐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어 좌절과 고뇌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부모님이나 그 끝이 쓸쓸하고 무기력할 터 시의 화자도 아버지의 쓸쓸하고 무기력한 모습에 눈물을 닦는다. 아버지의 부재가 가져오는 절망과 고뇌는 그의 고단한 삶과 연결되어 경직되고 사막이 되며, 시의 화자는 유목민의 칼바람을 맞는다. 그의 사고는 경계없이 벽을 넘고 칸막이를 헐어 제낀다. 그의 성은 무너지고 이미 엄마의 한숨도 깊이를 더하는 유목민이 되어 있었다.
생의 1/4
아버지의 공허를 읽으면
사막이 떠올라요
‘어머니, 어머니’
사막을 부르던 아버지
세상을 고요 속으로 밀어 넣는 밤이면
툭툭 불거진 관절들이 신경을 비틀어
류머티즘 흰 꽃을 함빡 피워냈지요
사막이 되어버린 당신의 어머니
어머니 가슴에 묻을 꽃을
-「사막으로 간 아버지」에서
아버지의 과거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었다. 병든 몸으로 어머니를 부르고 이윽고 사막이 되고야 마는 아버지의 심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친숙한 아버지를 만난다. 사막에서 1/4이라는 시간을 공허하게 보냈던 아버지의 인생은 사막을 그리워하는 유목민으로 남아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도 사막을 찾았고 사막에 버려진 자신은 어머니와 사막을 동일시하는 아버지로 인하여 차라리 육체를 접고 아버지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사막에 자신을 밀어넣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여기서 사막은 공허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모래바람만이 있는, 어떤 소망의 대상이나 존재의 자취를 찾을 수 없는 허망한 꿈같은 것이다. 그곳을 날마다 꿈꾸는 아버지에게 그 절망의 공간에 밀어 넣어달라는 화자의 외침은 너무 비극적인 갈망이다. 이산가족들이 많이 만나고는 있으나 화자의 아버지는 만날 수 없는 절망의 벽에 부딪친 것이다. 그로인한 좌절과 고뇌의 무게를 시의 화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시에 발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오래된 미래는 가족들이 이산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것이 노운미의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6. 진정한 오래된 미래
시인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통하여 그들의 오래된 미래를 갈구한다. 오래전 유년의 시간과, 고향의 추억과, 순수의 목소리가 넘쳐나던 공간과, 완전하지만 현대의 산업문명의 폐해가 드러나지 않는 공간을 지향한다. 그들은 과거를 지향하여 과거에 갇힌 듯이 과거로 돌아갈 것을 노래하지만 노르베르 호지가 말했듯이 그것은 이미 그들의 오래된 미래이다. 즉 과거지향의 시들은 오래전에 미래에 있어야할 완전한 세상을 꿈꾸는 자들이 이미 이루어 놓아야 하는 완전하고 진정한 미래인 것이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 (13) - 무지개로 공작새를 만든 시인 (0) | 2014.05.19 |
|---|---|
| [스크랩] 호 수 - 정 지용 (0) | 2014.05.19 |
| [스크랩] [송수권의 시세계] 영혼 여행자의 주술을 듣다 - 안현심 (0) | 2014.05.19 |
| [스크랩]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 희 성 (0) | 2014.05.19 |
| [스크랩] 詩소리 시창작교실 제5강연 - 수사학 / 김용오 교수 (0) | 2014.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