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각종 송년모임으로 술자리가 잦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푸는 것은 좋은데 자칫 과음으로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술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는 태어난 이래 술을 많이 마셔 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의 주량을 알지 못한다.”
다산이 아들에게 술을 끊도록 당부한 편지글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주량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단한 주량 아닌가?
“벼슬하기 전에 중희당(重熙堂)에서 세 번 일등을 했던 덕택으로 소주를 옥필통(玉筆筒)에 가득히 부어서 하사하시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다 마시면서 속으로 ‘나는 오늘 죽었구나’ 했었는데, 그리 심하게 취하진 않았다.”
“또 춘당대(春塘臺)에서 임금을 모시고 과거시험을 채점하던 중에 좋은 술을 큰 사발로 한 그릇씩 하사받았다. 그때 여러 학사들이 크게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어 어떤 이는 남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어떤 이는 자리에 엎어져 눕고 했지만, 나는 시험지를 다 읽어 착오없이 과차(科次)도 정했다. 퇴근할 때에야 약간 취기가 있었을 뿐이었다.”
주량이란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이 글에 의하면 다산은 술 세기가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대취한 적은 없었다 한다. 그러나 아들에게 아버지가 술 조심을 당부하며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너희들은 내가 술을 반 잔 이상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지만 교육상 거짓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산이 호방함을 좋아한 기질이었음을 감안하면 술을 제법 마셨을 것 같기도 하고, 엄격한 자기 절제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고려하면 술에 대해서도 절제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술을 마시고 쓴 시가 한둘이 아닌 것을 보면, 분명 술을 즐긴 사람이었으리라. 아무튼 같은 글에서 다산이 아들에게 가르친 술 마시는 법도는 이렇다.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가 물 마시듯 마시는 저 사람들은 술이 입술을 적시거나 혀를 적시지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微?: 미훈) 있다. 얼굴빛이 주귀(朱鬼)처럼 붉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저 자들이야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는데, 나중엔 술이 술을 마시고, 종국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로 진전되곤 한다. 끝까지 좋으려면 속도와 양이 문제다. 우음(牛飮)은 술 마시는 풍속이 조장한다. 억지 잔돌리기가 술의 과속을 낳고, 폭탄주나 희한한 이름의 각종 유사 폭탄주들이 술자리를 초토화시킨다.
폭음을 막고 술자리 참석한 모두가 각자 주량껏 술을 즐길 수 있도록 올해는 다산의 주법(酒法)을 실천해보자. 입술과 혀를 적시며 천천히 술을 음미하고, 기분 좋게 살짝만 취한 상태에서 좋은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글쓴이 /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