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리뷰] 잘려진 가지에서 돋는 새 순이 더 찬란하다 |
| <권혁재 시집>-잠의 나이테 느티나무 껍질이 단단한 것은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 때문이 아니라 중심에서 밀어내는 외로움의 두께 때문이다 강경 옥녀봉을 오르다 금강 물줄기에 눈이 멀어 팔꿈치가 느티나무와 스친다 살갗이 벗겨진 팔꿈치에서 느티나무의 유전자기 침투했는지 이내 붉은 싹이 돋는다 살갗을 헤집고 뿌리를 뻗는 인간의 느티나무 몸 속에 펴진 갑각류의 유전자들이 중력을 거부하며 물관을 타고 오른다 사람들과 스쳐가는 사이사이 이파리가 된 내 손들은 죄다 까뒤집어져 파도처럼 출렁인다 살갗이 굳어가는 사이사이 내 팔은 줄기처럼 쑥쑥 자라나 금강에 닿아 물을 적실 수도 있다 내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 때문이 아니라 중심에서 밀어내는 외로움 때문에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느티나무에 접을 붙이다 2004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한 권혁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잠의 나이테>가 출간되었다. 권 시인은 정신의 떨켜를 가진 시인이다. 나무는 가을이 되면 다시 돌아올 봄을 위해 자신의 가지마다 얼음주머니인 떨켜를 스스로 품고 봄, 여름, 가을 내내 밖으로 향했던 마음 들을 스스로 잘라 내 버린다. 그리곤 깊고 깊은 겨울 잠 속에서 추운 겨울을 견디며 견고하고 치밀한 나이테를 만들어 간다. 권 시인은 세상이 제 멋대로의 잣대로 자르고 판단하는 타인의 폭력에 대해 나무처럼 견딘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돌아올 봄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일부를 잘라내는 강인한 정신을 지닌 겨울나무 같은 시인이다. “귀를 자르고 복개 수술을 한 날/시를 투고 했던 잡지사로부터/내 작품도 잘렸다/귀가 잘리고 잡지사로부터도 잘리고/먹먹한 시도 단칼에 잘린다/자르고 잘리고(잘리다 중 일부)”에서 보듯 권 시인은 살아가면서 타인에 의해서 "잘리는“는 아픈 현실을 경험한다. 이러한 현실이 꼭 권 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프로크로테스의 침대 (Procrustean bed)를 하나씩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이데올로기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라는 프로크로테스의 침대를 들이대며 우리나라는 남도 북도 서로서로 자신의 침대 크기에 맞게 상대방을 잘라내려고 하는 지구상에 몇 안되는 나라이다. 그 뿐이랴. 문단에서도 잡지를 중심으로 한 문단 패거리를 만들어 자신의 잡지에서 등단한 자들만 북치고 장구 쳐주고, 매스컴들도 작품의 예술성과는 관계없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Populism)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역사 속의 많은 예술가들도 당대에는 잡지사나 매스컴으로부터 수도 없이 잘리고,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 때 그들이 그냥 좌절하고 포기했다면 시대를 넘어서는 불멸의 예술작품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특정 집단의 편견과 오만은 직장에서도, 종교에서도, 지역과 지역 사이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신념과 신념 사이에서도 나타나며, 끊임없이 모두들 자신이 지닌 가치의 잣대에 맞추어 타인을 평가하며 자신들의 입맛대로 남들을 자르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복개수술” 하여 몸속에 무언가가 의사에게 잘린 날, “시를 투고 했던 잡지사로부터” “시도 잘리는” 뼈아픈 경험 속에서 아마도 권 시인은 수술로 잘라낸 몸속의 어느 부분보다도 더욱 커다란 심리적인 충격과 좌절을 가슴 아프게 경험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침대에 실려 온 병실/선잠으로 마취가 풀리자 (중략)/내 아픔도 입에서 무게를 덜며 들썩인다/신음이 신열을 타고 병실 안에서/ 붉은 입김으로 곳곳에 영역표시를 할 때/침대를 타고 올라온 거대한 뿌리가/내 손을 칭칭 감는다/아, 삭정이 같은 어머니의 손(침대의 뿌리 중 일부)”이 권 시인을 아프게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의 뿌리가 깊은데 그까짓 가지조금 잘렸다고 그냥 쓰러져버릴 나무가 아닌 것이다. 뿐이랴 “가장 간절한 말이어서/짧다/가장 염려하는 말이기도 하여서/또 짧다 (중략)/솔갈잎 긁는 듯한 유언은/애틋하고 간절한 말씀이 되어/짧게도,/니, 단디해라.(단디해라 중 일부)”라고 일러주신 어머니 말씀이 권 시인의 의식, 무의식 속에 깊고도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이다. 권 시인은 “느티나무 껍질이 단단한 것은/외부로부터 받는 자극 때문이 아니라/중심에서 밀어내는 외로움의 두께 때문이다(느티나무에 접을 붙이다)”라고 전언한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란다. 흔히 부락 어귀에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느티나무의 억센 줄기는 강인한 의지를 나타내고, 고루 퍼진 가지는 조화와 질서를 나타내며, 단정한 잎은 예의를 나타낸다는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더불어 가장 오래 사는 나무로 나무 나이 천년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느티나무에 접을 붙이는” 행위를 통해 권 시인은 자신의 시적 자아가 이루어 내고 싶은 길을 보여주고 있다. “내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외부로부터 받는 자극 때문이 아니라/중심에서 밀어내는 외로움 때문에/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느티나무에 접을 붙이다 중 일부)”라고 전언하는 권 시인은 이제 세상이 들이대는 프로크로테스의 침대 위에서 잘려졌던 삶의 상처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지가 잘려나가도 곧바로 스스로 새 가지를 내밀며 새 순을 올려 보내 묵묵하고 찬란하게 자신의 생을 천년씩 이어가는 느티나무가 되겠다고 전언한다. **권혁재 시인은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단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 하였다. 시집으로 <투명인간>이 있고, 2009년 단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지혜]값.10,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 교수 dsseo@shingu.ac.kr)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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