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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산과 연암이 도박에 빠졌다?

문근영 2014. 5. 19. 00:08

다산과 연암이 도박에 빠졌다?
  글쓴이 : 편집팀     날짜 : 2006-03-03 17:49     조회 : 393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라는 제목의 책이 눈길을 끈다. 다산선생과 연암선생이 노름에 빠졌다니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제목이다. 슬그머니 그 진실여부가 궁금하다. 특히 연암보다 훨씬 근엄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다산에 관해서 더욱 궁금하다. 찾아보니 다산이 쓴 다음의 편지가 근거였다.


경자년(정조4, 1780) 봄에 진주의 촉석루(矗石樓)에서 떠들썩하게 악기를 연주하다 해가 저물어서야 파하고는, 심 비장(沈裨將)과 더불어 저포(樗蒲: 쌍륙놀이)노름을 하여 3천 전을 따가지고 여러 기생들에게 뿌려주며 즐겁게 놀았던 일을 아직 기억하십니까? 이제는 벌써 19년이 지났는데도 어제의 일처럼 역력합니다(與沈裨將賭樗? 取三千錢 散予諸妓兒作?娛 尙記憶否 今已十九年 歷歷如昨日事).


그러나 인생은 변하기가 아주 쉬워, 저의 빙옹(聘翁: 다산의 장인 홍화보를 말함)과 심군(沈君)은 모두 황천(黃泉)에서 눈을 감고 있으며 당시의 생관(甥館: 생관은 사위를 말함) 소년이던 나는 영장(營將)이 되고 그 때의 영장은 절도사(節度使)가 되어 함께 서로(西路 관서지방)를 지키고 있으니 역시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다산이 1799년 곡산부사로 있던 중에 관서절도사 김후(金?)에게 쓴 편지였다. 편지는 19년 전 일을 말하고 있다. 1780년, 다산의 나이 19세 때 장인이 진주에서 벼슬할 때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함께 즐겁게 논 추억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 ‘저포 노름을 하여 3천 전을 따가지고 여러 기생들에게 뿌려주며 즐겁게 놀았다’고 쓰고 있다. 어허,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증거, 바로 자백 아닌가. 참가자 구성에 비추어 수동적으로 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다산의 글을 좀더 찾아보자. 다산시문집 3권에 ‘여름날에 소회를 적어 족부 이조 참판에게 올리다(夏日述懷 奉簡族父吏曹參判)’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이것저것 회포를 옮긴, 제법 긴 이 시의 중간 부분에 자신을 반성하는 대목이 있는데, “곁길로는 노름까지도 해 봤으며(旁岐及??)”라고 읊고 있다.


그런데 다산은 <목민심서> ‘형전’ ‘금포(禁暴)’조에서 도박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도박으로 업을 삼아 판을 벌이고 무리를 지어 모이는 것은 금해야 한다(賭博爲業 開場?聚者 禁之).” 나아가 관직을 가진 자는 가중처벌하고, 도박장을 설치하고 노름판을 주관한 자는 배로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다산의 주장은 현행 형법의 태도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도박은 형법상 범죄로 처벌되지만 일시오락의 수준은 처벌에서 제외하고 있다. 범죄로 처벌되는 도박과 그렇지 않는 일시오락수준의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구분만큼은 분명 있다. 구분기준으로는 금액의 많고 적음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재정능력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객관적인 금액선을 정하기는 곤란하다. 태도로도 구분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도박은 돈 따는 게 주요 목적이어서 거의 사생결단에 가까운 심각한 자세이다. 오락으로 한 경우 반드시 돈 따는 것이 궁극적 목적은 아니므로, 돈을 잃고도 잘 놀았다며 흡족해하거나 최소한 미련이 없다.

 

도박은 패가망신을 시키기도 하고 자칫 칼부림을 낳기도 한다. 금전사고의 배후에 도박에 의한 재산탕진이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오락수준으로는 가족과 친구들 모두 함께 노는 유쾌한 자리를 제공해 준다. 훈수도 하고 계산도 해주고 개평도 떼준다. 친교의 수단이 되고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노인에게는 치매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무튼 오락수준이라면 몰라도 도박은 사회적 해악으로 금지된 행위다. 그런데 눈을 돌려 둘러보면 우리 사회의 도박에 대한 태도가 형법의 태도완 전혀 딴판이다. 사회적 악이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온통 도박을 부추기고 있다. 복권을 사라고 출퇴근길에서 일상적으로 광고하고 있으며 관광사업이니 레저산업이니 미명아래 특별법에 의해 허용된 이른바 사행산업이 판을 치고 있다.


강원랜드에 관해 TV 특집을 방영한 적이 있다. 거기에 소개된 일화이다. 한 남성이 카지노에 놀러왔다. 돈을 다 잃고 나자 타고 간 자동차를 저당 잡혔다. 그마저도 다 잃고서 빈털터리로 돌아간다. 자동차를 되찾으러 돈을 마련하여 강원랜드에 다시 왔다. 그곳서 그 돈으로 다시 베팅을 하고 결국 자동차를 못 찾고 돌아간다. 그러기를 몇 차례. 나중에라도 자동차를 되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사행산업의 폐해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 개인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하고 본인과 가족을 파멸로 몰아간다. 간혹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에 어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공기관이 나설 수 있다는 말인가. 도박을 막아야 할 국가가 도박을 허용하고 앞장서서 부추기다니. 복권당첨이라는 허망하고도 부적절한 욕심을 불러일으켜 서민들의 돈을 쓸어 모으다니. 그 폐해는 사행산업에서 얻은 이익금이 어디에 쓰인다는 식으로 덮을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도박은 중독성이 강하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힘으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정상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된 결과를 순전히 한 개인의 잘못이라 할 수 있는가. 애당초 그 나약한 사람을 유혹하여 함정에 빠뜨린 자가 누구인가.


다산이 19년 전 19세 때의 추억을 상기하여 쓴 편지글에서 행여라도 도박을 정당화할 명분을 찾으려 하지 말라. '다산이 노름에 빠졌다'는 책 제목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된 과장표현이겠지만. 책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유승훈 지음, 살림 펴냄)를 슬쩍 떠들어 보니, 소개된 한 일화가 눈에 띈다. 네 명의 여성이 호기심에 강원랜드를 찾았다. 세 명이 돈을 잃었는데, 한 명이 몇 십만 원을 땄다. 돈을 잃은 셋은 무사히 집에 돌아왔는데, 돈을 딴 한 명은 카지노에 빠져 나중에 절도범 신세로 전락했다는 얘기였다. 결코 도박을 두둔하는 책은 아닌 듯하다.

 

글쓴이/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출처 : 박종국 에세이칼럼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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