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의 영감과 퇴고의 막노동 / 고옥주
유난히 눈이 풍성한 이번 겨울, 아파트 베란다의 뿌연 대형 유리창으로 가까스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순백이 아니었다. 검은 색에 흰 색 물감을 조금씩 타는 것처럼 천천히 끈질기게 환해지고 있었다. 안경까지 쓰고 자세히 보면 눈발은 아파트 사이에 갇힌 바람 탓인지 제 스스로의 가벼운 탓인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르고 있었다. 나를 향해 돌진한다고나 할까.
눈 자체는 숨막힐 듯한 속도감과 진행형을 지니고 있지만 이상하게 다른 대상으로부터는 그 운동성과 기능을 마비시키는 징조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도시를 슬로우 비디오로 만드는 눈.
첫줄이 나왔다. 잠시 철새떼의 비행을 슬로우 비디오로 표현한 몇년 전 누군가의 인상적인 싯귀가 떠올라 주춤한다. 슬로우 비디오란 말을 누가 특허낸 것은 아니지만 표절의 의혹을 살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그 말이 가장 적절하며, 서로 다른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보고 있을 땐 날아올라 구름에 달라붙고
보지 않으면 슬금슬금 물방울에 쌓이는
눈,
길들은 지익지익 소리를 내며
이해할 수 없이 아득해지고
내 내부회로에서 톱니바퀴가 툭 불거지고
뼈를 이탈하는 너울이 늘어져
질질 끌리다가 뒷부분이 검게 물들고 잘라져 나가는
잠깐
일부 망가진 나는 드디어 내 몸을 벗어났다
제목도 아직 없는 소박한 11줄의 초고를 들여다본다. 너무 상식적이지 않은가? (좀 비범해 보여야 좋을 텐데…) 짧고 단순해서 소품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소품은 시가 아닌가? 반값 취급은 받기 싫은데…)
무엇을 쓰고 싶었나를 다시 생각해 본다. 눈으로 촉발된 나 자신의 변화를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 공동분모로 설정하고, 확대·해석하여 공감하시라고 주장하다 안 되면 세뇌라도 하겠다는 의도라 치면, 제대로 표현은 된 것일까?
모든 낯설고 새로운(일상적이지 않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낯섬과 새로움에 기대어, 물귀신처럼 우리를 옥죄는 일상으로부터, 나의 조건들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벗어나 보일 것인가?
시 자체의 생명력이 발동하여 시 속에 시인의 의도가 자연스럽게 녹아 나오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시인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영감의 순간이 반짝 지나고 이제부터는 막노동의 시간이다. 다시 한번 읽어본 후 거슬리는 부분을 고쳐나간다.
2행의 ‘보고 있을 땐’을 ‘바라보면’으로 3행의 ‘보지 않으면’을 ‘눈 돌리면’으로 바꾸어 부드러운 느낌과 ‘슬금슬금’에 호응하게 했다.
7행부터 나와 눈의 의미가 유기적으로 얽혀 나아가야 하는데 이대로는 갑자기 나로 옮겨간 부분이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7행을 ‘사람들의 내부 회로에/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자마자/ 일상의 톱니바퀴가 툭 불거지면서/ 느릿느릿 흐르는 피/ 잠시 손을 놓는 뼈’로 행을 늘려 변화 과정을 자세히 극대화하여 표현해 보았다. 숙성 기간을 좀 가져보자는 의도이다.
눈이 쌓여 속도가 느려지고 서로 부딪치는 차들, 교통마비로 차 안에 갇힌 사람들, 눈에 먹히는 거대한 도시를 내 내부 풍경으로 전이시키는 과정이다.
‘느릿느릿 흐르는 피’를 다시 읽어보니 어쩐지 눈이 주는 긍정적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의도에 들어맞지 않는 듯하여 피를 물로 바꾸었다.
‘잠깐’ 이후의 여백을 위해 ‘ , ’를 덧붙였다.
마지막 부분 다시 가다듬고 ‘나뭇잎 훌훌 털어 제몸 벗어나는 나무처럼’을 덧붙여 한순간의 일탈을 자연의 섭리에 내재시켜 그 상쾌한 잠깐의 의미를 확대하고 싶었다. 생겨난 자리에서 썩어 죽을 때까지 평생을 떠나지 못하지만, 나뭇잎으로 온세상을 날아 떠돌 수 있는 계절을 허락받은 나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제 마음에 묶여 주변을 맴도는 인간. 또한 잠깐의 일탈만으로도 다른 세상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경외를 떠올리면서.
그리하여 제목도 「눈올 때 잠깐」이 되었다. 영원에 비길 만한 잠깐이 되기를 삼가 비는 바이다.
눈올 때 잠깐
도시를 슬로우 비디오로 만드는 눈.
바라보면 날아올라 구름에 달라붙고
눈 돌리면 슬금슬금 물방울에 쌓이는
눈.
길들은 지익지익 소리를 내며
이해할 수 없이 아득해지고
사람들의 내부 회로에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자마자
일상의 톱니바퀴가 툭 불거지면서
느릿느릿 흐르는 물
잠시 손을 놓는 뼈
뼈를 이탈하는 너울이 늘어져 질질 끌리다가
뒷부분이 검게 물들고 잘라져 나가는
잠깐,
망가진 채로 나는
드디어 내 몸을 벗어났다
나뭇잎 훌훌 털어 제몸 벗어나는 나무처럼.
한 가지 상황에 맞는 말은 단 하나 뿐이라는 무의식을 선입관으로 공유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완성품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내 체력과 인내와 능력의 한계 안에서 끝을 맺었다. (고옥주)
◇88년 문학정신 등단.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시집 『나무 나무』
- http://www.kll.co.k 에서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몸 주제와 바다 소재, 그리고 의인화 - 공광규 (0) | 2014.05.02 |
|---|---|
| [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21) - 새로운 감각의 영토 (0) | 2014.05.02 |
| [스크랩] 사회 속의 인간과 자연 속의 인간 - 최두석 시집 『투구꽃』 / 이은봉 (0) | 2014.05.02 |
| [스크랩] 전통과 현대, 경험과 상상 - 정연희 시집 『호랑거미 역사책』/ 이은봉 (0) | 2014.05.02 |
| [스크랩] 아버지/강신용 외 9편(아버지에 관한 시 ) (0) | 2014.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