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일한 원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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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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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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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경完經
김선우 수련(睡蓮) 열리다 닫히다 열리다 닫히다 닷새를 진분홍 꽃잎 열고 닫은 후 초록 연잎 위에 아주 누워 일어나지 않는다 선정(禪定)에 든 와불(臥佛) 같다 수련의 하루를 당신의 십 년이라고 할까 엄마는 쉰 살부터 더는 꽃이 비치지 않았다 했다 피고 지던 팽팽한 적의(赤衣)의 화두(話頭)마저 걷어버린 당신의 중심에 고인 허공 나는 꽃을 거둔 수련에게 속삭인다 폐경(閉經)이라니, 엄마, 완경(完經)이야, 완경! 페미니즘의 약발이 아직도 유효한 것인지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사회는 급변하는데 이쯤에서 페미니즘도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할 때가 아니겠는지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열악한 환경과 제도적 폭력에 희생되고 있는 여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지구 한편에서는 양성 평등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페미니즘 시의 미세한 변화의 징후를 김선우의 시에서 봅니다. 「완경」은 남녀의 경계를 단숨에 훌쩍 뛰어넘습니다. 1연에서 화자는 꽃이 진 수련을 ‘선정(禪定)에 든 와불(臥佛)’로 비유합니다. 수련은 와불이고 와불은 곧 폐경을 맞은 어머니입니다. 화자는 어머니의 몸속에서 ‘허공’을 봅니다. 그러나 화자는 연민이나 처연한 눈길로 대상을 바라보지 않고, ‘꽃을 거둔 수련’에게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라고 속삭입니다. 또 다른 존재의 차원으로의 도약입니다. 제3의 존재의 완성이지요. ‘허공’을 여성성의 종결이나 소멸로 보지 않고, 충일한 원의 세계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핍이나 상실이 아니라 존재의 궁극적 경지입니다. 주체와 타자, 여성과 남성 등 당파적 이분법을 초월한 새로운 삶의 자리이지요. 시는 성의 구별에 좌우되는 장르가 아닙니다. 시 자체를 너무 당파적이고 협소하게 규정짓고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제 초기의 페미니즘에서 포스트 페미니즘으로 시야를 넓혀야 할 때이지요. 초기의 페미니즘이 가부장적 가치와 남성 중심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라면 포스트페미니즘은 여성 주체의 역량과 자기애에 주목합니다. 20년 전 페미니즘 시가 지금도 여전히 쓰여지고 거론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한국시인협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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